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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로사항 몇가지

부상이란 놈 때문에 잠시 비워두었던 자리를 테니스가 돌아와 앉으려 했으나
어느 결에 나타났는지 폐를 제집 안방드나들 듯하는 얌통머리없는 감기바이러스란 놈이 냉큼 앉아버렸다.

첩첩산중, 고립무원인 한심한 처지를 비관만 하고 있기에는 내겐 에너지가 넘쳤다.
모처럼 여유로운 시간을 맞은 걸로 치고
그간 테니스로 해서 미루고 못하고 주저했던 이런 일 저런 활동들을 두루 해보마했으나
테니스만큼 확 끌리고 쏙 빠지고 날 송두리채 뒤흔들 수 있는 걸 찾지 못해
여전히 테니스 언저리를 배회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테니스와 내 오랜 취미였던 중매를 결합해보면 어떨까하는
야심찬 프로젝트를 구상하기에 이르렀는데
이 테니스적 중매는 계획단계에서 벌써 난관봉착이다.

먼저 인구학적으로도 매우 불리한 전망인데
테니스인구의 전반적인 노령화로
소위 결혼적령기로 볼 수 있는 이십대 후반과 삼십대 초반에 공치는 젊은이가 흔치 않을 뿐 아니라
기존 클럽에 가입해서 딱까리 노릇하는 대신 인터넷 사이트 모임 등에서 만나 점조직처럼 치고들 있다니
중늙은이의 연령대에 속해있는 나로선 그들과 접선조차 쉽지 않고
그나마 이 연령대의 자식을 둔 50대 이상의 부모들은 코트에서 뼈를 묻겠다는 각오를 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게는 테니스 판에서 밀리고 치이면서 하나 둘 테니스계를 떠났거나 그럴까하는 마음을 먹는 듯하다.

둘째 테니스적인 만남이라는 건 정보적으로 심한 열세에 놓인다는 점이다.
같은 클럽에 속한 회원이거나 어떤 계기로 해서
어느정도 지역적으로 가차이 살면서 실력이 얼추 비슷하고 코드가 맞는다싶어
파트너도 해보고 개인적으로 친하게 어울리고 하면서 이렇게 저렇게 아는 사람이 대부분이라
상대에 대해 아는 건 어디쯤 살고 대략 구력이랑 주량이 어느 정도이고 나이는 몇년 생 무슨 띠고,
일요일 오전에는 죽었다 깨어나도 교회가는 사람의 경우에는 종교까지 파악되는 게 고작이다.

결혼을 전제로 한 만남에서 따지는 소위 세속적인 조건들인 학력, 직업, 경제적 지위...등등에 대해서는
본인이 말하기 전에는 묻지도 않고 설령 물어도 대답 않는 것이 이 바닥 불문율이다.
초보시절 공 몇 번 같이 쳤다고 멋모르고 몇 학번이세요?하고 물었다가 낭패를 본 적이 있었는데
그후 학력이나 전공에 대해서 입 뻥끗한다는 건 여간 조심스러운 정도가 아니라
절대 입에 올리지 않는 것이 상책이라는 걸 체득하게 되었다.

이사 자주 다니면 재테크하는 복부인이거나 집장만 전이라 아직 전세 사나보다 짐작할 뿐이고
좋은 차에 옷을 잘 입고 다니고 씀씀이가 과하면 남편이 좀 버나보다하고
좋은 차에 옷 잘입고 다니면서도 인색하면 허세 부리나보다 내지 노후준비를 철저히 하나보다할 뿐
도통 뭐 서로에 대해 아는게 없다.

세째 확률도 내 편이 아니다.
전화통 붙들고 콜록거리면서 추진해 온 몇 건의 중매도 어째 순조로와 보이지 않는다.
이것저것 따지는 두 사람과 그 양쪽 부모를 상대해야해서 만나기까지도 어렵지만
만난다고 해도 두사람 다 서로 좋다고 하는 가능성은 확률적으로 1/4 밖에 되지않아
80%의 에러와 20%의 위닝샷으로 이루어진다는 우리들의 스포츠, 테니스를 조금 웃돌 뿐이다.

아무래도 몸 추스리고 나면 다시 테니스나 열심히 쳐야할 팔자인가보다.
마담 뚜보다는 마담 테니스란 타이틀이 나아보이기도 하고 그게 내 유일한 적성이 된 것같다.




[테니스는 어떻게 완성 되는가?]




  • 파워핸드 04.15 01:53
    그러게요...
    쉬운 일이 절대 아니죠?
    그렇다고 마담테니스는 어떻습니까?
    그것도 수월하진 않죠?

    지금까지 하신 일들 만으로도 복 많이 받으실 겁니다.
    아자아자~~ 중매도 테니스도 진정한 마담이 되시길 바랍니다
  • 최혜랑 04.15 21:01

    Love at First Sight
    by Wislawa Szymborska (노벨상을 수상한 폴란드 시인)

    Both are convinced
    that a sudden surge of emotion bound them together.
    Beautiful is such a certainty,
    but uncertainty is more beautiful.

    Because they didn't know each other earlier, they suppose that
    nothing was happening between them.
    What of the streets, stairways and corridors
    where they could have passed each other long ago?

    I'd like to ask them
    whether they remember-- perhaps in a revolving door
    ever being face to face?
    an "excuse me" in a crowd
    or a voice "wrong number" in the receiver.
    But I know their answer:
    no, they don't remember.

    They'd be greatly astonished
    to learn that for a long time
    chance had been playing with them.

    Not yet wholly ready
    to transform into fate for them
    it approached them, then backed off,
    stood in their way
    and, suppressing a giggle,
    jumped to the side. There were signs, signals:
    but what of it if they were illegible.
    Perhaps three years ago,
    or last Tuesday
    did a certain leaflet fly
    from shoulder to shoulder?
    There was something lost and picked up.
    Who knows but what it was a ball
    in the bushes of childhood.

    There were doorknobs and bells
    on which earlier
    touch piled on touch.
    Bags beside each other in the luggage room.
    Perhaps they had the same dream on a certain night,
    suddenly erased after waking.

    Every beginning
    is but a continuation,
    and the book of events
    is never more than half open.
  • 우와 04.16 11:06
    허걱~
    인간이 기억하는 것, 알고 있는 것은 아무 것고 없는 것이가요?
    분명 우리가 기억하고, 알고 있는 것이 있기는 있는데...
    우리가 알고 있는 어떤 것도 결국 알고보면, 의미있는 context상의 연결점이기도 하고, 의미 없는 context의 연결점이기도 해서 어째든 우리가 알지 못하는 묘한 인연이 있는 것같군요...
    그 의미있는 context로 연결되면, 기억이 될 확율이 높겠지요?
    아인슈타인은 uncertainty와 확율을 싫어 했었는데...
    uncertainty와 확율은 모든 것을 복잡하게 하는 기전인 것 같기도하고...
    uncertainty와 확율은 우리가 상상이 미치는 범위가 훨씬 넘는 복잡성을 최대한 간단화하는 기전인 것 같기도하고...

    엊그제, 우리아이가 어떤 책에서 읽었는데, 모든 것을 기억하는 사람이 나오는 소설을 읽었다고 들었는데... 나중에 그 이야기 좀 들려달라고 해야겠습니다... 아참 오늘은 테니스치는 날이니까, 집에가면 아이는 자고 있겠군요... 내일 물어봐야겠습니다...
    생각하게하는 순간은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