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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킨쉽 유감

차를 타고 지나치다보니 요즘 통 코트에 나오지 않는 아저씨가
여러자루의 배드민턴 라켓을 배낭에 매고 길을 가고 있는 걸 보게 되었다.
일전에도 착하던 아저씨 하나 배드민턴으로 전향해버려 서운했었는데
또 참한 아저씨를 배드민턴에 뺐겼나보다싶어 차를 세우고 유리창을 내려
"배드민턴으로 업종전환하셨어요?"하고 물었다.
얼른 날 못알아보는 눈치여서
(요즘 두문불출 볕을 안쐬다보니 얼굴이 도로 희어져서
새까만얼굴에 운동복차림만 보던 분들이 날 못알아보고 지나치기 부지기수라)  
테니스라켓 휘두르는 시늉을 했더니 이내 반색을 해와 서로의 안부와 근황을 묻고
본론으로 돌아와서 왜 테니스 안하시냐고 채근을 했더니
"배겨내기 힘들데요."란 답이 돌아왔다.
학교 다닐 때 잠깐, 오래 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아주 잠깐쳤던 구력으로
입회는 했지만 아파트단지클럽의 첩첩이 쌓인 높은 문턱들을 넘어서기 어려웠을게다.
배드민턴은 그냥 아이들이랑 해보려고 들고 나왔다는데
"아빠 이 아줌마 누구야?"하고 뒤따라오던 꼬마 둘이
내 차에 바짝 붙어 아빠랑 날 의심스런 눈초리로 번갈아 살핀다.
나보다 한두학번 아래로 알았는데 결혼이 늦었나 자식농사가 늦었나
아니면 아빠닮아 키가 작은가 둘 다 아직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보였다.
너희 아빠랑 운동같이 했던 아줌마하면서 유리창을 올렸고
차는 미끄러지듯 다시는 테니스라켓을 들지 않을 아저씨에게서 멀어져갔다.

우리아이가 저 꼬마들만 했을 때가 생각났다.
주일학교교사모임을 춘천에서 한다해서 아이 데리고 기차타고 내려갔는데
춘천역으로 마중 나온 남자선배가 날 보자 덥석 안아버렸다.
십 여년 만에 만났으니 반갑기도 했을 것이고
오랫동안 외국생활했으니 뭐 이 정도야 했는지도
아무튼 그 때 우리 아이도 그 꼬마들처럼 엄마의 불륜현장을 목격한 듯한
의심스런 눈망울로 금새 울음을 터뜨릴 것 같았다.
그 선배는 이번엔 아들을 번쩍 들어올려 내가 니 삼촌이다하면서
또 심하게 안아서 결국 아이는 빠져나오려고 악을 쓰다 울음을 터뜨렸다.
아이들 눈엔 자기 엄마나 아빠가 자신이 모르는 아저씨 아줌마랑
말을 섞거나 악수나 하이파이브를 하는 것이 못참을 일일 게다.
그런데 아이들만 그럴까?

테니스장 인근의 주민들은 테니스 코트를 혐오시설로 간주해서
주차장으로 용도변경하거나 아예 없애버리려고 혈안이 되어 있다.
그들의 반감은
우리는 너무 익숙한 테니스문화에 대한 오해나 편견이 크게 작용했을 터인데
여성들은 노출이 심한 민소매에 아슬아슬한 짧은 치마를 입고 다니고
남녀가 어울려 아무렇지도 않게 웃고 떠들고 술까지 마시는 걸 보고
개판이라 눈살을 찌부리거나 풍기문란 수준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코트에서 또는 뒷풀이 술자리에서
친밀감을 스킨쉽으로 나타내려는 아저씨들은 대부분 여성회원들의 공적1호지만
스킨쉽을 즐기고 이에 아주 적극적인 정말 말리고 싶은 여성회원도 몇 있다.

우리는 철저히 이기적이라 남의 일에는 절대 참견않는 국민도 아닐 뿐 아니라
아직 모든 게 관용이 되는 너그러운 사회에 살고 있지도 않다.
대통령이 테니스매니아라해서 이제 한국테니스가 살판이 난 줄 아는 사람들이 있는데
얼마 전 황제테니스 논란을 잊었는지...
테니스를 치지않는 그래서 테니스에 무관심한 사람이 절대다수다.
테니스를 하찮은 도락으로 무시하거나 노골적인 적대감으로 대하는 시선도 만만찮게 있고
우린 이들을 의식하고 조심해야한다.

얼마 전 라카에서 어떤 아저씨의 살짝 음담패설에
내 딴엔 그저 재치있게 장단만 맞추었다고 생각했는데
이를 몹시 불쾌하게 생각한 분이 있었다고.
아저씨들과 격의없이 대하고 유난히 남자 공을 밝히는 나지만,
가끔은 우리클럽회원게시판처럼 남자 따로 여자 따로였으면 좋겠단 생각이 든다.





[테니스는 어떻게 완성 되는가?]




  • 테사랑 01.30 20:58
    오늘도 새삼 느꼈지만...
    이 테니스 세계가 참 좁고
    그리고 참 이런저런 말이 많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언니와도 그런 대화를 나눴지만
    아무개씨가 누구랑 사귀더라...
    아무개씨는 싱글이다 아니다 돌싱이다
    라는 등의 이런저런 사연들을 풀어내면서
    정말 처신(?)을 잘해야 한다는 생각도 들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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