十年之友

여유롭다라는 말이 참 오랜만에 나옵니다. 사실 동생 녀석이 올라와서 정신 없이 있었습니다. 주중내내 라켓과는 담을 쌓아두고 회사 집 이렇게 살다가 토요일 오전에 반가운 그놈 목소리... 바로 화성남이 아니겠습니까?
토요일 아침 부터 단식을 하자고 전화를 하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지 그 전화 받자마자 혹시나 아침 못먹고 오는 것은 아닐까 하는 맘에 근처에 있는 아침 메뉴 가능한 곳에서 아침식사가 될 만한 것을 사러 불이나케 운전을 해서 갔다가 코트로 향했습니다.

캬아... 날씨 죽이고...

바람 살랑살랑 불어오고, 봄총각의 마음을 뒤흔드는 이 봄내음을 맡으면서 초록색 코트에 있으니 이것이 바로 낙원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잠깐 동안의 준비운동을 끝내고 둘이서 미니테니스를 치면서 아니나 다를까 저는 화성남을 보면서 도발의 멘트를 던집니다. "어이... 오늘 컨디션 보니까, 6:3이네.ㅋㅋ" 화성남曰 "항상 그렇게 도발을 하면 좋나??? --;"

10년을 넘게 둘이서 이렇게 옥신각신하면서 코트에서 지내다 보니 능글능글해진 것은 당연한 것이거니와, 둘이 서로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잘 알면서도 항상 경쟁심에 불타오르는 것이 평생가는 친구이자 경쟁상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잠시나마 해보았습니다.

어김없이 십여분동안 난타를 치고 나서야 플레이볼 이라는 말을 하면서 늘 그렇듯이 둘만의 경기를 시작합니다. 이렇게 둘이서 단식을 쳐온지 10년이 되어가지만, 상대방이 다치지 않는 이상은 3세트를 먼저 따는 사람이 이기는 X튀기는 경기를 해왔습니다. 처음에 화성남과 라켓으로 이야기를 나누었고, 생일 선물을 주고 받을 때는 어김없이 테니스 용품으로 그것을 대신하였으며, 둘이서 술잔을 기울이면서도 항상 테니스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어쨌든... 저희 둘은 오늘도 단식을 쳤습니다. 늘 그렇듯이 부드러움의 화성남... 마이클님이 화성남의 포핸드를 보면서 참 부드러운 스윙이다 라고 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부드러움 속에 묻어나오는 강함... 그것이 그 친구의 테니스니까요.
반대로 늘 그렇듯이 저는 할 줄 아는 것이 서브 밖에 업는지라, 서브로 화성남을 흔들어댑니다. 더블폴트도 해가며, 첫서브와 두번째 서브 구분없이 똑같이 때려봅니다. 성공률은 항상 장담을 미친X 널뛰듯이 하지만 이것이 제가 가진 것이기에 ㅜㅜ

이렇게 한참을 치다가 세트가 하나씩 끝이 나가고 둘다 만신창이가 되어 돌아온 병사의 얼굴을 하고는 서로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합니다. "오늘은 ---가 정말 예술이더만... 그런데 ---은 여전하더라. ㅋㅋ" 옥신각신 이렇게 또 둘이서 말다툼 아닌 말다툼을 하면서 코트를 떠납니다.

완전한 봄기운이 도는 이렇게 좋은날 오전을 코트에서 보내면서...

사람들이 이런 말을 하더군요. 페더러만 있었다면 테니스는 재미없었을 것이라고...
저에게는 화성남이 있어서 테니스가 참 좋습니다.

PS. 요즘 무릎이 안좋아서 고생이 많은 그 녀석에게 다음에는 맨소레담을 하나 쥐어줘야 겠습니다. ^^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