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더러의 우승으로 윔블던이 끝난지 벌써 꽤 지났습니다.


페더러가 이길 것으로 예상은 했습니다만, 나달이 이렇게나 빠른 속도로 잔디 코트에 적응할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페더러는 이미 8강전에서부터 최상의 컨디션과 폼으로 스스로도 믿기 어려운 경기력을 보여주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물론 나달도 큰 어려움 없이 결승에 올라갔습니다. 하지만 나달이 잔디에서 페더러에게 어느 정도나 저항할 수 있느냐가 관심사였지 나달이 승부를 팽팽하게 가져갈 것이라고는 저는 전혀 예상치 못했습니다.

 

세트 스코어 3-1과는 별도로 경기 자체는 첫 세트를 제외하면 팽팽하게 진행된 멋진 승부였다고 생각합니다.

결과적으로 첫 세트에서 6-0이 나와 버린게 승부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페더러는 자신에게 홈구장이나 다름 없는 익숙한 윔블던 센터 코트에서 초장부터 엄청난 집중력을 보였습니다.

 

반면 나달은 처음에 약간 적응 스트레스가 있었던 것 같고, 과거와 같은 자신있는 플레이를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물론 두번째 세트부터는 나달도 평정을 회복합니다. 하지만 팽팽한 승부에서 잠시라도 균형이 흐트러지면 그것으로 승부는 이미 끝인 법이지요.

완성형 페더러는 당분간은 ‘지존무상’일 것 같습니다.

 

몇 년쯤 지나서 페더러의 다리가 슬슬 느려지고, 나달을 필두로 한 지금 10대 후반 20대 초반의 어린 선수들이 ‘완숙기’에 접어들어 페더러를 본격적으로 압박해 들어가기 전까지는, 페더러가 매년 그랜드 슬램 2개 이상씩은 가져갈 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

 

물론 나달 발전 속도를 평범한 사람의 잣대로 재는 섣부른 예측은 위험의 소지가 있겠습니다만. . .

이미 어느정도 발전의 한계에 도달하는 나이인 20대 중반이 되버린 선수들을 제외하고 (포기하고?), 10대 후반부터 20대 초반까지의 선수들 중에서 미래에 페더러를 잡을 수 있을 선수를 찾는 것이 현재로서는 불가피한 것 같습니다.

 

솔직하게 말해서 현재 20대 중반 이상의 선수들 중에서는 페더러에게 현실적인 위협(!)이 될 만한 선수들을 찾기 어려워 보이니까요.

10대 후반 20대 초반의 기대주들을 4 명 정도 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선 현재 랭킹 2위인 ‘짐승’ 나달(20세)이야 이미 꽃을 피우고 있는 상황이고. . .

 

랭킹 8위에 있는 막강 서브 안치치(22세), 올해 호주 오픈 준우승과 윔블던 4강을 달성한 랭킹 10위 바그다티스(21세), 작년에 성인 무대에 처음 데뷔해서 윔블던에서 날반디안을 거의 잡을뻔 했고, 올해 로딕을 잡아서 잠재력을 인정받고 있는, 하지만 현재 체력 문제 및 부상 문제를 떨치지 못하고 있는, 랭킹 35위 영국 넘버 원 앤디 머레이(19세).

천재 나달.

우선 라파엘 나달은 현재 비외른 보리 이후 프렌치 오픈과 윔블던을 한 해에 동시에 제패할 가능성을 지닌 두 선수 중의 하나입니다. (나머지 한 명은 당연히 페더러지요.)

 

동물과 같은 본능적인 ‘직관’과 빠른 발, 그리고 지치지 않는 체력으로 도저히 받는 것이 불가능한 볼들을 어떻게든 걷어 넘겨서 최소한 한 세트에 서너 포인트 이상은 추가로 가져갑니다.

 

매치에서 10 포인트면 충분히 경기를 좌우하고도 남는 포인트입니다.  

