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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공에게 배운 것

동병상련 때문인지 부상으로 운동 쉬는 동안의 소회를 담은 어떤 분 글에 공감도 가고
그래 이런 상황에선 다들 이런 생각이나 행동을 하나싶어 어수선한 내 마음에 채근을 덜하게 되었다.

공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만큼 다시 공 칠 수 있을까하는 불안함이 고개를 쳐든다거나
다른 사람들 공 치고 공 느는 것을 지켜보며 불편하고 조급한 심정이 되기도 했다가
선거일개표결과 상황판처럼
일희일비하며 시시각각으로 바뀌는 테니스판 인간군집 내 관계의 변화도를 그새 못읽어내겠고
오히려 번잡한 테니스 판에서 한발 물러나 있으니(더 여러 걸음 뚝 떨어져 나와있는지도 모르지만)
세상에 테니스 말고도 의미와 가치를 추구할만한 것이 많이있다는 생각도 들고....

내게 있어 테니스는 질적 양적으로 삶의 너무 많은 부분을 차지했던터라
공백이 주는 헛헛함이 상대적으로 컸던 것같다.

운동은 쉬고 있지만 나이 순으로 돌아가면서 맡는 임원이란 책무까지 못하겠다는 말을 못해
클럽행사나 경조사에는 여전히 참석하는 편인데
어느 땐 땀냄새 푹푹 나는 운동복입은 사람들 가운데 연한 샴푸냄새를 풍기며 혼자 사복차림이기도 하고
아직 우리테니스공동체는 양성평등사회라는 시대조류에 역행하지 않나싶은 의구심도 들었다가,
또 어떤 때엔 회원들의 관심이 집중된 현안에 대해 무심하거나 잘 모르고 있다가 무안할 때도 있다.

가끔 재미있는 관찰도 하게 되는데,
유명 지도자모임에서 우리클럽을 방문해 회원들과 친선게임을 하는 행사가 있었는데
남자회원 대부분은 자기 파트너였던 지도자들을 이름이나 얼굴로 인식하기 보다
빨간 티셔츠, 까만 바지, 어떤 색 모자 쓴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다가
샤워하고 위아래 말쑥한 새옷으로 갈아입고 뒷풀이 장소로 나타난 지도자들을 보고
누가 자기랑 파트너했던 분인지 얼른 알아보지 못했다는 점이 性差의 좋은 예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동안 회원들에게 얼굴 잊히지 않을 정도로 드문드문 나오다보니 코트에 잠시 머물 때에도
내 몸에 맞지 않는 옷을 걸친 듯해 훌훌 벗어던지고 싶거나
남들이 하하호호하는 면전에서 난 목놓아 울고 싶으니....
와선 안될 곳에 나와 있는듯한 어색함에서 발걸음 끊고 살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던 차에 여지껏 한번도 접하지 못했던 일인데 새로 시작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내 나이에 게다가 경험이 전무한 처지에 가당치 않은 일이라 한동안 버겁고 버벅댈게 뻔하고
아직 신뢰의 기반도 마련되어있지 않은 상태라 겁도 나고 주저스런 마음이지만
기회일 수도 있고 도전해보는 것이 손해볼 일도 아니고 나름 의미있는 일같아 일단 해보기로 했다.
8년전 내게 철저한 미지의 영역이었던 테니스에서의 경험이
움츠러들 때 용기를 북돋아주고 어려움에 닥쳤을 때 인내심을 발휘할 수 있는 힘을 주겠지하면서.
회복이 되어 운동할 만해지면 테니스에 대한 갈증이 더 심해질텐데
공치는데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드는 것이 가장 서운한 일이다.

에러를 줄이는 것이 게임의 불문율이지만 내가 이해하는 테니스는 에러에 관대한 스포츠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지만 테니스선수는 더 자주 떨어지고 실수하고 잘못을 범한다.
그래도 상대보다 에러가 적으면 이길 수 있고
에러에서 또 패배에서 하나씩 배우고 조금씩 깨달으면 내일은 보다 나은 플레이를 할 수 있게 된다.

테니스를 통해 만난 사람들에 대해 감탄이나 칭찬을 또는 불평과 비난을 하면서 내 위주로 평해왔는데
돌이켜 생각하니 대부분 순수하다거나 이해타산적이란 양 극단의 중간쯤에 흩어져있는 보통사람들이었다.
많은 분들과의 만남을 통해 내 모난 곳이 둥글어도 지기도 했고,
새로 모난 구석이 불쑥 생기도 한 것같고
나 역시 같이 공친 사람들에게 쬐끔은 선한 기운을 전하기도 했을 것이고 때론 못된 성격 탓에 테니스에 대한 나쁜 인상을 주었을 것이다.
이 글을 쭉 읽고보니 꼭 곧 떠날 사람의 말처럼 들리지만 훌쩍 떠나지도 못할 것이다.
테니스가 큰 나무처럼 내 안에 단단히 뿌리를 내리고 있는데 어떻게....




[테니스는 어떻게 완성 되는가?]




  • 서아름 05.17 13:24
    테니스 초보지만 감히 공감이 가는것이 상당히 많네요. 잘 읽었습니다^^
  • 배문수 05.18 10:05
    글 잘읽었습니다...테니스장도 복잡한 인간군상의 피사체더군요...몸은 다 회복되셨는지요?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 윈윈 05.18 12:04
    몸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 바람도리 05.21 20:24
    테니스가 에러에 관대한 스포츠라는 생각... 참신하네요.
    세상살이도 그래야 할 텐데...
    돌이켜 보면 저 역시 온갖 가시로 주변 사람들에게 생채기를 내지 않았나 반성이 됩니다.
    새로 시도하시는 일에서도 성공하시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