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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과 수다 사이 어디쯤에

성공의 열쇠라며 재치있는 대화술에 대한 강좌와 책이 넘쳐도
침묵이 금이란 경귀만 못하단 생각이 든다.

주위에 다수에 의해 사람 좋다는 긍정적인 평을 받고 있고
딱히 그 사람 싫다는 사람이 없는 사람들이 갖는 공통점은
말이 별로 없다는 점인 것 같다.
글쎄 난 누가 입 앙다물고 있으면 화난 것같고 속을 알 수없어 답답하기만 하던데
참 나도 외국에서라면 그러는게 가능하겠다.

그 사람의 좋은 점을 높이 사는 사람이 주변에 다수 있더라도
철천지 원수처럼 여기는 사람 역시 그만큼 있다면
말수가 적은 것과 반대인 경우라고 생각하면 된다.
툭툭 생각없이 던진 말들이 자신을 입빠른 사람, 촉새, 독설가 등등으로 불리게 하고
부메랑이 되어 다시 자신에게로 향하고 있는 줄 본인도 짐작은 하겠지만
타고나기를....그 자신도 어쩔 수 없는 일일 것이다.
글쎄 여기서 기준이 나라면 나보다 심한 사람들을 얘기하는 것이지만.

공자님이 나이들면서 쉬워진다는 덕목들이 어째 나에게는 거꾸로인지.
몇년전 공개사과도 한 이력이 있는 나지만
잘못을 사과하는 일이나
또 용서를 구하는 사람의 진심을 받아들이는 일들이 전보다 점점 어렵게 느껴진다.

웃고 있던 얼굴에 드리웠다 지나가는 어두운 낯빛이 보여
내가 뭘 잘못한 거지하고 움추렸다가도
이내 상대의 변덕스런 성미 탓이거니하는 자기합리화를 하게 됐고 마음의 평화를 얻었다.
그런데 내 마음에 걸렸던 그 일이, 내 그 한마디가
그 사람에게는 잊고 있었던 불쾌한 기억을 떠올리는 계기가 되었고
나쁜 마음을 먹거나 비열한 의도가 있었던 것이 아닌데
자존심에 가한 치명타로, 두고두고 울분을 자아내게하는 상처가 되었다고
사후적으로 말실수가 되버린 일을 해명하고 사과하기에 앞서
꾸역꾸역 고개를 드는 억울하다는 생각부터 다스려야했다.

이번엔 입장이 바뀌었다.
들으면서 내 안에 일렁이는 감정을 감추려고 애썼지만
마치 부주의로 급소를 드러낸 직후 복부에 직격탄을 맞은 복서처럼
고개가 휘청해지고 그 자리에서 푹 쓰러질 정도의 충격이 느껴져 순간 아득했다.
확 굳었을 내 표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된 대화로 미루어
아마 난 교양있는 척하는 연기를 자연스럽게 잘 했나보다.  

늘 공만 치면 밥한번 같이 안먹고 돌아서 집에 가기 바빴던 사람이 있었는데
도무지 우리와 섞이려하지 않았던 이유가 이전 인간관계에서 너무 시달려
새로운 곳에서의 새출발은 사람들과 거리를 두려는 다짐 때문이었다고 한다.
쑥덕거림만 무시한다면 어쩌면 그것도 바람직한 처세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치는 중간중간 주체할 수 없이 남아도는 시간에
서로의 감정을 다치거나 문제 될 소지가 없는
쇼핑, 연예인 얘기, 입시에 대한 얘기로 일관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현명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테니스는 어떻게 완성 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