본문 바로가기


되새김질(마땅한 수순?)

오늘 재활치료를 받고 있는데 이제 많이 좋아졌으니 다음주부터는 하루걸러씩 오라고 했다.
종일 집안에 콕박혀 빈둥거리던 사람 그나마 등떠밀어 집밖으로 내쳐주던 고마운 일이
갑자기 반토막이 나버리고나니 귀찮은 일 줄었다고 좋아해야할지 허전&섭섭해야할지
어쩌면 많이 좋아졌으니...하는 말 다음에 이젠 그만와도 좋다는 성급한 기대를 했다가
더 실망스러운건지도 모를 일이다.

근육이란 게 머리카락 자라듯 시간이 지날 수록 들쭉날쭉이 되는지
평소 알게 모르게 자주 썼던 방향으로는 제법 힘이 전달되어 별 무리없이 움직여지지만
그렇지 못한 다른 방향으로는 그간의 재활노력에도 불구하고 좌절감이 들 정도로
오그라든 근육이 여전히 펴지질 않고 굳어있어 뻣뻣하고 움직이기 조심스럽고 어색하고 땡기고 아프다.

얼마전 어떤 글을 읽으니 사람이 행복을 느끼는 정도는 타고난 것이라고 한다.
거액의 복권에 당첨된 사람도 초기의 희열감이 사그라들고나면
행복감을 느끼는 정도에 있어 복권당첨 이전과 큰 차이가 없고
반대로 엄청난 사고나 재난을 당해 심각한 장애나 재산상의 피해를 입은 사람도
시간이 지나 자신의 불운을 받아들이고나면 횡재를 한 사람과 별반 다를 게 없다한다.
얼핏 행복이 DNA에 각인된 생물학적 결정론에 좌지우지되는 것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뒤집어 생각하면 그게 다 마음 먹기 나름이란 얘기가 아닐까 싶다.
물론 이렇게 저렇게 마음 먹어지는 것도 신경전달물질의 작용이긴 하지만....

이번에 치료를 전담해준 물리치료사와는 단골병원을 바꾼 바람에 꼭 삼년만에 재회였는데
나 때문에 페더러를 알고나서 스포츠뉴스에서 페더러가 나오면 괜히 반갑고 관심이 가졌지만
테니스를 배우지는 못했다고 하며 다소 미안해하는 기색이었다.
매일 재활을 받다보니 서로 자기얘기를 조금씩 나누게 되었는데
난 전처럼 일방적으로 테니스전도를 하는 대신 그녀가 하는 말에 더 귀를 기울였다.
그래서 그녀가 아름다운 외모만큼이나 정 깊고 마음도 고운 사람이고  
남편은 학교 때 만난 가난하지만 신앙심이 깊은 사람으로
이 젊은 부부는 적어도 세속적인 조건을 따져 결혼하지는 않았고
그래도 아주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테니스가 주었던 즐거움 때문에 내가 타고난 마음 상태보다 전반적으로 더 행복하긴 했었지만
그로 인해 겪었던 춥고 어둡게 느껴지는 기억도 중간중간 없지 않았으니....
아니다! 너무 많았던 것같다.
슬픔, 고통, 쓸쓸함, 살벌하고 황당함, 번민, 다 팽개치고 멀리 떠나고 싶은 충동, 헛헛함,
겁 많은 개가 더 요란하게 짖어대듯이
열등감에 시달리면서 동시에 턱없는 우월감으로 이를 모면해보려 했었나보다.

아마 지금의 나에게는 복귀에 대한 불안감이 마음을 제일 어지럽게 만드는 주범일 게다.
최선을 다해 앞만 보고 뛰어도 노화라는 반대로 내달리는 길 위에서 제자리 뛰기도 바쁘고
같이 공치는 아줌마들도 뒤처질세라 죽어라 내닫고 있는 판국이다보니
덜컥 넘어지거나 썰매가 뒤집혀 실격처리된 동계올림픽 선수들을 보면서 내 처지가 떠올랐고.....





[테니스는 어떻게 완성 되는가?]




