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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박일균
III. 90년대- 새바람을 일으킨 박성희/ 윤용일과 박성희의 메이저대회 동반 진출

88년 김봉수 선수가 호주오픈 본선에 출전한 이후 약 7년동안은 한국선수들의 메이저 무대 진출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박성희라는 재능있는 여자선수의 혜성과도 같은 등장으로 한국테니스의 메이저무대 진출에 청신호가 켜졌다. <참고: 사실 80년대에 이미 미국국적의 한국인 그레이스 킴(Grace Kim)이 호주오픈을 제외한 3대 메이저 대회에서 10회의 출전을 기록하였고 US오픈에서 두번(83, 85)이나 3회전에 진출한 성과가 있었으나 그녀의 국적이 미국이므로 여기서는 제외하기로 한다. 

 

현재 활동하고 있는 미국국적의 한국인 케빈 킴(Kevin Kim, US오픈 3회-96, 99, 00-진출)과 알렉스 킴(Alex Kim, US오픈 1회-00-진출)도 같은 이유로 제외하고자 한다.


1. 1995년
1975년생인 박성희 선수는 그녀의 나이 만18세인 1994년 초 WTA투어 오사카대회에서 예선통과자로서 8강에 진출, 준준결승에서 97년 프랑스오픈 우승자인 크로아티아의 이바 마욜리(Iva Majoli)에게 잘싸우고도(5:7, 7:6, 2:6) 아쉽게 패하였다. 

 

이때부터 그녀는 국제무대 가능성을 인정받게 되었으며 94년말 인도네시아의 수라바야(Surabaya)투어에서는 이태리의 리타 그란데(R. Grande), 대만의 왕시팅(Wang Shi Ting),독일의 페트라 베게로프(P. Begerow)를 차례로 꺽고 준결승에 진출-준결승에서 일본의 스기야마 선수에게 세트 2:1로 패함.-하는 등 메이저 무대에서 활약할 날이 머지 않았음을 예고하였다.

그녀는 다음해인 1995년 생애 처음으로 메이저무대에 도전하게 된다. 

 

1월 16일 개최된 호주오픈에 자동출전하게 된 박성희 선수는 1회전에서 한때 세계랭킹 12위를 기록한 바 있는 조지아공화국의 레일라 메스키(Leila Meskhi)를 맞아 첫세트를 0:6으로 내주지만 2, 3세트를 연달아 7:6, 6:2로 꺽는 이변을 연출해낸다. 1983년 이덕희 선수가 윔블던 1회전에서 승리한 이후 12년만에 일구어낸 메이저 대회 승리였던 것이다. 

 

그러나 2회전에 진출한 박성희 선수는 미국의 마리안느 베어델-비트마이어(Marianne Werdel-Witmeyer) 선수에게 5:7, 3:6으로 패하여 자신의 메이저 첫무대에서 2회전 진출에 만족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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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박성희 선수는 프랑스오픈과 윔블던, US오픈에 연달아 출전하면서 80년 이덕희 선수 이후 한국선수로는 두번째로 한해에 모든 메이저 대회에 출전하게 된다. 

 

5월의 프랑스오픈에 출전하게 된 박성희 선수는 ‘클레이 코트의 여우’라고 불리우는 스페인의 세계적 스타 아란차 산체스 비카리오(Arantxa Sanchez-Vicario)를 1회전에서 만나 1:6, 0:6으로 완패하며 1회전 탈락하고 말았다. 

 

다음달 열린 윔블던에도 참가한 박성희 선수는 1회전에서 프랑스의 알렉산드라 퓌세(Alexandra Fusai)선수를 6:1, 6:4로 가볍게 꺽고 2회전에 진출하게 되지만 2회전에서 93년 프랑스오픈 준우승자인 미국의 마리조 페르난데스(Mary Joe Fernandez)에게 4:6, 0:6으로 패하며 메이저 대회 2회전의 높은 벽을 실감해야 했다.

 

8월의 US오픈 1회전에서는 이미 호주오픈 2회전에서 만나 패한 바 있는 미국의 마리안느 베어델-비트마이어(Marianne Werdel-Witmeyer)에게 또 다시 5:7, 6:7로 석패하고 다음해를 기약하게 된다. 

 


US오픈 이후 벌어진 WTA 도쿄대회에서 박성희 선수는 역대 최고의 일본 선수인 다테 기미코를 세트 2:1로 꺽고 8강에 오르는 파란을 일으키기도 한다.

2. 1996년
박성희 선수는 1996년에도 4대 메이저 대회에 모두 출전하게 되어 한국인으로서는 유일하게 <2년간 연속 4대 메이저 대회 출전>이라는 기록을 세우게 된다.

