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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와 장마

내일이 하지라고.
해서 벌써 올해의 반이 지나 버린 셈이다.
반년동안 뭘 했고 얼마만큼 이루었나를 돌아보면서 씁쓸해하다보니
연말에는 지금보다 더 허탈해질 것이 분명하다.
한해의 허리인 이 즈음을 지날 때마다
몇 년전 새벽잠 설치며 부시시한 몰골로 라켓 들고 뛰어나갔던 일이 떠오른다.
내 테니스 원년이 짧은 테니스 개인사에서 테니스적으로 제일 부지런했던 시기였다.
아침잠이 많았던 야행성 부엉이라서 거의 그 시간에 밖에 나가 활동하는 건 고사하고
깨어있어본 적조차 없던 나로선 테니스란 운동 땜에
완전 새로운 시간대에 깨어있는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게 됐다.
당시 빨리 늘고 싶었던 공욕심있는 몇명이 새벽난타모임을 가졌는데
하지가 다가오면서 해가 길어지고 새벽 동트는 시각이 빨라지자
조금씩 해보다 빨리 코트에 나오는 바람에 아직 사방이 고요하고 어슴프레해서
공이 네트를 한참 넘어오고 나서야 공이 보이기 시작해 깜짝 깜짝 놀라면서 공을 쳤던 것 같다.
아마 그 때문에 준비가 늘 늦고 그것을 보완하려고 헤드업하는 나쁜 습관이 몸에 밴 것일까?
코트 바로 앞 동의 아파트 주민들의 민원을 살까봐 공치면서 입은 앙 다물었고
가끔 좋은 샷을 치고도 그 감격과 기쁨의 소음이 입밖으로 새어나갈까봐 이를 악물고 삭혀야만 했다.
그 시기 억압에 대한 반작용으로
요즘 난 괴성녀라는 별로 달갑지 않는 사라포바의 별명을 갖게 되었는가보다.
하지가 지나면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면서 낮이 긴 여름이 오지만 실은 하지를 정점으로,
하지 이후부터는 일출에서 일몰까지의 시간은 야금야금 줄어든다.
또하나.
테니스인의 최대 공공의 적인 장마도 이번 주부터 시작된다고.
월드컵 신화를 이룬 즈음 생활체육으로 테니스를 시작했던 엄마들은
스스로를 지렁이라 불렀는데 비만 오면 인조잔디였던 관문코트를 예약해서
다 꿈틀꿈틀 기어나온다고 해서 자칭/타칭의 별명이 되었다.
특히나 클레이코트 회원이신 분들은 길게는 한달 장마기간동안 테니스금단현상으로 괴로우셔야 할텐데.....




[테니스는 어떻게 완성 되는가?]




  • 크로스 06.21 00:38
    볼도 많이 못쳤는데 벌써 장마라니 너무 서운하네요...

    내일 비온다 해서 오늘 원없이 칠려했는데 3게임하니 체력이 바닥..ㅎㅎ

    장마기간에는 집에 점수 좀 많이 따놔야 겠어요...^^;
  • 이설화 06.21 06:24
    혜랑님의 연습 모습이 눈에 선하네요.
    혜랑님의 글을 보면 힘이 불끈...ㅋㅋ(왜일까요??)