 

상대방이 가져갔어야 할 10 포인트까지 합하면 20 포인트의 위력을 발휘하니까요. 네트를 한 번 더 넘기는 것이 승부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로서 손색이 없습니다.

 

그는 또한 투어를 도는 선수들 중에서 평균 자책 에러수가 가장 적은 축에 들어갑니다. 그만큼 안정적인 게임 운영을 한다는 것이지요. 서브마저 좋아지는 바람에 특별한 약점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도 그의 커다란 강점입니다. 몸을 엄청나게 혹사시키는 타입이기에 부상의 위험이 상존한다는 점이 좀 불안한 부분입니다.

수퍼 마리오 안치치


안지치는 크로아티아 출신으로서 고란 이바니세비치 이후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훌륭한 가정 환경에서 태어나 충분한 서포트를 받으면서 일찌감치 실력을 인정받았습니다. 어린 나이에 고란 이바니세비치와 연습을 할 기회를 종종 지녔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스타일도 고란과 비슷합니다. 강한 서브, 틈만 나면 네트로, 가끔은 상대의 틈이 없어보여도 네트로. 현재 페더러에게 한 세트 이상을 딸 수 있는 몇 안되는 선수들 중의 하나임은 확실합니다.

 

서비스의 힘은 이미 충분한데, 플레이스먼트를 좀 더 가다듬는다면 서브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페더러를 괴롭힐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과거 고란 이바니세비치가 보여줬듯이 환상의 서브 하나만으로도 윔블던을 정복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으니까요. 나달이 거의 완성 단계라면 안지치는 아직 갈 길이 조금 더 남아있는 상태입니다. 특히 경기 운영과 전술 측면에서 단순성을 탈피해서 한 단계 뛰어오를 수 있다면 타고난 신체와 파워가 있으니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천진 난만 바그다티스

사이프러스의 바그다티스. 국적은 사이프러스지만 테니스는 프랑스제입니다. 프랑스의 테니스 아카데미에서 테니스를 배웠고, 제일 좋아하는 코트는 하드 코트, 피하는 코트는 ‘잔디’ 코트’였’습니다. “잔디는 축구를 해야 마땅한 곳이다”고 말할 정도였으니까요.

 

그런데 어느새 잔디에 적응해서 윔블던 4강에 올랐습니다. 나달에 거의 필적할 만큼의 스태미너와 빠른 발을 지니고 있습니다. 샷 메이킹의 정교함에서는 나달에 조금 떨어지고, 샷의 파워는 오히려 나달보다 좋은 것 같습니다.

 

특히 하드코트에서 플랫 드라이브성의 포핸드 강타는 블레이크 이상의 위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드롭 샷이나 감각적인 패싱 샷 등으로 많은 박수를 받곤 합니다.

 

그만큼 감각이 탁월하다는 뜻이겠지요. 나달이 바짝 굳힌 얼굴로 다소 신경질적이고 공격적으로 감정을 표출한다면, 바그다티스는 함박 웃음과 아이같은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감정을 표출합니다.

 

나달이 엄청난 근육질의 완벽한 몸매를 통해 폭발적인 힘을 뽑아내는 타입이라면, 바그다티스는 나달만큼 멋진 근육은 없지만 타고난 부드럽고 유연한 몸을 지니고 있습니다.

뉴 브리티시 넘버 원 앤디 머레이

영국의 (영국에서도 스코틀랜드) 앤디 머레이(19세)는 영국인으로서는 특이하게도 스페인의 테니스 아카데미에서 테니스를 익혔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잔디 보다는 클레이를 더 좋아합니다. 더 놀라운 점은 테니스를 처음 시작한 나이가 세 살이라는 점입니다. (참고로 나달은 4살 때, 바그다티스는 5살 때, 안치치는 7살 때 테니스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엄마가 스코틀랜드 테니스 대표팀 코치였다지만 그래도 좀 너무한 거 아닌가 싶습니다. 프로 축구팀에서 입단 제의가 있었을 정도라고 하니 운동 신경은 타고 났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작년에 성인 무대에 데뷔 해서 1년 남짓 지난 후에 랭킹이 35위에 올랐습니다.

