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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Inner Game of Tennis 1

1972년 출판된 이래, 테니스뿐 아니라 전체 스포츠 교본 중에도 고전에 속하는 티모시 겔웨이(W. Timothy Gallwey)의 The Inner Game of Tennis는 테니스가 신체적 게임이라는 기존의 관점이 아닌 정신(mind)적 게임이라는 혁신적인 시각을 도입했다. 지금에야 이 정도는 상식으로 받아들여지지만, 그 시절에 이 책이 스포츠 과학에 끼친 영향은 지금도 ‘mental training’ 등으로 검색해 보면, 셀 수 없이 쏟아지는 많은 책들의 서문에서 상당수의 저자들이 거의 예외 없이 Inner Game을 말하고 경의를 표하고 있음에서 짐작할 수 있다. 사실 느지막히 2000년대 중반에야 이 책을 처음 접하게 된 내게도 이 스포츠의 본질에 대한 겔웨이의 섬세한 관찰과 성찰이 자못 충격적으로 다가왔을 정도니..

책은 그 자신 테니스 코치로서 오랜 기간 경험해 온 관찰에서 비롯한다. 테니스 게임 도중 비교적 쉬운 샷에서 에러를 범한 선수는 “ooo야(자기 이름) 무릎을 낮춰야지” “제발 공 좀 끝까지 봐라…” 정도의 탄식에서부터 “ooo야 너 왜 그러냐!”, “이런 멍청한 녀석!” 혹은 심지어 훨씬 심한 욕설에 이르기까지 스스로에게 무언가 소리를 지른다. 아마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 모두 수없이 목격했던 장면이리라.

겔웨이의 질문은 여기서 시작된다. “대체 이렇게 야단을 치는 사람은 누구고 그 야단을 맞고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간단히 요약하자면, 한 사람처럼 보이는 플레이어가 사실은 두 개의 자아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 겔웨이의 결론이다. 그는 각각의 자아를Self1과 Self2로 명명했다. 논리적인 분석과 평가를 즐기는 Self1은 선천적이고 종합적인 운동능력을 갖추고 있는 Self2에 대해 언제나 우위에서 명령을 내린다. 그 명령들은 흔히 단순하게 요약된 기계적인 형태다. 예를 들어, ‘무릎을 굽혀라’, ‘공을 끝까지 봐라’, ‘피니시를 끝까지 해라’, ‘손목을 고정해라’ 등등… 상당히 귀에 익지 않은가? 우리가 코트에서 수없이 되새기는 소위 ‘팁’들이 바로 그 명령들이다.

문제는 Self2가 실수를 했을 때 시작되는데, Self1은 즉시 문제점을 분석해서 교정하려고 덤빈다. “ooo야 무릎을 낮춰야지”, “제발 공 좀 끝까지 봐라…” 이제 Self2는 본능적인 영역에서 화들짝 깨어나서 이성의 영역으로 나오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노력을 하면 할수록 점점 더 어색한 지시들로 몸은 굳어만 가고… 결국 또 다른 에러… 이제 Self1조차도 당황스럽다. 지시를 넘어서 비난으로 접어든다. “ooo야 너 왜 그러냐!”, “이런 멍청한 녀석!” … 이제 Self2는 어느 명령에 따라야 할 지 어리둥절해지고… 머리 속은 하얗고, 계속되는 에러… 악순환은 끝없이 계속된다.

결국 겔웨이의 해결책은 매우 간단했다. Self1을 침묵시키는 것. 그러자면 Self1에게 쉽게 판단과 평가를 하기 어려운 독특한 과제를 부여하는 것이다. 그러면 Self1이 자신이 당면한 과제에 너무도 바쁜 나머지, 미처 Self2의 활동을 방해하는 명령을 내릴 새가 없어지고… 바로 그 지점에서 기적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공이 라켓에 맞을 때 나는 소리가 어떤지를 들어보라고 하는 식이다. 다만, 그 과제가 어떤 특정한 소리가 나야 한다는 식이 아니라 그저 그 소리를 아주 ‘잘’ 들어보고 구별해 보라는 것이어야 한다. Self1으로서는 이 소리를 쉽게 정의하거나 몇 마디로 요약하는 것이 쉽지 않은 과제이므로 이것에 빠져 있는 동안에… 그 권위 아래 억눌려있던 Self2가 ‘비로소’ 억제되지 않은 자연적인 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한다는 설명이다.

