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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야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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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임총무는 향후 클럽에 영향을 미칠 주요 결정사항이나 외부환경변화에 대한 이멜에다
이런저런 세상살아가는 지혜를 담은 첨부파일을 보내는데
염불에는 관심이 없고 잿밥에만 쏠리는 마음으로
정작 메인인 사무적인 글들은 건성으로 읽으면서
잔잔한 재미가 쏠쏠한 붙임글을 찾아 읽기 바쁘다.

자신이 직접 쓴 글은 아닌 듯한데
어디서 퍼나르는건지 아니면 자기가 받은 이멜 중 요긴한 걸 추려서 갈무리했다가
회원들에게 전달하는 건지는 모르지만 이젠 습관처럼 기다리고 있다.
며칠 전 건배제의말이란 제목의 글이 있기에 얼른 진대제씨가 연상되어
건배제란 사람이 누구지? 뭐하는 사람? 알아야되는 유명인?
그가 최근 무슨 좋은 말을 했기에?하면서 갸우뚱하고 있었는데
내용을 살펴보니 술좌석에서 "~ 위하여" 하면서 잔을 들어 건배할 때 외치는 구호에 관한 것이라
실소를 금치 못했다.

간략히 소개하자면,
Carpe Diem(현재를 즐기자), Mea Culpa(내탓이오), Koinonia(공동의 삶, 연대)같은
라틴어나 그리스어 구호부터
진달래(진하고 달콤한 내일을 위하여)
9988(99세까지 88하게 살자)
당나귀(당신과 나의 귀한 만남을 위하여)
나가자(나라를, 가정을, 그리고 자신을 위하여)
개나리(계급장 떼고, 나이를 잊고, relax/refresh)
사이에
유독 "나이야가라"란 폭포가 아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니 젊게 살자란 구호가 눈에 띄었다.
나이가 주는 한계를 뛰어넘어 새로운 것에 끊임없이 도전하자는 의미라는데
테니스를 늦게 접한 나로선 한 살이라도 젊어 시작했더라면하는 통한이 있지만
그나마 더 늦기 전에 라켓잡은 것에 감사하고
대신 마음으로라도 젊게 살아야지하는 결심을 하게된다.

"장미희가 나랑 동갑이잖아!"
허위학력문제로 물의를 빚고 있는 여배우에 관한 인터넷기사를 읽고 있던 남편이
자못 놀란 듯 외쳤는데 난 그게 무슨 대수라고....하며 혀를 찼지만,
우리사회에서 인간관계가 수평적이냐 수직적이냐는데 제일의 요소가 나이라서인지
나 또한 동갑이나 얼추 나이가 비슷한 사람에게
턱없는 친근감을 느끼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같은 시대를 살아왔다는 그래서 비슷한 생활경험과 정서를 갖고 있어서 일까?
갑장들끼리는 다소 실력차이가 나도 테니스모임으로 잘 뭉치지 않던가!
가끔 외국인과 테니스로 만나는 상황에서 난 어줍잖게 통역역할을 떠맡게 되는데
제일 먼저 물어봐 달라는 단골사안은 어김없이 그의 나이다.
그들의 문화를 존중해서 그런 사적인 질문은 피해야 한다고 누차 설명하면서
다른 질문을 유도하지만 자신이 더듬더듬이라도 직접 물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도 있고
한국인이 자신의 나이에 대해 초미의 관심을 보이는 것에 익숙한 외국인인 경우
스스로 자신의 나이랑 무슨 띠인지를 밝혀오기도 한다.
한 해 학교를 일찍 들어간 탓에 친구는 거의 동갑보다 한 살 많은 사람들이고
재수한 친구인 경우에는 두 살까지 차이가 나지만
학번보다는 나이로 통해지는 테니스 세계에선
한 살 차이가 나도 꼬박꼬박 언니란 존칭을 사용하는 것이 신상에 편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런데 유아사망률이 높았던 탓에 한두해 늦게 호적에 올리던 관행으로
주민등록 상의 나이와 실제 자기나이라고 주장하는 나이가  한 두해 틀린 사람,
대우받으려고 일부러 나이를 올려 말한 사람,
젊은 사람 대접을 받으려고 나일 줄여서 말한 사람,
음력과 양력이 애매한 때 태어나 띠는 음력으로 말하고 나이는 양력을 따르는.... 등
나이가 단순한 숫자가 아닌 경우도 많이 봤다.

"화려한 휴가"가 개봉되고 얼마 안 있어서 영화가 화제에 올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있자
평소 조용하시던 코치님이 자기도 보고 감동을 받았노라고 모처럼 엄마들 얘기에 끼어드셨다.
"선생님은 광주사태 때 몇 살이나 되셨어요?"하고 누가 묻자 얼른 대답을 못하셔서
무심히 난 아예 태어나지도 않은 거 아녜요하고 놀리듯 되물었는데 나이를 되집어 보니 그게 사실이었다.
내가 한창 최루탄 마시며 데모하고 있을 때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사람한테
지금은 잔소리 빡빡 들어가며  존대는 꼬박꼬박하면서 테니스를 배우고 있다니!하며 슬그머니 부아가 났다.
코트라는 철두철미 실력위주의 사회에선
한국사회의 만인의 척도인 이 나이라는 숫자도 실력 앞에선 영 맥을 못춰 보인다.
해서 어느 코트에서든 나이와 실력의 불균형 상황인 나이든 초보와 젊은 고수가 있을 수 밖에 없고
이 두 집단 간의 알력과 긴장이 상존하고 내홍으로 불궈지는 경우도 종종 있는 것으로 안다.
나는 데는 순서가 있지만 가는 데는 순서가 없다는데
내탓이오를 자주 외면서 현재를 맘껏 즐기고 동시대인으로서의 연대의식을 지니며
진달래, 개나리, 당나귀, 나가자하면서 오래도록 공칠 수는 없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테니스는 어떻게 완성 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