  • 금계 03.09 13:32
    참 고맙습니다
    펜이 무기보다도 더 힘이 있다는 어느 문인의 이야기를
    어릴대 들은 기억이 있는데
    혜랑님의 글을 볼때 그 생각이 향상 나네요
    항상 건강하시고
    앞으로도 좋은글 써 주시길 바랍니다
    정말 글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향상 생각나게 하시는 혜랑님
    쾌차하세서 좋은글 정말 테니스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분발, 희망을 주는 이야기를 써 주실날를 기다리겠읍니다
    어쩌면 보름 , 한달만 기다리면 되겠지요
  • 이해조 03.11 14:30
    오늘 가입했습니다. 최혜랑님의 좋은 글과 회원님들의 댓글을 감동 깊게 읽고 용기를 내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 최혜랑 03.14 08:30
    요즘 제 글이 너무 우울한 것같다는 후배 말도 있고해서
    저도 분위기 좀 띄우는 글을 쓰려고 애는 좀 써보았습니다만 현재로선 잘 안되네요.
    며칠 전 심심풀이삼아 테니스공을 양손으로 튕겨보았는데 재미도 있었고 마음이 흡족했었습니다.
    왜냐하면 단체레슨하던 초보시절 코치님이 테니스공 갖고 자주 놀아야 공도 는다고
    그 비슷한 동작을 시키셨었는데 그땐 양손으로는 커녕 한손으로도 몇번 못 튕겼었거든요.
    언 공처럼 잘 안튀는 요즘의 저를 쬐끔만 더 참아주시면 언젠가는 글쎄 날 좀 풀리면 다시 방방 튀(뛰)지 않을까요?

  1. No Image

    날씨가 미쳤다

    식사가 끝날 때 쯤 되면 나이 제일 어린 동생분 또는 봉사정신이 투철한 엉덩이 가벼운 분이 커피당번하러 일어나 커피 마실 사람 수를 헤아리지만 그 수가 많을 땐 대신 안마실 사람 손들라고 한다. 8월 한달 비가 며칠이나 왔냐는 통계가 21일~24일 등 들쭉...
    Read More
  2. No Image

    코트의 비호감

    요즘 한발은 테니스판에 둔채 한발은 빼내 새로운 경험과 사람들을 만나며 처음 테니스판에 발들여놓을 때처럼 한걸음 떨어져보는 시선을 갖게 되니 인간세상과는 다른 독자적인 원리와 규칙을 갖는 참 독특한 사회란 생각이 들면서 새삼 닮은 꼴과 다른 꼴을 ...
    Read More
  3. No Image

    아대아대바라아대

    내가 갖고 있는 보조장비들은 굴곡이 많았던 테니스개인사를 말해주는 산증인이다. 한 롤에 만원이 넘어 비싸다 싶었던 키네시오테이프는 최소량을 잘라 좍좍 늘여 붙이며 아껴아껴 썼는데 옆사람이 나도...하면서 손 내밀면 차마 거절의 말은 못하고 호기있게...
    Read More
  4. No Image

    전에는 저랬지만 요즘은 요런 것들

    "언니는 더한 땡볕에서도 공쳤거든요!" 내가 후배에게 이 폭염주의보 하에도 공쳤느냐고 꾸짖자 정말 생각 안나냐는 표정으로 되받는다. 어디 이 뿐이랴? 테니스를 접한 지 얼마 안되던 초보시절 갖고 있던 생각들 중에는 아직 변함없이 지키고 있는 것도 있지...
    Read More
  5. No Image

    어느 편일까?

    요즘 가끔 이런 생각을 해본다. 테니스가 아직도 그대는 내 사랑인지 아니면 벌써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가 되었는지를. 여름감기가 폐렴으로 진행되어 드러눕기 전까지는 아침마다 레슨 꼬박꼬박 받았다. 하지만 레슨 끝나면 뒤도 안돌아보고 집으로 향한다....
    Read More
  6. No Image

    잠 안오는 밤 누운 채 사람을 세어보았다.

    잠 안오는 밤 반듯이 누워 천장만 보고 있자니 등은 베기고 갑갑증이 나서 솟구치듯 일어나고 싶었지만 비록 똑같은 반복과 단조로움이 기다리고 있을 다음날이지만 그 내일을 위해 다시 눈을 감고 애써 잠을 청해본다. 잠 안올 때는 뭘 세어보라고 했겠다! 서...
    Read More
  7. No Image

    SW vs HW

    애플 아이폰의 충격으로 소프트웨어의 우위가 하드웨어를 압도하는 것으로 판명난 이 즈음 테니스계에서는 이와 반대로 다시금 하드웨어 우위론이 득세하는 것같아 아이러니가 아닌가 싶다. 페더러와 나달이 각각 윔블던 초기 라운드에서 고전했던 상대선수들...
    Read More
  8. No Image

    RE: 가방

    페더러선수가 경기장에 입장할 때 보면 커다란 윌슨라켓가방을 메는 외에 꽤 커다란 나이키스포츠백을 한쪽 어깨에 걸치고 들어오는데 광고 효과 때문인지, 그가 꼭 필요하다 생각하는 짐이 다른 선수보다 유난히 많은건지 이유는 잘 모르겠다. (세레나도....)...
    Read More
  9. No Image

    어느 신파

    곧 들통날 거짓말을 밥 먹듯이하고 천지사방으로 바람 피우고 돈은 어찌알고 뒤져가는....남편이 있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몹쓸 인간을 사랑하는 자신이 미친X이라고 울며 탄식하는 여자가 있다. 한참 전에 본 한국영화 속 신파의 한 장면인데 문...
    Read More
  10. No Image

