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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깨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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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다닐 때 체육시간이 싫었던 이유 중 하나가
짧은 쉬는 시간 안에 후다닥 체육복 갈아입고 운동장으로 뛰어나가
달갑지 않은 수업(여기엔 실로 다양한 분통 터지는 이유가 있었지만) 대충하다보면
아까와는 반대로 교실로 뛰어들어와 교복갈아입느라 잠시 쉴틈없이 다음 수업시간을 맞아야해서일게다.
다른 교과 선생님들뿐 아니라 체육선생님조차 우릴 순간이동할 수 있는 초능력자로 여기시는지
운동장에서도 늦게 나왔다고 구박이고 교실에서도 수업준비자세가 제대로 안돼있다고 또 야단을 맞았으니....

만약 그 체육시간에 테니스를 했었다면 어땠을까하는 가정법을 들이대봐도
뽀족히 달라지는 건 없어보였다.
뭐든 깜빡 잘하는 난 준비물인 라켓이랑 테니스화 안신고 왔다고 운동장 몇 바퀴씩 돌며 벌서고 있거나
코트 한면에서 단 한분의 선생님이 육칠십명(우리때 한반 학생수가 이정도였던 걸로)을 상대로
소리만 버럭버럭 지르는 통에 테니스에 취미를 붙이기는 커녕 그닥 호감조차 못 느꼈을 것같다.

허둥대며 체육복과 교복 사이를 오가고 있을 때 "넌 그거 안맞았니?"
한 친구가 굉장한 발견이라도 한 듯 이 말을 던지자 다른 얘들이 둥그렇게 내 주위에 몰려들어
자기들처럼 흉한 우두자국대신 내 건 정말 눈에 안띌 정도로 아주 작고 희미한 흔적 뿐인 걸 보고
"넌 참 좋겠다. 나중에 어깨 다 드러나는 드레스입고 파티에 갈 수 있잖아!"
부러움이 가득한 이 말이 내 귀엔 왕자님의 입맞춤보다 더 짜릿하게 들렸다.
수수한 외모 때문에 움추러들어있던 당시 나로선 흠없는 매끈한 어깨를 가진 걸 깨닫게 되자
자존심이 다락같이 높아지는 외에 빛나고 화려한 미래의 보증수표라도 쥔 듯 가슴 뿌듯했다.

어깨가 예쁘다고한 친구들의 찬사를 자꾸 새김질하는 건
자식이 자신의 발가락이라도 닮았다고 매달리는 절박함 비슷한 것이 어느정도 배어있었다.
글쎄 어깨는 얼굴이나 키같은 현실세계의 미인의 핵심조건과는 한참 거리가 있었고
BWH같은 신체부위처럼 수치로 계측될 수 있는 객관적인 곳도 아니다.
어깨하면 왠지 머리는 빈 채 완력만 가진 인간집단부터 떠오르기도 하고
머리가 실려있고 무거운 짐을 지는 부위라서 책임감, 부담, 자존심 등이 연상되기도 한다.
칭찬을 들으면 어깨는 저절로 으쓱 올라가고
딱 벌어진 각진 어깨는 멀리서 봐도 강한 자신감이란 포스가 느껴진다.
얼굴을 묻고 흐느끼는 어깨는 작게 들썩일 뿐이고
풀 죽어 있는 사람을 격려할 때 흔히 어깨를 토닥여주는데
움추린 어깨를 펴야 기도 함께 펼쳐지는, 어깨란 그런 곳이다.
어깨를 마주하는 건 어깨동무같은 친구들 사이의 친밀함이나 연대감의 표현일 수도 있고
실력으로 상대와 당당히 겨루겠다는 결연한 자세일 수도 있다.

어깨가 드러난 화려한 파티복을 입을 기회는 아직 단 한번도 오지 않았고
좀 처진 작은 내 어깨는 몇년에 한번 입을까말까한 한복저고리에나 어울릴 뿐인데
맨날 입게 된 운동복 T-셔츠에는 영 꽝이었다.
게다가 서브나 스트로크에서의 파워는 강한 어깨에서 나온다는 말을 듣고나니
쥐뿔정도의 은밀한 자랑이였던 내 어깨는 보증수표에서 부도수표로 급전직하돼버렸다.

그리고 그 작은 어깨가 공치는게 버거웠는지 어느덧 아픈 어깨로 변해서
아침마다 깨어나는 기분을 몇년 째 아주 더럽게 만들어 놓았다.
그나마 알량한 상대적 우위였던 매끈함 대신 이제 내겐 수술자국으로 울퉁불퉁 어지럽고
팔을 들어올리지도 내뻗지도 못하는 기능부재의 한심한 어깨가 있을 뿐이다.

얼마전 나보다 석달 앞서 어깨수술을 받았던 언니한테 전화를 해보았다.
자긴 아직도 아파 가끔씩 진통제를 먹고있는데 한달짜리인 난 아직 멀었다면서
재활이나 부지런히 하는 수 밖에 없다고 동병상련 별로 내비치지않고 간단히 말을 마친다.

현재나 향후 어깨 아프실 분들께 난 기꺼이 반면교사가 되고자한다.
수술할 지경까지 가도록 자기 몸을 테니스에 내맡기지 마시라고.....





[테니스는 어떻게 완성 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