 

1월의 호주오픈 1회전에서 베네주엘라의 마리아 알렉산드라 벤토 캅치(Maria Alejandra Vento-Kabchi)를 6:7, 6:4, 6:4로 어렵게 이긴 박성희 선수는 2회전에서 오스트리아의 바바라 쉐트(Babara Schett)에게 4:6, 3:6으로 패하였고 5월의 프랑스오픈 1회전에서는 일본의 엔도 마나(Endo Mana)선수를 맞아 5:7, 6:1, 6:3의 역전승을 거두고 2회전에 진출하였지만 2회전에서 미국의 거물급 선수인 린지 데이븐포트(Linsay Davenport)를 넘지 못하고 1:6, 2:6으로 주저앉고 말았다.

다음달의 윔블던에서도 1회전상대인 슬로바키아의 라드카 츠루바코바(Radka Zrubakova)를 6:2, 6:2로 가볍게 꺽으며 좋은 출발을 보였으나 2회전에서 아미 프라찌어(Amy Frazier) 선수에게 4:6, 1:6으로 패하고 말았다. 

 

8월의 US오픈에서 박성희 선수는 미국의 린다 와일드(Linda Wild)선수를 넘지못하고 1회전에서 탈락(2:6, 3:6)하였지만 한해 4대 메이저대회 모두 출전, 그중 3대 메이저 대회에서 2회전 진출이라는 성과를 거두었다.

3. 1997년
박성희 선수는 97년에 두개의 메이저 대회에 출전하게 되었다. 호주오픈과 프랑스오픈에만 출전하게 된 박성희 선수는 전년도의 성과에 미치지 못하고 두개의 대회에서 모두 1회전 탈락하게 된다. 

 

호주오픈 1회전에서는 네덜란드의 브렌다 슐츠-맥카티(Brenda Schulz-McCarthy)에게 2:6, 6:2, 2:6으로 패하였고 프랑스오픈 1회전에서는 프랑스의 산드린 테스투(Sandrin Testud)선수에게 0:6, 4:6으로 완패하였다. 

 

비록 그녀가 출전한 2개의 메이저 대회에서 모두 1회전 탈락하였지만 박성희 선수는 점차 국제적 선수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하게 되었다.

4. 1998년
97년 두개의 메이저 대회에 출전했던 박성희 선수는 98년에는 95, 96년에 이어 세번째로 모든 메이저 대회에 출전하게 되었다. 

 

그러나 호주오픈과 윔블던에서는 1회전 탈락이 계속되었고 프랑스 오픈과 US오픈에서만 각각 1승씩 거두어 그다지 큰 성과는 보여주지 못했다. 호주오픈 1회전에서는 카나다의 소냐 제야셀란(Sonyaseelan)에게 7:6, 1:6, 5:7로 분패하였고 프랑스오픈에서는 1회전 상대인 이태리의 프란체스카 루비아니(Franceska Lubiani)를 맞아 첫세트를 5:7로 내주었으나 2, 3세트를 내리 6:1, 6:2로 따내며 2회전에 진출하였다.

 

2회전에서는 아르헨티나의 마리아나 디아즈-올리바에게 2:6, 2:6으로 패하여 박성희의 2회전 징크스가 계속되었다. 이어서 6월의 윔블던 1회전에서는 프랑스의 줄리 알라-데뀌지(Julie Halard-Decugis)선수에게 2:6, 4:6의 패배를 당하였다.

8월의 US오픈에서는 한국테니스 사상 처음으로 두명의 한국인이 동반 출전하는 쾌거를 이루게 된다. 이미 자동으로 출전이 확정된 박성희 선수와 더불어 윤용일 선수가 예선을 통과하여 김봉수 선수 이후 10년만에 한국 남자선수의 두번째 본선진출을 달성하게 된 것이다. 

 

윤용일 선수는 이형택 선수와 더불어 한국 남자테니스의 대들보였지만 데이비스컵 지역예선과 아시아권의 대회 이외에는 투어급 대회 경험이 거의 없었다. 

 

윤용일 선수는 생애 처음 출전한 US오픈 1회전에서 미국의 조나단 스타크(Jonadan Stark)선수를 맞아 분전했으나 2:6, 4:6, 4:6으로 패하였고 박성희 선수는 1회전에서 체코의 렌카 네메치코바 선수에게 세트 2:1의 승리(1:6, 6:3, 6:4)를 거두고 2회전에 진출하였으나 프랑스의 나탈리 드시(Nathalie Dechy)에게 2:6, 4:6으로 발목을 잡혀 3회전 진출의 꿈을 접어야 했다. 

