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추웠거나 허리 휘도록 눈을 많이 치웠던 겨울도 아니었고
공 치면서 손가락이랑 귀가 떨어져 나갈까봐 떨며 걱정했던 가까운 기억도 없는데
이젠 봄이란 생각만으로도 지고 있던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하고
덩달아 아픈 데도 다 나은 것 같은 홀가분하고 희망적인 기분이 들었다.

꽃샘추위가 복병처럼 숨어 있다가 얇은 봄 옷 사이로 파고 들 테지만
바람 피할 데만 있으면
목은 어깨 들어 쏙 집어넣고 시린 손일랑 주머니에 밀어 넣고 잔뜩 움추리면
이젠 왠만한 추위쯤 투박한 외투 없이도 버텨낼 수 있을 것같다.

여린 잎이 돋고 꽃이 피면서 춘계.... 봄맞이....로 시작하는 각종 대회가 열릴 것이며
겨우내 뽀얘졌던 피부는 반나절 봄볕에 그을어 단박에 작년 가을쯤 낯빛이 되어버릴테고

요즘 수련하고자 새벽 어둠 속에서 눈감고 앉아있노라면 테니스초보시절의 기억이 몰려온다.
잡념을 쫓으려 애쓰지말고 그냥 편안한 마음으로 호흡에만 집중하라기에
두서없이 떠오르는 테니스 막 시작하던 때의 일들이
들숨과 날숨 따라 오르락내리락 들며 나도록 내버려 두었다.

첫날 도복과 함께 간단한 안내책자를 받았는데
푸른도복을 입은 초심자들은 흰도복의 상급자들이 조용히 수련할 수 있도록
앞자리를 양보하고 뒷자리에 앉으라는 권고사항이 유독 눈에 띄었다.
테니스초보에게도 고수/하수라는 코트문화에 대한 개략적인 오리엔테이션이나
테니스매너에 관한 명문화된 규정집같은 게 있었더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위 조항을 테니스적으로 각색해보면,
호의를 갖고 하급자를 대하는 소수 상급자(지극히 예외적인 존재임) 외의 대다수 사람들은
하수의 존재를 불편하게 생각하며 되도록 무시하고 싶어하니
그들이 조용히 공치는 수련을 할 수 있도록 항상 초심자들은 몸을 낮춰 눈에 띄지 않는 곳에 거하며
그들과 눈을 마주치거나 말을 섞는다든지 인간적으로 가까와지려는 모든 시도는 절대금물이다.
내가 너무 냉소적인가?

이 봄이 가기 전 내 몸 세포 하나하나 관절 마디마디가 지른다는 즐거운 비명소리를 들을 수 있으려나싶고
코트엔 분명 봄이 와있을텐데 이런저런 잡생각에 골몰하다보니 잠시 봄에 들떴던 마음은 사라지고
나는 다시금 지난 겨울로 되돌려져 있는 것같다.





[테니스는 어떻게 완성 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