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본문 바로가기


이형택, 페더러 꺾고 싶다.

Atachment
첨부 '1'



오늘 오전에 주간 발행인 스포츠 관련 잡지사로부터 다음주 월요일 가판대에 나갈 잡지가 도착했다. 담당 기자의 배려로  미리 받아볼수 있었다.물론 무료이다..^-^

테니스 관련 기사가 상당한 눈길을 끌었고 많은 팬들도 궁금해하는 부분이 있어 미리 일부분만 소개한다.

제목 :  [이형택, 페더러 꺾고싶다.]

싸늘한 바람이 불자 빙판위에 모래가 깔렸다.스케이트 날이 흙밭을 지날 수는없다."어떻게 이런 경기장에서 세계적인 선수가 탄생했는지 불가사의하다"1987년 한국의 야외 스케이트장을 둘러본 세계 빙상 관계자들은 같은 해 네덜란드에서 열린 세계 스피드스케이팅선수권대회 남자 500m에서 한국의 배기태가 우승한 것을 믿을수 없다고 했다.

어려운 환경을 딛고 일어서면 영광도 크다.1988년 서울 올림픽 수영접영 남자 100m결승에서 수리남의 무명선수 앤서니 네스트는 7관왕을 노리는 대스타 비욘디(미국)를 꺽었다.당시 남미의 조그만 나라 수리남에는 수영장이 하나밖에 없었다.

한국에 테니스 코트가 하나뿐인 것은 아니지만 한국테니스에서 이형택은 배기태나 네스티의 사례못지않다.테니스인들은 이형택이 8월6일 이룩한 세계랭킹 36위를 기적이라고 말한다.

....중략......

이형택은 아들을 테니스선수로 키울 것이냐는물음에 "아들이 좋아한다면 시키겠다"며 웃음을 지었다.가정이 평화롭다보니 운동도 잘된다......중략....

이형택은 메이저대회에서 최고 성적을 낸 2000년 US오픈 16강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였다.이형택은 민감할 수 있는 이야기라며 조심스럽게 테니스선수들의 군문제도 언급했다.

"나보다 신체적인 조건들이 좋은 선배들이 많앗다.그러나 당시엔느 뚜렷한 스폰서도 없었고 모두 중요한 시기에 입대해 능력이 정체됐다.결정적인 시기에 상무에 가면 흐름이 끊긴다.나는 1998년 방콕 아시아 경기대회 금메달로 병역 헤택을 받았는데 그때 만약 군대에 갔었다면 세계적인 선수로 성장하기 힘들었을것이다.2년뒤인 2000년 US오픈 16강을 이뤘다".

...중략...

문제가 됐던 라켓 적응력도 높아졌다.이형택은 건국대 2학년이던 1995년부터 헤드사의 "프리스티지660"을 쓰다 단종돼 프랑스 오픈전인 5월말부터 새로운 모델인 "래디컬 프로"를 사용하기 시작했다....처음에는 형택이가 새로운 라켓 때문에 고전했지만 꾸준한 연습으로 많이 나아졌다.며 윤용일 코치는 기대감을 나타냈다.이형택 역시 "아직 완벽한 감을 잡지는 못했지만 점점 느낌이 좋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래디컬 프로는 예전 모델과 비교해 면이 약간 작은 반면 라켓줄의 간격이 넓어 강한 힘이 실리는 장점이 있다.이번 대회에 큰 욕심을 내는것은 아니라면서도 이형택은 페더러,나달,로딕 등 톱 랭커를 꺽고 싶다는 의지를 보였다.  

...중략...

내가 평소에 중요하게 생각하는 3가지는"상대보다 코트에서 더 많이 뛴다",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테니스를 즐기자"는 것이다. 이런 마음을 가지면 경기가 잘 풀린다.행운은 그때 미소를 보낸다.  

...중략....

스포츠 2.0 심현석 기자
http://www.sports2.co.kr/

내일(31일) 새벽 까냐스와의 2회전 대결에서 이형택에게 행운이 함께 하기를 응원하며.......






[테니스는 어떻게 완성 되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