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목적이 뭐요? 라고 물으면 많은 사람들이 '행복'이라 대답한다.

 

난 사는 목적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진 않아서 그량 살았었다. 그러다 사람들과 얘기중 사는 목적에 대한 얘기가 가끔씩 나왔고, 많은 사람들이 '행복'이라는 단어를 꺼내었다.

 

행복이란 단어를 듣고 보니, 맞는 말 같기도 하고 또 대체할 만한 다른 단어가 생각이 나지 않기도 해서 언젠가부터 '행복'이 내가 사는 목적이 되었다.

  그런데 실제 행복한 삶을 살고 있냐 하면 그렇진 않다. 매일 무덤덤하거나 약간 괴롭거나한 일상의 연속이다. 하루중 아주 잠깐의 순간동안만 행복을 느끼는 것 같다. 행복한 삶이 목적인데, 왜 대부분의 시간동안 무덤덤하거나 괴로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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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과 마찬가지로 테니스를 할 때도 무덤덤, 고통, 행복(쾌락)의 연속이다. 대부분의 시간은 무덤덤, 고통의 시간이다.

 

공을 칠 땐 그래도 재미있는 부분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아무리 열심히 해도 실력이 늘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마음고생을 하게 된다.

 

어느 날부터인가는 연습을 하는 중에도 한컨에서는 괴로운 마음이 든다. "이걸 한다고 실력이 늘기는 할까. 이제까지 몇 개월을 했는데도 안되는데.'

  테니스의 성장곡선은 정체기(or 슬럼프)와 성장기로 나뉜다.

 

이걸 시간으로 환산을 해 보면 정체기의 시간은 전체의 95%이고, 성장기의 시간은 합해봐야 5%라고 한다.

 

즉, 우리는 95%시간동안은 무덤덤 & 괴로움으로 보내고, 5%의 시간동안만 행복해 하는 것이 된다.

  테니스에서 성장기는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준다. 여기에 모순이 있다. 연습을 하는 중에도 그걸 즐기질 못한다. 연습을 하는 기간에 머리속으로는 항상 걱정을 한다. '언제 늘까?'

 

눈과 몸은 연습을 하고 있는 중에도 머리는 미래의 목표에 꽂혀 있다.

 

그러니 미래의 목표와 현실이 대비되면서 자신은 불행한 인간이란 생각을 지울 수 없게 된다. 이런 생각이 들게 되면 그 연습마저도 그리 즐겁지 않게 된다. 이런 생각에 지배되는 단계가 되면 연습을 그만두게 된다.

 얼마전에 읽은 책에 이것에 대한 답이 씌여 있었다. 목표에만 행복을 두는 삶은 결코 행복할 수 없다.

 

95%시간동안 우울해 하다가 목표에 도달하면 잠시 행복했다가 다시 우울해 진다. 다시 다른 목표가 생기기때문이다. 다시 95%시간의 우울기를 거치게 된다.

  이 말이 맞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우울해해야 하는데, 실제는 그렇지 않다. 일부의 사람들은 정체기에도 약간은 행복해 보인다. 왜? 그들은 따분한 연습중에도 미세한 재미를 찾을 수 있기때문이다.

 

같은 동작이라고 하더라도 미세한 느낌의 차이는 있다. 이들은 같은 동작을 하면서도 이 차이를 느낄려고 하는 사람들이다.

 

그렇기에 그들에게 정체기는 지겨운 시간이 아닌 약간은 재미있는 시간이 된다. 이들도 성장기가 되면 행복해 한다. 하지만 그들은 정체기동안 성장기에 대한 갈망이 그리 크지 않다.

 

정체기의 미세한 재미를 알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사람들은 일 자체를 사랑한다.

지겨움은 눈은 현재를 보면서 머리로는 미래를 생각하고 있는 데서 오고, 즐거움은 눈과 머리를 현재의 일에 고정할 수 있는데서 온다.

먼저 2가지를 인정하면 어떨까?

 

정체기의 시간이 95%를 차지한다는 것...미래에만 꽂혀 있으면 정체기는 지겨울 수밖에 없다는 것. 

 




[테니스는 어떻게 완성 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