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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자리의 힘

저녁 술자리는 뺑돌이 소리를 들어도 할 수 없다 빠지지만
순진하게 밥만 먹으러 따라갔다
점심먹으면서 자연스레 이어지는 반주하는 자리는 심적 무방비 상태에서 ....
아직도 내게 술을 권하는 분이 종종 있어서
마지못해 받은 아까운 술을 식탁 아래 물컵에 눈치껏 옮겨 담는다.
안 마시는 걸 뻔히 아는 친한 분도
당신이 조금 취하셨는데 갑자기 술 안마시고 앉아 떠드는 내 꼴이 얄밉게 비쳐지면 바로 기냥 .....
기호품으론 술, 담배, 커피 그리고 음식으론 밀가루, 쇠고기, 개고기(개나 소나 ㅋㅋ) 밖에 안먹는게 없는데
엄청 건강챙기고 까다롭고 까탈스러운 걸로 소문이 나있어 무척 억울하다.
사실 건강을 그처럼 열심히 챙기는 사람이라면
애들이나 좋아하는 초코렛과 아이스크림, 팥빙수를 입에 달고 살지는 않을텐데....
친가 외가 모두 몇대째 간에서 알콜분해효소를 못만드는 집안임과 체질을
조목조목 설명해도 술도 공처럼 배워야 는다고 공이 늘려면 술부터......
어쩌면 내 호기있는 말투나 술 잘하게 생긴 얼굴(?) 그리고 전체적으로 풍기는 인상이
남들에게는 "말술"처럼 보여지기 때문에 아직까지도 술 마시라는 강권을 당하고 있으니
이 모두가 내 탓이요 내 탓이다.
남들이 맥주파와 소주파로 나눠 앉으면
그 중간에 앉아 음료수라고 시켜주는 콜라나 사이다를 홀짝이면서
술좌석 초반의 대화에는 적극 참가한다.
하지만 술들이 좀 들어가면서 뭔 말인지 모를 말이 오가기 시작하고
갑자기 기분이 나빠져서 화를 내거나 반대로 슬퍼지는 사람이 나오고
아무리 맨정신에 미친척하고 장단을 맞추려해도 슬슬 재미가 없어지고
이시각 이자리에 있는 것이 후회스럽고
도망갈 궁리하느라 잔머리가 바삐 돌아가고
박차고 일어날 용기없는 자신에 짜증이 나고......
그나마 1차에서 파하고 집에 가게되면 다행인데 그런 일은 드물고
그냥 한자리에 퍼질러 있는게 안주 더 안시켜도 되고 절약일텐데
왜들 자리를 옮기는지 2차 3차....
끝날 때가 안보이는 술자리지만 그래도 파하고 집에 들어가긴하는데
술안마시고 뺀질거린다고 밉상이었던 내가
갑자기  최대리가 되면서 상종가를 치는 순간으로 이제까지의 나에 대한 평가가 반전된다.
사실 나로선 이때가 가장 아슬아슬한 선택을 해야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모질게 혼자 돌아오든지,
아니면 취한 아줌마 몇을 태우고 여기저기 집앞에다 떨궈주든지
(다행히 취중에도 쥐어준 비닐에다 오버이트를 하고 또 이 비닐이 안샌다면...)

내가 생각해도 내 강점은 처음보는 사람을 쉽게 잘 사귄다는 점이다.
게다가 테니스 치는 사람이면 몇 분 안걸린다.
그런데 어제 강적을 하나 만났다.
부상 탓에 한 달만에 코트에 나갔더니 신입회원 한 분이 가입한지 열흘 됐다고 인사를 해왔다.
통성명 후 의례적인 호구조사에 무슨 띠에 구력 얘기하고 화기애애....
월례대회는 비 때문에 중단되고 가위바위보로(묵찌빠도 동원됨) 우승 상품 나눠갖고
라카에서 북적대며 준비한 술과 음식을 나누고 호프집에서 노래방으로의 수순을 밟고...
그런데 새 아저씨를 유심히 관찰하던 내 레이다에 이상이 생겼다.
그래서 이 신입을 자처하는 아저씨한테 혹시 우리코트에 연고가 있었는지
즉 내가 가입하기 전 회원이었다가 재가입한 게 아닌지 되물었다.
이도저도 아니라는 대답.
궁금과 의아함에 이리저리 궁리하다
아저씨 화장실 갔을 때 옆에 앉은 이사람저사람한테 물어보니
가입하고 줄창 저녁 때 코트에 나오면서 술자리도 모범적으로 참석하셨다고....
아!
내가 모두와 친한 듯 하면서도 뭔지 모르게 관계의 진도가 안나가는 것같고
어쩐지 겉도는 은따(은근한 왕따)인 것 같은 자격지심이 가끔 들었는데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어제 술자리에서
어느 고수는 술김에 자신의 이십년 비장의 비결을 순순히 털어 놓았고
이 아저씨는 눈을 빤짝거리며 그걸 머리에 새기고 있었다.
다른 고수 한분은 이 아저씨한테 에이조로 끌어올려주겠다는 약조를 하고 있었다.
문득 "유리천장"이란 말이 생각났다.
조직에서 상향이동하는데 장애요소로 작용하는 보이지 않는 장벽이
계급, 성, 지역, 연령, 학력, 그리고 테니스에선 공치는 실력 외에도
술자리라는 끈끈한 인간관계의 그물망의 터전이 있다는 것을.....
과연 술 못하면서 공 잘치기는 낙타와 바늘구멍이련가하는 씁씁한 질문을 하게 된다.





