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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자꾸 옛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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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스토리란 영화는 바하와 모차르트 그리고 비틀즈를 사랑했던 부인을 회상하는
남편의 나래이션으로 시작된다.
글쎄 난 어떻게 기억되려나?
페더러와 죠지 크루니 그리고 뽑아 쓰는 키친타올을 끔찍이 좋아했던 철없는 아내로?
아님 여느 남편처럼 화장실에 들어가서 몰래 웃고 있으려나?
공 안치며 딴짓하다가도 옛일이나 옛사람들이 테니스의 유령처럼 불쑥불쑥 떠오른다.

다음은 삼성 챌린저대회가 있던 늦가을에 만났던 한 여자분에 대한 기억이다.
그날 올림픽 코트는 해지기 전부터 쌀쌀했다.
몇 좌석 떨어져 혼자 관전하고 있던 그 분에게 우리 쪽으로 오시라고 해서
담요를 펼쳤다 다시 길게 반으로 접어 세 사람의 여섯 무릎 위에 덮고 붙어 앉았더니
새로운 얘기상대의 출현으로 기분도 들뜬데다
담요 두께는 좀 얇아졌지만 한사람의 체온이 더해져 오히려 훈훈했다.
(내가 가운데 앉아서?)
어디서 공 치세요?라는 의례적인 질문으로 서두를 꺼냈는데
관전은 몇 십 년 했지만 본인이 공을 쳐본 적은 한번도 없었다는 답변이
너무 뜻밖이라 잠깐이지만 말문이 막혔었다.
온 국민이 김연아팬이 되어 루프니 악셀같은 피겨스케이팅 전문용어를
일상의 대화에서 거리낌없이 사용하고 있고,
낮은 물에도 발 담가본 적이 없거나 물을 엄청 겁내는 사람조차
박태환선수의 최근 영법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하며 일가견이 있는 양하는 게
별로 이상해 보이지 않지만
일부러 테니스장을 찾아 관전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응당 본인도 현재 테니스를 열심히 치고 있거나
적어도 과거 어느 시점에는 테니스를 쳐본 적이 있었을 거라는
근거없는 확신이나 편견을 갖고 있었나보다.
그 분은 얌전한 옷매무새만큼이나 말씀도 차분하고 정연하게 하셨는데
눈은 코 앞에서 펼쳐지는 경기에 좌우로 왔다갔다 바삐 움직였지만
두 귀는 테니스할머니(실제 나이는 아줌마 정도)가 들려주는
내가 알지 못하던 먼 옛이야기에 한껏 빠져들어
몰라도 아는 척하며 맞장구를 치기도 하고
터져나오는 웃음을 두 손으로 가리기도 했다.
언제나처럼 코트에서의 짧은 만남은 통성명도 서로의 연락처도 묻지 않고
따뜻한 악수와 가벼운 목례로 헤어졌지만
올 가을 올림픽코트에서 그 분을 찾아 관중석 구석구석을 두리번 거리게 될 것같다.

잠시 만나 흐뭇한 대화를 나눴지만 내내 잊고 있었던 그 분이 반년 만에
내 의식의 수면으로 떠오른 이유를 새겨보니
내가 라켓을 들지 못하게 되는 미래에 대해 생각하고 싶진 않지만
만일 그런 끔찍한 상상이 현실이 된다해도
관전만으로도 테니스 사랑을 계속할 수 있을 것도 같아서일지.....





[테니스는 어떻게 완성 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