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치운 사람 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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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재성은 신의 영역이라 인간이 동시에 여러 곳에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이
코트에 쌓인 눈을 치워야할 때면 더욱 자명해진다.

늦은 나이에 시작한데다 잘 치지도 못하니 먼 데 있는 클럽에는 들어갈 엄두도 못 내고
초보 때라 별 생각 없이 받아주는 대로 동네 클럽 몇 군데에 중복 가입을 해버렸다.

그랬더니 봄, 가을 시합에서 어느 팀 선수로 뛰느냐 하는 것이 우선 문제가 되어
이제까지 친하게 지내던 회원들이 갑자기 시합 전후로
마치 날 적성국의 스파이 보듯 싸한 분위기로 대하질 않나,
분기 대회 등 각종 단지 행사 일정이 겹치니
인기 연예인들이야 매니저라도 있어서 스케줄 조정을 해주니 겹치기 출연이 가능하지만
맨땅에 헤딩하는 나로선 몸이 몇 개였으면싶은 난감한 경우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애경사 챙기고 쫓아다니는 일도
돈 한 푼 못 버는 아줌마의 경제적 능력을 한참 벗어난 일로 버거웠지만
겨울이 되어 코트 눈치우는 일처럼 몸보다 마음이 더 바쁘고 힘든 일이 없는 것같다.

눈이 오면 어느 코트 눈부터 치우기 시작해서 어느 정도씩 치우는 척하다
다른 코트로 이동하고 이동해서 몇 군데 다 눈도장을 찍는 일을 하고 나면
파김치가 되고 눈 온다는 말만 들어도 바로 경기를 일으킬 지경이 된다.

거기에 더해 구박과 차별 받는게 싫으면 호적 파오라는 말을 노상 듣다보니
우선순위를 정해 호적정리를 해야지 이러다가 제 명에 못살겠다 싶었다.

동가숙 서가식이란 말도 있고
아직도 몰몬교도나 회교도 등에서 일부다처제인 가족형태가 있고
반대로 드물지만 일처다부제도 존재한다지만 이런 일을 겪은 나로선
일부일처제 모노가미가 최선이란 생각이다.

눈치운 사람들의 노고를 치하하고
안/못치운 사람들로 하여금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을 불러일으킬 목적으로
매번 여럿이 치워야 할 정도로 눈이 오면 클럽카페에 눈치운 사람 명단을 띄우고 있는데
작년에는 또 재작년에는 몇 번이나 눈이 왔고 눈은 주로 어떤 회원들이 치웠는지
눈이 얼마나 왔고, 온 눈이 습하지도 않고 양도 적은 착한 눈이었는지
아님 많이 쌓이고 젖어서 한 삽 퍼올리기 묵직하거나 질퍽한 못된 눈이었는지
지내고 나니 마치 코트의 작은 역사처럼 기록으로 쌓여가고....





[테니스는 어떻게 완성 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