    어! 벌써 유월? 그럼 올해도

    5월은 가정의 달이니 부모님 모시고 얘들 데리고 산으로 들로 놀러가라고 나라에서 정해줬지만 춥지도 덥지도 않아 공치기 딱 좋은 계절이라 대회와 교류전 등 각종 행사가 끊이지 않는 관계로 테니스하는 사람들은 반정부적으로다가 가정을 완전 버리게 되는 ...
    Read More
  11. No Image

    또렷하지 않은 화면과 그보다 더 희미한 기억

    비가 어제부터 내일 새벽까지 줄창 온다는 일기예보가 못미더워서가 아니라 공 안친지 제법 됐는데도 아직도 몸에 밴 습관 때문인지 공연히 창밖 내다보고 바닥 고인 물에 빗방울이 둥근 자욱을 내는지 확인해보는 쓸데없는 짓을 하고 있었다. 어쨌든 그 못된 ...
    Read More
  12. No Image

    노란공에게 배운 것

    동병상련 때문인지 부상으로 운동 쉬는 동안의 소회를 담은 어떤 분 글에 공감도 가고 그래 이런 상황에선 다들 이런 생각이나 행동을 하나싶어 어수선한 내 마음에 채근을 덜하게 되었다. 공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만큼 다시 공 칠 수 있을까하는 불안함이 ...
    Read More
  13. No Image

    클레이 코트

    무거운 롤러를 굴려 땅을 다지는 롤링은 무척 힘든 일이라 비온 후가 아니면 대체로 생략하고 코트 양끝을 브러쉬 끌고 왔다갔다하면 고운 흙이 골고루 빗질로 다듬어진 평평한 면이 만들어지는데 여기에 라인기로 반듯하게 선을 그어 마무리하고 나면 종종 여...
    Read More
  14. No Image

    나는 지금 과장 아니면 거짓말을 하고 있다.

    우리의 코트문화 중 테니스외부인에게 알려지면 어쩌나싶은 공공연한 비밀 하나는 음주에 관한 것이다. 언젠가 카페에 클럽대항전 전 며칠동안만이라도 금주 및 절주하라는 음주 절제글을 올린 적도 있었고 한국음주문화와 사회전반의 후진성을 연관시켜 쓴 글...
    Read More
  15. No Image

    들고 나는 자리에 대해

    청백전으로 진행된 오늘 월례대회는 그냥 화기애애하기만 하던 이전의 월례대회와는 의미가 달랐다. 새로운 사람을 회원으로 받아들여 입회를 환영하면서 그동안 정들었던 회원의 송별을 함께 하는 자리였기 때문이었는데 여느 때보다 갑작스런 일이 생긴 회원...
    Read More
  16. No Image

    알고도 몰랐던

    오랫동안 가까이 지녀왔던 물건이나 자주 접했던 사람에게서 어느 순간 낯선 구석을 발견하고 놀라게 되는 일이 종종있다. 가령 일년도 넘게 들고 다닌 핸폰의 초기화면에서 일요일이나 법정공휴일은 빨간색으로 요일이 표기되고 있다거나, 상대 서브 기다리며...
    Read More
  17. No Image

    [정희준의 '어퍼컷'] 그들은 왜 짐승이 되었나?(펀글)

    테니스 동호인들 중에는 자식이 자신의 꿈을 대신 이루어줬으면하는 마음에서 일찍부터 선수를 시키거나 (유치원이나 적어도 초등 저학년에서부터는 시작해야 하니 자식의 의사와는 무관하다고 봐야) 강압적이지는 않더라도 스스로 선수의 길을 걷도록 은근한 ...
    Read More
  18. No Image

    잃으신 물건은 없으신지?

    아끼는 물건이 없어졌다면 아차싶은 내 실수나 부주의에서 비롯되어 누구 탓을 할 것도 말 것도 없을 때도 있지만 범죄를 양산해내고 보통사람들의 양심마저 좀먹어버리는 요즘 세상 돌아가는 꼴에 더 원망이 가는 경우도 있겠다. 대개 뭘 잃고 나면 내탓 남탓...
    Read More
  19. No Image

    되새김질(마땅한 수순?)

    오늘 재활치료를 받고 있는데 이제 많이 좋아졌으니 다음주부터는 하루걸러씩 오라고 했다. 종일 집안에 콕박혀 빈둥거리던 사람 그나마 등떠밀어 집밖으로 내쳐주던 고마운 일이 갑자기 반토막이 나버리고나니 귀찮은 일 줄었다고 좋아해야할지 허전&섭섭해야...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 40 41 42 43 44 45 46 47 48 49 ... 64 Next
/ 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