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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셨어요?

코트에 뜸하다보니 코트에 붙박이로 살던 사람이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하는 지인들로부터 뭐하고 사느냐는 근심어린 질문을 많이 듣는다.
테니스 말고도 재밌는게 많더라구요하는 대답을 건성으로 하지만
딱히 내가 뭘로 바쁜지 모르는채로 시간은 잘도 가서 벌써 연말얘기가 나온다.

테벗들은 지금도 땡볕 아래서 땀흘리며 열공하고있다거나
수은주가 급강하해도 시합장을 찾는다는 사실이 문득문득 떠오르면
조금만 걸어도 뭘 좀 들어날라도 이내 시큰시큰하고 욱식거리는 몸이
그리고 그런 상황을 자초한 나자신이 한없이 원망스러워졌다.

물론 생활에 여유가 생긴 건 좋은 일같다.
전처럼 비오는 날 날잡아 영화를 몰아보느라
머릿속에서 괜찮은 영화들이 온통 뒤죽박죽으로 엉키지 않아서 좋고
옛친구를 만나 서로 사는 얘기 나눌 수 있으니 좋았고
이제까지와는 다른 관심과 흥미를 쫓다 닿은 인연에게서
기대하지 않았던 따뜻함을 느끼면서 놀랐는데
학교를 떠나 나이들면 마음 줄 수 있는 친구를 새로 만나는 일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선입견은 여지없이 깨어졌다.

마음을 열고 진심으로 누군가를 대하게 되면
생의 어느 즈음에서든 만남은 인연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깨닫는다.
손이 가는 책을 도서관 서가에서 마구 꺼내 읽다가도
독서가 나름 가닥이 잡혀오고
앞으로 코트에서도 게임 사이사이 쉬는 동안
조용히 책 펴든 사람을 용인해줬으면하는 생각마저 든다.

사람이 태어나기를 미련을 타고나서인지
그동안 테니스에 관한 것만 써야하고
테니스에 한정된 얘기만 나눠야한다는 강박이 있었나보다.
도로 아이가 되어가는지
글보다 그림이 더 많은 화집을 넘기고 있으면 마음이 평온해지는데
테니스 외적인 그 밖의 것들에 대해 말하고 글을 쓸 때 역시
뭐하나 급할 게 없는 아이처럼 편안했다.

미술사적으로 중요한 화가인 카라바지오는
성정이 급하고 천재라서 요절했다정도만 알고 있었다.
그가 활동했던 17세기 초 테니스는
이미 궁중의 담을 넘어 귀족과 중상공인에까지 인기리에 퍼져나가고 있었다는데....

2주간의 작업 후 그는 데리고 다니는 하인과 함께 한 두 달간 칼을 들고 테니스장 여기저기를 으스대며 다녔고 싸움이나 논쟁에 개입되기도 했다.'  그러다가 1606년 5월 29일 테니스 경기도중 말다툼 끝에 상대인 젊은 남자를 살해하고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그는 현상금이 걸린 채 로마를 도망쳐 나왔다. 이후에도 1608년 몰타에서 말다툼에, 1609년에 나폴리에서 또 다른 말다툼에 개입되었다. 이런 요인들로 인해 정체를 알 수 없는 적이 그를 고의로 살해한다. 다음 해인 1610년에 그의 10여 년간의 활동을 뒤로한 채 포르토 에콜레(Porto Ecole)에서 사망했다.(이 부분은 위키백과에서 긁어다 놓았다)

테니스를 피하려고 맘대로 꺼내읽었던 테니스와 무관해보이는 그림책에서조차
테니스를 만나게 되다니 아무래도 난 테니스에서 자유로울 수 없나보다하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 테니스에 마음의 야트막한 담을 쌓고 게임복귀를 하루하루 미뤘는데
얼마 전 데뷰전 치르고 살살 몇게임씩 하고나니
다시 코트에 서서 공을 친다는 사실에 행복한 웃음이 터지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굼뜬 발과 초라한 성적에 이걸 또 해야하나하는 회의로움도 느껴진다.




[테니스는 어떻게 완성 되는가?]




  • 이상돈 11.03 08:20
    나이가 많이 들면 이전 젊었을 때보다 한참 뒤처진 스피드와 파워로 실버 선수들과만 게임을 해야하겠죠. 어차피 그런 서글프지만 테니스의 재미는 가지고 즐겁게 치시는 노인분들을 보면 화려한 샷과 숨가쁜 스피드를 지향하는 저의 목표를 잊어버리게 됩니다. 모두가 제각각 폼으로 레슨 받기를 거부하는 저희 클럽의 회원들이 나름대로 재미있게 즐기는 것을 보면 '저 폼을 언제 교정하려나'하는 저의 한숨을 그들의 엉성한 샷으로 위너를 먹이고 신나게 웃는 웃음이 잠재워 버립니다.

    테니스의 재미,
    실력보다 더 중요한 게 아닌가
    나이들어 가는 몸을 보면서 느끼게 됩니다.
  • 디제이(이덕재) 11.08 11:04

    우환은 연달아 찾아온다더니 최근에 어쩔수 없이 병수발 할일이 아주 떼거지로 몰려 들어와서

    병원에서 살다싶이 하다보니, 스스로 두발로 딛고 일어서서 화장실 출입만 할 수 있어도 행복한거고

    실력의 고하에 상관없이 뛰어다니면서 테니스 치는 사람들은 축복받은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더군요.

    코트에서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말에 상처받을 일이 많지만 이제는 나로 인해서 상처를 받거나 짜증을

    겪은 사람도 많이 있었다는 생각도 들고, 어쨌든 운동을 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히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