 

98년 한국테니스의 메이저 대회 성과는 박성희 선수의 2승이었지만 처음으로 한국남녀 테니스 선수들이 메이저 대회에 동반으로 진출한 의미있는 해로 기록되기도 하였다.

5. 1999년
99년은 박성희 선수가 1월의 호주오픈에 진출한 것이 전부였다. 

 

1회전에서 슬로바키아의 카리나 합수도바(Karina Habsudova)에게 0:6, 7:5, 1:6로 패하며 박성희 선수의 메이저 대회 출전은 막을 내렸다. 박성희 선수의 메이저 대회 성적을 종합하면 메이저 대회 15회 출전, 20전 6승 14패의 성적으로 이덕희 선수(24경기, 10승 14패)에 이어 한국선수중 역대 2위의 메이저대회 다승을 기록하였다. 

 

박성희 선수는 최고 세계랭킹도 57위를 기록하여 이 역시 이덕희 선수(34위)에 이어 현재까지 역대 2위의 기록으로 남게 되었다

IV. 2000년대- 이형택의 16강 달성/ 윤용일, 조윤정의 선전

1. 2000년
2000년에 메이저 무대에 진출한 한국선수는 이형택 선수가 유일하였다. 한국 남자 선수로는 김봉수, 윤용일에 이어 세번째로 메이저 무대에 진출하게 된 이형택 선수는 생애 처음으로 US오픈 본선에 참가, 한국 테니스사에 커다란 획을 긋는 하나의 사건을 만들어 낸다. 

 

지금껏 한국남자 선수들이 메이저 대회 본선에서 단 1승도 이루지 못했지만 이형택 선수는 예선전을 통해 피로한 몸을 이끌고도 3명의 세계적 선수들을 연파하며 메이저 대회 16강 달성, 한국 남자선수로서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운 것이다.

 

한국선수의 메이저대회 16강 달성은 이덕희 선수 이후 두번째이며 남자선수로는 처음이었다.

이형택 선수는 US오픈 본선 1회전에서 미국의 제프 타랑고(Jeff Tarango)와 맞붙었다. 경기 전부터 이형택 선수의 조심스러운 승리가 예상되었지만 상대는 당시의 이형택 선수보다 랭킹이 훨씬 앞선 80위권대였고 오랫동안 복식의 강자로 활약했던 선수였기 때문에 이형택 선수의 낙승을 점칠 수는 없었다.

 

또한 한국남자선수가 그동안 메이저 무대에서 한번도 승리를 거둔 바가 없었기 때문에 이형택 선수로서는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첫세트를 6:3으로 선취한 이형택 선수는 두번째 세트를 3:6으로 내주고 다시 3세트를 6:3으로 따내며 승리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이제 한세트만 따내면 한국남자로서는 메이저무대 첫승으로 기록되는 것이었다.

4세트에 들어선 두 선수는 6:6의 한치의 양보도 없는 공방을 펼치다가 타이브레이크에 돌입하였으나 타이브레이크 또한 6:6까지 계속되었다. 

 

4세트를 내주게 되면 경험면에서 월등히 앞서있던 타랑고가 5세트를 마무리할 확률이 높았으므로 이형택 선수는 4세트 타이브레이크에서 승부수를 던졌다. 타이브레이크 결과는 8:6. 이형택 선수는 이로써 4세트를 7:6으로 마무리하며 한국남자테니스의 숙원이었던 메이저 무대 첫승을 달성하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이형택 선수의 반란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2회전 상대가 세계랭킹 11위의 강호이자 대회 시드 11번인 아르헨티나의 프랑코 스퀴야리(Franco Squillari)였기 때문에 한국팬들은 패하더라도 선전만 기대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예상밖으로 작용했다.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이형택의 7:6, 7:5, 6:2 승리였기 때문이다. 

 

당시 US오픈을 취재하던 세계의 각국 기자들은 세트 3:0으로 끝난 이형택의 2회전 승리를 대회 최대의 이변으로 꼽았으며 이형택을 인터뷰하기 위해 하나둘씩 기자회견장으로 모여들기도 하였다.

이형택 선수의 3회전 상대는 독일의 라이너 쉬틀러(Rainer Schuettler)였다. 쉬틀러 또한 세계랭킹 50, 60위권 선수였기 때문에 이형택 선수의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운 상태였다. 

 

그러나 이형택 선수는 다시한번 기적을 일구어 내며 6:2, 3:6, 6:4, 6:4로 경기를 이끌어 국내선수로는 이덕희 선수에 이어 두번째, 남자선수로는 처음으로 16강을 달성하게 된다. 이형택 선수의 네번째 상대는 설명이 필요없는 미국의 피트 샘프라스(Pete Sampras)였다. 

