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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니스가 주는 교훈

텔레비젼으로 가장 많이 보는 프로그램은 뭘까-내 경우는 운동경기이다.

 

골프광인 남편은 온갖 잔머리를 굴려가며 심각하게 프로젝트하듯 골프경기를 본다. 내 경우는 테니스이다.

 

나는 그처럼 머리 굴려 경기내용을 분석하지 않는다. 마치 지는해를 바라보듯,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듯 그냥 넋놓고 테니스 경기를 본다.

바로 그 테니스의 묘미는 나보다 고수들이 더 잘 알 것이다. 나의 테니스 열혈참관의 이유는 기량이나 경기의 내용이 아니다.

 

나는 막간의 테니스 외적인 스쳐가는 것들을 열심히 눈여겨 본다. 테니스는 막간이 참으로 많은 경기이다.

 

그때가 진짜 볼거리가 많다. 만족스럽지 못한 경기에 대한 회한이 서린 한 인간이 눈매, 유난히 경기가 잘 풀려 어서 나가서 뛰지 않고는 못배기겠다는 젊은 테니스신동의 주먹쥔 손도 본다. 그러나 그 모습을 보노라면 기쁨보다는 안타까움이 앞선다.

 

그가 앞으로 겪을 좌절과 실망과 쓰라림이 예상돼서이다.

내가 테니스를 보는 것은 이렇게 '인생'차원의 고상한 볼거리때문만은 아니다.

 

그 어떤 경기보다도 테니스에는 '건강한 성'이 있다. 워낙 강도가 센 운동이니 만큼 땀에 흠뻑 젖은 셔츠를 갈아입는 남자선수의 반라모습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사람의 몸은 얼굴처럼 정말로 각양각색인데 선수들의 몸은 보다 더 정교한 차이가 있다.

 

적당한 근육과 수영선수처럼 매끄럽게 흐르는 선을 대개의 선수들은 갖고 있다. 나는 그들의 밝고 아름다운 상체-그들의 역사를 담고 있는 몸을 언제나 감동을 지니고 바라본다.

그러나 테니스경기의 가장 큰 묘미는 '혼자'라는 점이다. 대개 코치는 자리에 앉아 폼잡고 바라볼 뿐이다. 권투처럼 끝나자 마자 달려들어 소리를 내지르지도 않고 골프처럼 '가마솥의 누릉지'격으로 붙어다니는 캐디도 없다.

 

그저 혼자서 땀을 흘리고 생각하고 그리고 주먹을 쥐고 일어서는 것이다. 그것은 떼를 지어 다니는 다른 별볼일 없는 동물들과 달리 고독한 사자가 마침내 목표를 정하고 일어서는 모습을 연상케한다.

 

경기가 끝나서도 그렇다.

 

이긴자의 환호가 그리 요란하지 않은 경기가 바로 테니스이다. 그 지고의 기쁨을 만끽한 몇분후 그는 자신의 테니스가방과 무거운 짐을 챙겨서 코트에서 사라진다. 패한 자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 역시 스스로 보따리를 싸 홀연히사라진다.

테니스경기를 보면 '어떤 식으로 살아야 하나?'라는 물음에 정답을 얻곤한다.

 

그 질문은 바로 '나홀로'이다. 나홀로 목표를 바라보며가는 경기, 수많은 상대를 1대1로 만나 공을 던지고 받아치고 공격하고 수비하며 싸워나가는 삶, 상대를 연구하고 그의 허를 찌르고 그러나 여지없이 때로는 나의 한계를 드러내는 경기, 탈진한 몸을 자그만 의자에 기댄채 잠시 땀을 닦으며 관람석에서 자신을 지켜보는 사랑하는 이와 시선을 맞추는 경기.

 

그리고 때로는 이기고 때로는 진다해도 내 소유의 모든 것을 스스로 챙겨서 사람들 앞에서 사라지는 경기--바로 이것이 우리 인생 아닐까?

 

다만 우리 인생과 가장 큰 차이라면 내게 넘어오는 공을 바라보며 우리가 '어떻게 될까?'라고 때로는 생각하지만 테니스선수는 절대로 그런 법이 없다는 점이다.

 

그는 오로지 넘어온 공을 '어떻게 할까'만을 생각한다. 그는 언제나 '강한 혼자'였으므로-


 < 방송인ㆍsatuki@chollian.net> [SC 칼럼] 전여옥





[테니스는 어떻게 완성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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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 '6'
  • 개똥참외 02.28 21:20
    테니스를 통해 삶을 배우는 참 좋은 글이네요.
    읽을 기회를 주셔서 고맙습니다.
  • 아소당 02.29 20:13
    좋은글 감사합니다.
    고독한 사자의 목표달성 후의 모습,
    패배한 뒤의 모습..
    언제나 "강한 혼자"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는 글이군요..
  • tenniseye 03.01 09:06
    저도 이글을 작년에 본것같은데요....테니스=고독한경기...고독을 즐기는 우리....그래서 때론 즐겁기도 때론 좌절감에 빠지기도....인생이 그런거 아닌가요?
  • 우현욱 03.03 10:33
    쓰는 글마다 당황스럽게 만들던 전여옥 아주머니가 우리들의 테니스에 대해서
    괜찮은 글을 쓰셨군요. 호감도 -100 에서 조금은 올려줘야겠습니다. ^^;;
  • tenniseye 03.03 10:37
    제가 작년에 이글을 보고 얼른 전.테.교에 가입하시라고 메일을 보냈는데..아직까지도 답장이 없네요..ㅎㅎ...
  • 김승수 03.04 14:07
    좋은 글 공유할 수 있도록 해 주신분께 감사!!!!!!.....
    집사람에게 테니스를 권하고 싶은데.
    땡볕에 나가기를 싫어하는 여자들의 습성상 ....그 벽을 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글을 보여주면 마음이 돌아설까요???????ㅎㅎㅎㅎㅎ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