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염집 아낙이 가정을 살림을 제끼고 훌쩍 여행길에 오른다면 비록 그 여행이 아이 막 방학 시작한 주말의 1박2일 짧은 일정이라도 팔자좋다! 내지 직무유기에 가족에게 무책임한 거 아냐하는 표정을 지으며 다들 놀라와했다.


비가 모처럼 떠나는 여행을 훼방놓지 말고 비껴가 주면 더없이 좋겠으나 물에 빠진 생쥐꼴이 된다한들 어떠리하는 기꺼운 마음으로 장마철 여행짐을 꾸렸다.

그런데 맏언니격인 과천댁과 마산이랑 안양에 사는 동생 둘이 도원결의하듯 단촐하게 테니스수다여행을 남해바다로 떠나는 것으로 알고 출발했더니만 (국토지리에 약해 남해를 남해시 대신 남해바다라는 광역개념으로 착각하기까지...)


마산아우네 테니스클럽 야유회에 서울(수도권?)손님으로 초대받은 것이었다.

아무튼....


밤바다 모래사장을 슬리퍼 양손에 들고 헤적이며 걸어보았다.


동해안이랑 서해안에는 철책이 쳐있고 초소 주위에는 군인아저씨들이 총들고 삼엄하게 지키고 있더니만


남해바다 상주해수욕장에는 분단국가라는 슬픈 현실을 살벌하게 상기시켜주는 것들이 하나도 보이질 않았다.(내가 바다 본지 하도 오래라 요즘은 동서해안도 바뀌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연인들끼리 나잡아봐라하면서 희롱하듯 밀려왔다가는 바다로 도망치듯 내빼는 파도를 쫓다보니정강이랑 짧은 바지밑단이 흠씬 젖었다.


사방이 습기를 뿜어내고 있는 때 물이 뚝뚝 떨어지는 옷까지 입고 이렇게 날아갈 듯한 기분이라니!

낭만적이었던 밤바다, 부지런히 일어나 다시 걸었던 새벽바다의 굴이 닥지닥지 붙은 바위섬이랑
쫄복이란 물고기 노니는 하천을 뒤로하고 서양식 별장건물이 모여있어 독일마을이라 부르는 곳을 거쳐 편백자연휴양림에 당도했다.


산이 깊으면 계곡이 깊고 한여름에도 물이 시리게 차고 맑은데 계곡에 퐁당 빠뜨리는 게 이곳 환대라는데 나는 최대한 뺀질거려 비와서 물까지 불어 제법 물길이 깊어보이고 이가 달달 떨리게 차가운 禍를 면하는데 성공했다.

야외로 나와서까지 맨날하던 테니스할 건 아니다.


대신 풀밭 위에서 족구랑 발야구, 이인삼각 등을 소장(3~40대) 대 노장(50대~)으로 나눠했는데
소장의 압승이라는 노장들로서는 참담한 결과에도 불구하고 승자에 박수를 보내고 먹는 게 남는 거라는 모토로 바리바리 싸간 음식 속속들이 축내기 시작했다.


국립과학수사대가 이틀간 내가 먹은 음식을 분석했다면 (해물파전, 과자, 국수 등 밀가루 음식과 맥주, 소주, 막걸리 등등의 주류에 대해서는 다른 분들의 소화기관을 뒤져봐야겠지만)


아구찜, 아구포, 키조개구이, 피조개회, 숯불에 구운 삼겹살, 엄청난 양의 목살과 버섯, 마른안주
쭈꾸미두루치기, 쌈, 떡(콩가루소를 넣은 큼직한 송편 외에도 팥소를 조금넣은 증편이 특이했다)
아이스크림, 콜라......

결국 난 물놀이한 아이들이 벗어놓은 젖은 옷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던 화장실을 살살 아픈 배를 싸안으면서 풀방구리에 쥐 드나들듯 해야했다. (중간중간 휴게소 앞에 선 버스의 마지막 승차자가 누구였는지? 지금도 얼굴 화끈)

회비를 냈더니 여비에 보태라고 도로 돌려주는 넉넉한 마산인심에 취해있어서인지 턱도 없는 환대에 놀라던 마음이 둔해져서인지 또 내려오란 빈말이 서울깍쟁이 귀엔 곧이곧대로 들리니 어쩐다!


말투 때문인지 다들 솔직하고 화통해 보이고 남의 자식 무릎에 앉혀 밥 떠 먹이는 여유있는 사람들이라 사십명 대가족과 함께 어느덧 나도 하나되어 테니스가족여행을 다녀온 느낌이었다.





[테니스는 어떻게 완성 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