 

국내 팬들은 계속된 기적을 바라기 보다는 13회의 메이저 타이틀 기록을 가지고 있는 샘프라스를 상대로 이형택 선수가 얼마나 선전할 수 있는가에 관심이 모아졌다.

더 이상의 기적은 없었지만 결과(6:7, 2:6, 4:6)에서 보듯이 첫세트를 대등하게 펼쳐 한국선수들이 톱랭커를 상대로도 해 볼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여주었다. 

 

이형택 선수는 US오픈 이후 랭킹이 급상승하여 당시 김봉수 선수가 가지고 있었던 한국 남자테니스 선수의 최고랭킹(129위) 기록을 돌파하였고 이후에도 선전을 거듭하여 100위권 내로 진입, 세계적 선수로 부상하게 되었다.

2. 2001년
2001년은 한국테니스 선수들이 비록 한번의 승리도 기록하지 못한 해였지만 메이저 무대 동반 진출이 돋보였던 해였다. 6월의 윔블던에서 이형택 선수와 윤용일 선수가 나란히 본선에 진출하였고 US오픈에서는 이형택 선수와 조윤정 선수가 동반으로 출전하였다. 

 

전년도 US오픈 16강 달성과 영국 브링턴의 삼성오픈에서 4강에 진출하며 랭킹이 급상승한 이형택 선수는 호주오픈에 자동출전하게 되었고 1회전에서 에콰도르의 니콜라스 라펜티(Nicolas Lapentti)와 마주쳤다. 

 

라펜티는 한때 세계랭킹이 10위권 안에 들었을 정도의 상위랭커였고 이형택 선수가 2000년 홍콩대회에서 라펜티와 한차례 만나 패한 바 있었다. 

 

이형택의 호주오픈 1회전 경기는 5세트까지 이어졌고 결과는 6:3, 4:6, 4:6, 6:3, 6:8의 분패, 결국 전년도 US오픈의 16강 신화를 재현하려는 이형택 선수의 1회전 탈락으로 끝났다.

호주오픈 이후 이형택 선수는 세계의 유명선수들과 여러 차례 만났다. 

 

미국의 산호세(San Jose)에서 안드레 애거시와 경기(5:7, 6:3, 3:6 패배)를 가졌고 아틀란타 대회에서는 마이클 창을 꺽기도 하였다. 미국 휴스턴의 클레이코트 챔피언쉽에서는 한국남자선수로는 처음으로 투어대회 준우승이라는 성과를 거두기도 하였다. 

 

5월의 프랑스오픈에 입성한 이형택 선수는 1회전 상대로 러시아의 전세계랭킹 1위 예프게니 카펠니코프(Yevgeny Kafelnikow)를 맞았으나 경기를 치르기도 전에 연습중 입은 부상이 악화되어 기권하였다.

 

이에 따라 이형택 선수의 프랑스오픈 출전은 공식기록되지 않았다. 다음달에는 98년 US오픈에 윤용일, 박성희 선수가 동반 진출한 이후 두번째로 두명의 한국선수가 윔블던 본선에 진출하였다. 

 

예선을 거친 윤용일 선수와 자동출전한 이형택 선수는 각각 러시아의 예프게니 카펠니코프와 독일의 다비드 프리노질(David Prinosil)을 1회전에서 만났으나 윤용일 선수는 4:6, 2:6, 4:6으로 패하였고 이형택 선수도 7:6, 2:6, 4:6, 4:6으로 역전패 하였다.

 

두명의 한국선수가 패하기는 하였으나 비교적 선전한 경기로 평가되고 있다.

8월에 열린 US오픈에서도 윔블던에 이어 두명의 한국선수가 본선진출을 이루어 냈다. 이미 최고랭킹을 60위로 끌어올린 이형택 선수는 자동출전하였고 예선을 거친 조윤정 선수의 첫 본선진출이 돋보였다.

 

US오픈 1회전에서 프랑스의 니콜라 에스뀌드(Nicolas Escude)를 상대한 이형택 선수는 2:6, 1:6, 2:6으로 완패하였고 조윤정 선수는 러시아의 기대주 엘레나 데멘티에바(Elena Dementieva)를 상대로 3:6, 5:7로 패하긴 하였으나 상대적으로 적은 범실을 기록하는 등 선전한 경기로 평가되고 있다.

2002 호주오픈에는 이미 조윤정 선수가 와일드카드를 부여받아 출전을 확보해놓은 상태여서 한국선수의 메이저 무대 활약은 95년이후 매년 1회 이상 지속되고 있다.

 

이제 한국테니스는 끊임없는 메이저 대회 진출로 그 위상이 드높아져가고 있으며 언젠가 메이저 무대에서 우승하는 그날까지 세계무대의 도전은 계속될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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