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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야반도주하는 편이 낫지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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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등 불가피한 일로 해서 테니스로 정들었던 클럽과 거기 속한 사람들을 떠나야하는 일은
이미 오랜시간 되새김질하며 고민하다 내린 괴롭고 힘든 결정이었을텐데
한사람이 아쉬운 요즘 테니스판에서 붙들고 싶은 마음만 간절한 사람들로서는
전혀 예상치 못한 이 난데 없는 선언에 재고의 여지는 없냐고 그저 그런 무기력한 질문을 던지게 되는데
그나마 온다간다는 말을 남기고 떠난 사람들의 퇴장은 야반도주 수준으로 나간 사람들에 비하면 양호하다.
물론 이해는 할 수 있다.
즐겁고 기분 좋은 일이라면 신바람나서 벌써 뭐라고 자랑삼아 떠벌여 놓았겠지만
이제 더이상 여러분과 함께 할 수 없다고 말하기는
할까말까? 망설이다가 그리고 한다면 언제?할지 적절한 타이밍을 주저했을 것이고
내키지도 않고 그래서 입도 떨어지지 않아 차일피일 미루다가
그나마 가깝게 지내던 몇몇에게 귀띔 정도로 알리고 홀연히 사라져버렸을 테니까.
게다가 얄팍한 테니스 판 인심이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아 끈떨어진 정치인의 레임덕현상처럼
계속 공으로 만날 관계가 아닌 사람들에 살벌하리만치 냉냉하지 않았던가?

어쩌면 이것이 공으로 만난 인연들이 우리 곁을 떠나는 전형적인 방식이고
그때마다 코트에 남은 자로서 느꼈던 이유있는 섭섭함인지 모른다.

드는 자리는 없어도 나는 자리는 크다더니
빈자리를 보면 착찹하고 자리 못잡은 마음은 낙엽구르듯 종잡을 수 없게 된다.

다들 지금 우리는 불편하고 불쾌하고 있는 중이란 표식을 가슴에 달아야 할 것같다.

그런데 얼마전 언니 한 분이 지나온 세월 함께 한 사람들을 향해 떠나는 섭섭함과 그간의 감사의 정을
한명한명 회원들의 실명을 거명해가며 장문의 글에 담아 코트에 대자보처럼 남기고 가셨는데
그 분의 글을 찬찬히 읽어내려간 사람이라면 그녀와의 옛일을 떠올리느라
가슴 한켠이 뭉클해져 잠시 글에서 고개를 돌렸을 것이고
나처럼 국외자인 경우 참으로 인간미 넘치는 클럽이구나하고 감탄해마지 않았을 것이고
회원들 중에는 있을 때 충분히 잘해주지 못한 회한으로 마음이 무거우신 분들도 있을테고
섬세한 감수성을 지닌 사람이었으니 그간 마음 다치고 속상한 과거사가 없지만은 않았을텐데
한점의 후회나 야속함은 전혀 내비치지 않고 그저 감사하고 고마운 마음만을 기억하고 가져간 것같아
신선한 감동을 받았다.

잔잔한 그녀의 글을 읽으면서 문득
한군데 뿌리내리고 사는 농경시대도 이미 반세기 전에 지난 이합집산이 일상사인 시대를 살면서
아직도 이 만나고 헤어짐을 담담하고 매끈하고 자제력있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노상 거북하고 불편하게만 느끼는 쿨하지 못하고 촌스러운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훌쩍 떠날 용기도 없고 그만둘 결단도 내리지 못해 질질 끌려가고 끌고 있는 비겁함까지.





[테니스는 어떻게 완성 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