    새벽녘 몇방울의 비가 내리드만 지금은 잠시 주춤....^^
    오늘부터 장마라고 하니 아마도 낮에는 제법 주룩 주룩 오지 않을까요...?
    (테니스를 이제 막 알게 되었는뎅..ㅠ.ㅠ)
    한달가량의 긴긴 장마를 맞이해야한다니 모든분들 만반의 준비로 피해 없으시길....바랄께요.
    모두 화이팅~!!!
  • 느림보 06.21 11:03
    아침안개속에서 테니스 경험이 많으시겠네요. 저도 5개월간 새벽에 난타를 한적이 있습니다.
    상대방이 어슴프레 보이는데 느닺없이 공이 튀어 나오고
    공이 안개에 젖어서 묵직하고 공을 치니 공에서 얼굴로 물기가 튕겨나옵니다.
    그리고 샤워하고 얼른 아침먹고 출근,저녁에 또 한게임했습니다.
    그때는 저도 고3때보다 내자신에게 더 치열하게 살았나 봅니다.
  • 06.21 12:56
    엘보가 왔는데도...라켓 들수 있는한 계속 게임에 임했죠....상대방이 백쪽을 애용할땐 어쩔수 없이 로빙밖에 할 게 없더군여..ㅜㅜ....장마기간중 엘보라도 나으면 싶습니다...
  • 황매니아 06.21 15:20
    오늘부터 남부지방을 시작으로 장맛비가 온다고 했지만, 아직 비는 안오네요.
    다행히 사무실 가까이에 인조잔디 코트가 생겼답니다.
    장마기간동안 몇번이나 가서 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예요.
  • cannon 06.21 17:58
    장마로인한 추억이 아련히 떠오르고 오늘같은 날은 그시절 열정이 부럽게 느껴지기도합니다. 서울에 비가 오거나 나이터를 할 수 없을 경우에는 동생들이 있는 대구로 새마을 호를 타고 부리나케 달려가 이른 새벽까지 원없이 치고 출근시간에 맞추어 아쉬운 발걸음을 하던 나름대로는 개념없는 매니아 였기에 전국매니아님들의 아쉬움과 속상함을 이해합니다
  • 최혜랑 06.21 18:23
    초보시절 애틋한 사연으로는 새벽난타경험 외에도 한여름 불볕더위여서 코트가 텅 비어있을 때 얼씨구나하고 땡볕에서 얼굴 다망가지는 줄도 모르고 공을 쳤던 일일겁니다. 이 때 피부나이가 한 십년 팍 늙어버린 것 같습니다.

    비 때문에 일희일비할 일이 많았던 장마 첫날이었습니다.
    자기 레슨 아슬아슬하게 다받았다고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박복한 X은 레슨도 못받는다고 하늘을 원망하는 사람도 있었고.
    그래도 인조잔디라서 물에 빠진 생쥐꼴을 하고 물보라일으키는 공을 치면서 어거지로 한 두 게임은 했지요.
    한사람이 계속 게임하고 싶은 욕심에 비가 안보인다고 해서(공은 보이는데 굵은 빗줄기는 안보인다니 원!)
    그럼 모자의 챙이랑 어깨를 탁탁 두드리는 이 소리는 뭔가고 반문을 했지요.
    이번 우중테니스에는 무슨 타이틀이 걸렸냐하면 누가 제일 미련해서 기침과 고열을 동반한 폐렴에 먼저 걸리나 하는 거였습니다.
    산성비가 흠뻑 퍼부어댔으니 피폭휴유증처럼 내년엔 다들 반질반질한 대머리로 테니스를 하려나?
  • 하득용 06.22 16:07
    작년 한창 장마때 일입니다.
    잠깐 해가 나길래 코트로 달려갔죠 (아니 차타고 20분정도 가는거린데 비 때문에 길이 막혀 한시간 정도 걸렸는데).
    코트 도착하기 바로전에 비가 또 억수같이 내렸고 코트에서 내리는 비를 하염없이 보며 잠깐 그치면 물 쓸어내고, 또 오고 또 쓸어내고 하다가 결국 돌아가는데 (참고로 저희 클럽은 인조 잔디라 비 그치면 물 쓸어내리고 대충은 칠 수 있습니다) 또 해가 나더라구요... 고민하다 다시 차를 돌려 가는데 빗줄기가 다시 시작.
    그 때 저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아무래도 내가 미쳤나보다. 비 오면 쉬고 비 그치면 치면 될것을. 앞으로도 살날이 새털같이 많이 남았는데 왜 이리 조급하게 굴까 ? 였습니다.
    결국 그날은 공도 못치고 시간만 허비하고 자신만을 책망하고.....그런 열정은 아직까지도 남아 있는데 왜 실력은 작년과 그대로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