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는 더한 땡볕에서도 공쳤거든요!"
내가 후배에게 이 폭염주의보 하에도 공쳤느냐고 꾸짖자 정말 생각 안나냐는 표정으로 되받는다.
어디 이 뿐이랴?
테니스를 접한 지 얼마 안되던 초보시절 갖고 있던 생각들 중에는
아직 변함없이 지키고 있는 것도 있지만 그보다는 더 많은 생각들이 바뀐 것같다.
바뀌지 않은 것들이
초심지키기나 삶의 원칙고수같은 고상한 이유에서인지 고집이나 오기같은 섣부른 자존심에서인지
그것도 분명치 않다.
코트에서의 입장이나 지위, 역할이 바뀌면서 자주 대하게되는 사람 또한 달라지다보니
어떤 때는 이전과 백팔십도 다른 생각이나 행동을 하고 있다는 걸 깨닫고 화들짝 놀라곤 하는데
바뀌는 것이 순리인지, 비겁이나 비굴한 타협에서 온 건지,
잘난 개똥철학이 세파에 시달리다 바람결에 사라졌는지, 다른 모습으로 진화한 건지
테니스적으로 성숙 내지 철이 든 건지
이 또한 알 수 없는 일이 되버렸다.
아무튼 중간집계?를 내보면
변하지 않은 것들을 자랑삼아 내세우지도 않지만 변한 것들이 딱히 부끄러운 것만도 아닌
잘치지도 그렇다고 아주 못치는 것도 아닌 내 실력처럼이나 그저 어정쩡한 상태다.
비슷한 연배의 다른 아줌마들처럼 나도 스포츠 전반에 문외한인 채로 테니스를 접했다.
아마 그 때문에 초보시절을 호되게 겪었나보다.
테니스란 스포츠가 그리고 직업으로든 취미로든 이 스포츠와 인연을 맺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마땅치 않은 점, 얼른 이해가 안되는 불합리한 구석들이 자주 그리고 아주 커 보였다.
도대체 왜들 저러지? 그리고 이건 또 뭐야?하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욕 나오는) 의문들로 해서
어느 날은 씩씩거리면서 이놈의 테니스 때려치워야하나마나로 속을 끓이며 비분강개를 글로 썼는데
차마 올리지 못하고 지워버리더라도 그 과정에서 응어리나 앙금들은 어느새 조용해지곤 해서
다음날 좋아하는 공치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일이란 체념으로 마음 고쳐먹고
멀쩡한 표정을 하고 라켓들고 코트 나가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공을 쫓으며 웃고 떠들 수 있었다.
전에 이기고 지는 승패가 있는 운동을 해본 사람은  
테니스가 자신의 옛날 종목보다 초보구박이 더하다/덜하다하는 상대적 입장을 갖는데다가
운동 오랜한 사람들의 텃세라든지 실력자나 힘있는 사람과 주변의 인간군상에 대한 선경험으로해서
비록 초보라도 대충 접고 넘어가는 것들이 꽤 많을 텐데
그런 경험이 전무한 사람에게 승패란 짜릿한 쾌감이기보다 부담과 중압감이었을 것이다.

갑자기 혼자 서브연습하고있는 사람의 마음 속이 궁금하다.
아직 날카로운 서브에 대한 야심이 남아있는걸까?
아니면 그저 더블폴트나 면해보려는 소박한 소망에서인가?
눈도 안마주치고 딴전피는 상대에게 난타치자거나 게임하자는 말 차마 입을 떼지 못하고 있는걸까?
마주해줄 누군가를 간절히 원하는건지 아님 혼자 연습하게 날 좀 내버려둬줘하는 건지?  
마음 비우고 세월을 기다리는 낚시꾼의 마음인지 과녁을 향해 시위를 당기는 사냥꾼의 마음인지
전 같았으면 리턴해도 되나요?하고 서버의 대답이 떨어지기도 전에 라켓들고 리턴자리에 벌써 들어가있었을텐데 요즘은 그것도 주저하게 됐다.




[테니스는 어떻게 완성 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