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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호장룡(와발톱 장이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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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후배와 서로의 초보적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그 시절에는 다들 좋기만 했었는데....
열심히 공을 치긴 했지만 공치는 시간보다 깔깔 웃고 유쾌하게 떠들었던 시간이 더 많았고
눈치 볼 필요도 마음 닫아걸 이유도 없이
철부지 아이같은 순수한 마음으로 라켓 집어들고 집을 나서곤 했었는데....
어느 시점에서부터 우리의 순수의 시대가 막을 내렸나싶고
실력향상이란 여정의 험난함보다 인간관계의 복잡다난함에 두손들어 항복했던 일도 함께 떠올렸다.

아마 초보 때도 분명 날카로운 발톱과 번뜩이는 이빨을 가지고 있었을텐데
용케 잘 감춰 두고 있다가
어렴풋이나마 공 가는 길이 보이고
라켓이 마치 내 몸의 일부라도 된 듯 마음먹은대로 공을 보낼 수 있어지면
더이상 발톱과 이빨을 숨기지 않아도 되는지
카리스마 만땅에 독설을 주저않는 성격 까칠한 고수가 되어간다.

온통 공욕심에 가득한 젊은 개구리들에게
대물림되고 있는 고수/하수 사이의 알력과 원망, 질시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
대의를 생각해서 작은 희생과 봉사를 해줄 것을 기대하는 건 무리다.
그들에게는 자신들이 올챙이적 받았던 인간적 따뜻함이나
선배들의 관대함에 대한 기억은 이미 삭제되어 휴지통이 비워진 상태이고
구박과 수모 그리고 왕따와 승부세계의 잔인함만이 풍선처럼 부풀려져
장기보관함에 차곡차곡 쌓여있어 악순환은 고스란히 재생산되게 된다.
이들에게 초보란 코트에서 극구 피해야할 벌레같은 존재이고
코트 밖에서는 재정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짜낼 수 있는 데까지 짜내야하는 착취의 대상이고,
아주 가끔씩 선심쓰듯 공쳐주는 것으로서 양심의 가책에 대한 면피용이겠고,

기억 속에 먼지만 쌓아가던 지난 몇 년을 돌이켜보니
마흔넘는 나이에 시작한 테니스란 운동이
내겐 인생의 새로운 국면으로의 진입에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고
가족과 친구, 마음이 통하는 몇몇 이웃 정도의 소박한 인간관계가
라켓잡은 사람은 모두 한식구인듯한 사고로 전환되면서 관계의 폭이 빅뱅처럼 팽창한 단초였으며,
공에 목숨 걸고, 승부에 눈이 먼 것처럼 행동하고, 시합다니는 것을 소풍가는 아이처럼 즐기는
좀처럼 이해가 안되는 사람들로 가득한 신기한 세상에 디딘 첫발이었고.
이렇게 사는 게 아닌데하는 회의가 드는 각성의 순간이 가끔은 있었지만,
재미와 열락 때문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르게 시간만 잘가는 무릉도원이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테니스 코트에 실재한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테니스는 어떻게 완성 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