겔웨이의 Self1, Self2 설명은 일반적인 좌뇌와 우뇌의 기능에 대한 설명과 일맥상통한다. 좌, 우뇌의 특성 연구로 노벨상을 수상한 미국의 신경생물학자 로저 스페리의 연구가 1960년대에 이미 발표되었지만 아직 구체적인 적용에 이르기까지 일반화되지는 못했던 시점이었을 것으로 보여, 집필 당시 겔웨이가 이 연구성과를 알고 있었는지 여부는 명확하지 않다. 어쨌든, 나로서는 Self1이 Self2를 간섭하여 오히려 부자연스러운 동작으로 이끈다는 점은 실제 경험한 사실로 쉽게 이해가 갔다. 아직 군사문화가 지배적이던 초등학교 시절 군대식 행진 훈련을 하다 보면, 왼발과 왼손, 오른발과 오른손이 함께 나가서 웃음거리가 되던 친구가 꼭 한 둘씩은 있었다. 한편으로 깔깔대면서도, 평소 걷는데 전혀 문제가 없던 아이들이 왜 꼭 훈련만 하면 저렇게 되는 걸까 하는 오랜 의문이 속 시원히 풀리는 순간이었다. 어쩌면 그 아이들이 실은 Self1의 힘이, 즉 사고력과 논리력이 지나칠 정도로 탁월한 천재들은 아니었을까? 모쪼록 그 민망했던 기억들이 나중에 그 놀라운 사고력을 발휘하는데 방해가 되지 않았기를…

겔웨이의 연구는 70년대에 상당한 인기를 끌어서, 모 TV방송국에서 특집으로 다룰 정도였다. 이 프로그램에서 겔웨이는 TV카메라가 지켜보는 앞에서, 실제로 테니스라켓을 잡아본 적은 고사하고 최근 수 십년 간 운동다운 운동 한 번 한 적 없다는(실제로도 그렇게 보인다) 중년 여인을 단 20분만에 포핸드와 백핸드, 서브까지 가르쳐서 실제로 게임까지 하는 것을 시연해 보였다. 그것도 그 무겁고 빵도 작은 우드라켓을 가지고 말이다. 실제로 보지 않고는 못 믿겠다는 의심 많은 분들을 위하여… http://www.youtube.com/watch?v=HzR8x5MgvDw 프로그램 도중 그 여성이 말한다. ‘생각하는 걸 멈추고 나니, 내 몸이 마치 뭘 해야 하는지 아는 것 같았다.” 아마도 그 ‘몸’이 바로 Self2였으리라.

지금 테니스 선진국에서 이루어지는 테니스 레슨은 근본적으로 겔웨이의 연구에서 출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아직도 각각의 스트록 메커니즘에 집중하는 한국과는 달리, 서구의 레슨은 거의 한 두 달 안에 (20분은 아니더라도) 게임에 필요한 모든 기술을 습득하게 한 후, 게임과 드릴을 통하여 그 각각의 기술들을 완성해 가는 식이다. 지금의 나로서는 꼭 어느 한 방식이 다른 방식에 비해 더 효과적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겔웨이의 선구적인 연구와 이를 실제로 적용하려는 나중 세대의 노력들이 모여서 현재의 테니스 지형을 만든 것은 분명해 보인다.

번역본이 나와 있을까 해서 인터넷을 뒤져보니, 겔웨이 만년에 이 이론을 골프에도 적용시켜 본 “The Inner Game of Golf”(2006)가 “이너골프로 10타 줄이기”라는 묘한 제목으로 유일하게 번역되어 나와 있다. 아마도 뭔가 사정이 있었겠지만 이 정도 책이 아직도 우리 말로 나와있지 않다는 점은 심히 유감스럽다. 이미 출판된 지 반세기가 다 되어가는 책이지만…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여전히 테니스에 대해서, 아니 스포츠, 더 나아가 삶 전체에 대하여 이보다 더 깊은 성찰을 한 책은 찾아보기 어렵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강추하는 책이다.

** 예전에 읽었던 기억만 가지고 적어나가다 보니 아마도 좀 왜곡된 내용도 있지 않았을까 걱정이지만… 워낙 좋아하는 책이라 다음 기회에 내용을 하나 정도 더 소개해도 좋지 않을까.






[테니스는 어떻게 완성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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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 '4'
  • 느림보 10.04 14:45
    퍼뜩! 무언가 전해져 오는 느낌! 정말 정말 좋은 글입니다. 얼마전 게임에서 제가 한 행동을 그대로 옮겨놓으셨네요. 저도 아주 아주 조금 느껴가고 있었는데 이글을 보고 나니 생각을 멈추가 몸에 맞겨야 겠네요. 폼에 너무 신경쓰다 보니 공을 깍어치고 포기하고 아무생각없이 칠때 실수가 줄고 공에 힘이 가해지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물론 저는 초보입니다.
  • 담대하라 10.05 12:59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
  • 바람도리 10.05 17:43
    요즘 아들 녀석이 테니스에 빠져들면서
    묵은 테니스 이론들을 다시 한 번 되새겨보게 되네요.
    어떻게 보면, 겔웨이의 이론이 동양의 명상 방법과도 흡사한 면이 있는 듯 하죠?
    다시 보니... 엄청 장황하기만 한 글인데
    읽고 댓글까지 달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 배정호 01.20 11:39
    그렇군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