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잘하는게 뭡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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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시합 관전하러 갔을 때 차량번호 XXXX의 전조등이 켜있다는 방송을 했지만
무심히 흘려듣고 있었는데 지인 한 분이 문제의 차가 내 차 아니냐고 일러주는 바람에
다행히 방전되기 전에 달려가 라이트를 끌 수 있었다.

광활한 주차장에서 내차를 찾다찾다 발바닥이 부풀면서 짜증이 모락모락 피어날 때면
번호를 잘 외우는 사람, 숫자에 강한 사람이 무지 부럽다.

모르는 길이라 길아는 사람이 타고 있는 앞 차 따라가다가 차가 몇 대 끼어들고 나면
앞차의 번호나 인상착의가 생각안나서 앞이 캄캄해질 때도 있었다.

그렇다. 난 자주 얻어타는 차가 현대차인지 삼성차인지 잘 모를 때도 있었고
색상은 물론이거니와 짙은 색인지, 옅은 색인지조차 분명치 않아
약속된 지점을 통과하는 아무차에나 다 뛰어들 기세로 기다리면서 서 있곤 한다.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의 라켓이 무슨 회사의 어떤 시리즈인지를 훤히 꿰고 있지만
난 내 라켓과 같은 라켓을 쓰는 사람 말고는 딱히 외고 있는 라켓이 별로 없다.

여름이라 코트에선 수박을 자주 먹는데 칼 든 사람 맘대로 수박썰어놓는 모양도 가지가지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파이 등분해놓은 듯한 부채꼴 모양부터
깍뚜기처럼 썰어놔서
끈적한 과즙이 안씻은 손에 묻어 찝찝해하면서 먹을 수 밖에 없게 만들어 놓은 것,
길쭉길쭉 막대모양으로 썰어놓아 입 주변이 수박물 들지 않게 한입에 쏙쏙 들어가는 친절한 수박조각 등등

사람마다 관심분야가 다르며 잘하고 못하고, 강점이나 약점이 다 다르다.
어떤 것은 단순 비교의 대상이 아닌 그저 다름을 인정해야하는 경우도 있다.

빠르고 센 공에 더 강한 사람이 있는가하면
한템포 늦춰서 상대의 리듬을 빼앗는 사람에 맥도 못춰보고 무너지는 사람도 있다.
높은 공 잘 때리는 사람이 명백한 아웃공도 내가 좋아는 공이라고 다 받아서 파트너 마음 조리게 하기도 하고....
각이 날카로운 사람도 있고 밋밋하지만 수비가 완벽한 사람도 있다.

발리면 잘 갖다대는 건 누가 잘하고,
로브 띄우는 감은 어떤 언니를 못따르고
배짱은 누구요 맨탈하면 또 누구 다들 수긍하고
잘 뛰는 사람도 벌써 순위가 정해져있고
떴다하면 결정을 내고야마는 하이발리, 스매시가 수준급인 사람도 있고
......

그런데 난 쌩뚱맞은 글수다를 떠는 것말고 도대체 뭘 잘할까를 이 밤에 곰곰 반성해본다.





[테니스는 어떻게 완성 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