[테니스는 어떻게 완성 되는가?]




  • 심재명 08.28 01:30
    너무 재미있습니다. 글 참 맛깔나게 잘 쓰시네요..
  • 최혜랑 08.28 02:00
    아니 이 새벽에 안주무시고 답글을!
    혹 저처럼 낮잠 잔 날이나 커피아이스크림 먹은 날은 불면증에 시달리시는지?
  • 全 炫 仲 08.28 09:48
    저도 테니스와 술에 대해 고찰해본적이 있습니다.처음에 운동후 볍게 맥주한잔으로 시작하다가도 중간에 테니스의 기술적인 이야기나 다른사람이야기가 나오면 술자리가 길어지는 패턴을 보이더군요.

    테니스 자체가 좋은 안주가 되다보니 술자리가 길어지는것도 같고요...

    스트레스 해소차원에서는 좋은데 몸관리 차원에서는 과음은 안좋을듯.......

    그나저나 언제 혜랑님꼐 소주한잔 올려야 하는데...^-^
  • 정보맨^^ 08.28 17:53
    과연 술 못하면서 공 잘치기는 낙타와 바늘구멍이련가하는 씁씁한 질문을 하게 된다.
    ==>바늘 구멍 통과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 낙타 여기에도 있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술자리에서 얻을 수 있는 비장의 노하우 같은 것 없습니다.
    (테니스가 취권도 아닌데 술자리에서만 얻을 수 있는 비장의 노하우가 있을리 만무^^)

    다만 술자리에서 오가는 대화 등을 통해서 많은 것을 듣고 인생에 도움이 되는
    경우는 많다라는 생각은 하게 됩니다. 제가 대학생때부터 동네 클럽의 술자리에
    따라 다니다보니 이런저런 얘기를 들으면서 많이 배운 것 같더라구요.^^
    (테니스를 치기를 잘 했다고 생각하게 되는 몇가지 좋은 점 중에 하나입니다.)

    테니스장에서는 기본적인 예의만 지켜주는 정도면
    테니스 실력이 쌓이면 흔히 말하는 [대접]받는 것은 자동적으로 되지 않나 싶습니다.

    그리고 지극히 개인적인 견해이지만
    [고수]라는 단어는 빨리 사라져야 하지 않나 생각됩니다.

    전국대회를 관람해보고 십수년 테니스를 치면서도 저 스스로
    저 사람은 정말 진정한 '고수'이구나라고 생각되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인데
    대체적으로 동네마다 고수가 있으시더군요.

    초급자, 중급자, 상급자 정도로 분류하면 되는 것을
    하수, 중수, 고수라고 분류를 해서 고수라는 칭호를 듣는 사람들에게는
    필요 이상의 뻐김이라는 유혹의 선물이 던져지고
    하수라는 칭호를 듣는 사람들에게는
    취미일 뿐인 테니스로 인해서 괜한 스트레스와 멸시를 감내하게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볼 때가 한 두번이 아닙니다.

    삐딱한 생각이겠지만 누군가가 저를 고수라고 부르면 저 스스로 창피하기 그지 없고
    누군가가 고수라고 소개를 해주신 본인 스스로 고수라는 생각과 풍모를 강하게
    풍기면 그야 말로 삐딱한 승부욕을 불태우면서 독하게 테니스 치는 저를 발견하면
    저 스스로 저도 아직 멀었구나...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 주엽 08.29 13:41
    몇 달 전 이 사람은 진짜 매너가 아니다 싶어서 근 3년여 만에 가장 민첩하게 움직이면서, 집중력을 갖고 승부욕에 가득 차서는 상대의 말과 행동에 하나하나 대응을 한 적이 있는데...
    사실 많이 후회됩니다...ㅎ
    나이가 상대적으로 많은 분이라 더 그런지도 모르겠네요...

    동네고수든 전국구 고수든
    하수의 상대적인 고수라면, 상대적으로 뛰어난 기술이나 능력이 있다면 일단 그들의 노력과 열정은 인정해주며
    고수라는 단어 자체를 여유롭게 봐줘도 좋을 듯 싶습니다..

    어쨌든 정보맨님 정도면 진정한 고수 아닌가요?
    왜 창피해해야 하는지...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