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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이 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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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전 진눈깨비 섞인 첫 눈이 오더니 어제 새벽 또 눈이 왔다.
초보 때 눈 한번 치우고 나니 그 후 눈은 하늘에서 쳐들어오는 하얀 적군이고,
눈을 치우는 일은 재밌게 공치는 것 말고 손 끝 하나 까딱하기 싫어하는
귀차니스트인 나에게 겨울이면 피할 수 없는 시지프스의 천형이다.
이틀 거듭 오는 눈은 더블 폴트보다 얄밉고
반쯤 녹아 질척한 눈의 무게는 잘못된 라인 콜보다 원망스럽다.
남편은 한참 앞선 미래를 사는 것 같다.
마누라 집에서 펑펑 논다고 비난할 때 보면
세탁기에 빨래가 스스로 들어갔다 뽀송뽀송 말라서 나오고
밥은 제 몸을 씻고 얌전히 밥솥에 들어앉았다가 김나는 따끈한 밥이 되어 나오고
진공청소기는 쓸고 닦고 정리정돈까지 해주는 인공지능을 가진 줄 아니
공상과학소설적인 사고를 하는 모양이다.
평일 아침 쌓인 눈은 어쩔 수 없이 코치님과 여성회원의 몫이지만
오전 시간 날 때 공치러 나오는 남자회원들의 도움도 절대 마다 않는다.
남자회원 중에는 남편이 집안살림 보는 관점으로 코트의 눈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 것 같다.
인조잔디 위에 쌓인 눈은 해만 뜨면 스스로 녹아서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져 준다거나
발이 달려있어 담장 밖으로 나가 한구석에 척척 쌓이는 줄 안다.
그런데 우린 21세기가 시작한 지 얼마 안 지나서
아직도 손을 놀리고 발로 움직이는 고역을 해야 뭐가 되도 되는 미개한 시대에 살고 있다.
휴일에 오는 눈은
어차피 코트에 땀 흘리러 나온 김에 새로운 종목한다 마음먹고
너까래로 부지런히 눈 쓸어 모아놓고 삽질 열심히 해서 손수레에 퍼 날라
몸은 비록 곤하지만 모처럼 회원들 간에 끈끈한 정도 느껴보고
술로 목 추기고 밥으로 허기 달래며 정담 나누다가
바닥 마르기를 기다려서 젖어서 묵직한 공 치고 돌아갈 남자회원들의 몫이겠다.
前 총무는 눈 온 다음날이면 꼭 전날 눈 치운 사람들의 명단을 공개했는데,
수고스런 일을 한 노고를 치하하고 바빠서 못 도운 사람들이 미안한 마음을 갖게한다는 취지였겠지만
바쁜 사람은 늘 바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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