 

현재 100위 안에 있는 선수 중에서 가장 어린 축에 들어갑니다. 클레이 전문이라지만 정작은 윔블던에서 연속 2년째 인상적인 경기를 보여줌으로써 스타덤에 올랐습니다. 작년 윔블던에서는 2회전에서 스테파넥을 잡았고, 3회전에서 날반디안에 2-0으로 앞서가다가 체력의 한계로 역전당합니다. 올해 윔블던에서는 3회전에서 로딕을 잡았고 (로딕은 올 초에 산호세 인터내셔널에서도 머레이에 잡혔습니다.

 

이 대회 결승에서 휴이트까지 잡고 18세의 머레이가 첫 인터네셔널 시리즈 대회 우승을 경험합니다.), 4회전에서 바그다티스에 패합니다. 장점은 서브가 강하면서도 코너웍이 좋다는 점입니다. 또한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정말 영리하고 침착한 게임 운영을 한다는 점입니다.

 

저는 작년 윔블던 32강에서 18세를 갓 넘긴 데뷔 초년차 어린 선수가 힘 조절, 스핀 조절, 코스 조절을 능숙하게 하면서 영감님 테니스로 날반디안의 혼을 빼 놓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특징은 드롭 샷을 애용한다는 점입니다.

 

약점은 아직 성인의 몸이 만들어지지 않은 관계로 체력의 문제가 있다는 점 및 네트 게임에 약하다는 점입니다. 과거 아가시의 코치이기도 했던 작전의 귀재 브래드 길버트를 코치로 초빙한다는 루머가 있기도 하던데, 만약 그렇게 된다면 정말 주목해야만 할 선수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상 살펴본 4 선수들의 공통점들을 한 번 나열해 볼까요?


첫째, 헤비 톱스핀 포핸드/양손 백핸드 플레이어라는 점.


둘째, 훌륭한 서포트가 있었다는 점. 집안에 훌륭한 테니스 선수가 있었거나 아니면 충분한 돈이 있었거나, 아니면 둘 다 있었거나.


셋째, 3-7세 사이의 어린 나이에 라켓을 잡았고 쥬니어 레벨에서 이미 세계대회에서 두각을 보였습니다.


넷째, 미국 테니스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았다는 점. 미국 스타일의 특징을 뽑아 보자면 톱스핀이 조금 적게 사용되는 강한 포핸드 플랫 드라이브를 강조한다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냥 제 느낌입니다.)

 

그런데 위의 4인들은 지역적으로도 유럽이지만 스트로크 스타일도 미국하고는 좀 다른 것 같습니다. 세계 남자 테니스의 주도권이 호주에서 미국으로 갔다가 이제 유럽으로 회귀하고 있는 현상과 무관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다섯째, 현재 랭킹이 지속적으로 상승중. 즉, 발전 도상에 있는 선수들이라는 의미이겠지요.   

   
여섯째, 안지치를 제외하면 네트 게임보다는 그라운드 스트로크 랠리를 즐기며, 드롭샷으로 재미를 보곤 한다는 점.


일곱째, 충분히 훌륭한 서브를 지니고 있다는 점.

한편, 각 선수들의 개성적인 부분들도 뚜렷합니다.


나달의 ‘짐승스러운 혹은 동물적인 파워와 감각의’ 테니스, 안치치의 ‘수퍼 마리오’ 서브, 바그다티스의 유연하면서도 파워풀한 ‘고무공 같은 탄력’ 테니스, 머레이의 중늙은이같은 ‘작전’ 테니스.    

앞으로 이 선수들이 어떻게 커 나가는지, 어떻게 톱 랭커들을 하나 하나씩 꺾어나가는지를 지켜보는 것도 테니스를 즐기는 또 한가지 방법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 .    





[서브의 바이오 메카닉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