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니스 클럽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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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어느 때 쯤 조간신문을 뒤적이다 깜짝 놀란 적이 있는데 십여년 전 이웃에 살다 이사간 뒤 통 소식을 모르고 지내던 한 아줌마가 이름지어주는 걸로 유명해져 정치인이나 연예인 같은 유명인뿐 아니라 기업의 상호 등의 이름 풀이한 내용을 책으로 냈다는 광고성기사가 대문짝만한 사진과 함께 전면광고로 실려있었다.


점집이 무슨무슨 철학원으로 불린지 오래라 이전엔 작명소로 불리던 이런 방면도 철학을 바탕으로 기업화하나 싶기도 했지만, 첫인상만큼이나 이름도 중요한 것 같다는 생각이 뒤따랐다.


호감가는 인상을 위해 뼈를 깎고 지방을 흡입하고 뭔가를 주입하고 꿰매고 이어 붙이는 목숨 건 성형수술도 마다않는 한국 사회에서 꼬이고 잘 안풀리는 과거와 절연하고 보다 나은 미래를 약속해주는 좋은 이름으로 바꾸려고 재판하는 것 쯤은 하나도 이상할 일이 아니다.


하긴 촌스런 이름이나 기존 배우와 겹치는 이름을 가진 배우 지망생에게 영화사 간부가 즉흥적으로 지어주었던 이름이 영화사에 길이 남는 전설이 된 얘기는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의 얘기고 이제 연예인들의 예명은 에이젼트사에서 전담해주는 주요 업무가 됐다하고..


또 광고회사 기업PR 담당하는 부서에는 기업이미지 제고나 혁신을 위해 로고나 개명 등을 특화하는 팀이 있다는 얘기도 들었으니 아무튼 이름의 중요성과 이름이 주는 위상과 영향력에 대해 개인이나 사회 모두 인정하는 모양이다.

테니스 구력 일년 차 정도의 레슨자들이 우리끼리 맘 편히 칠만한 모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얘기 끝에 나이 제일 많은 언니를 회장으로 추대하고 나는 코트예약과 연락을 맡는 총무하기로 하면서 레슨없는 수요일에 모여치는 클럽 하나를 서서 자판기 커피 한잔 마시는 사이 뚝딱 결성해버렸다.

 

일사천리로 추진된 우리 클럽이 코트면 예약하려해도 그렇고 대외적인 측면을 고려해도 당장 이름이 필요한데 그 이름짓는 일이 초보엄마들 사이에 갑론을박하는 골치거리였다.


누군가 Best Ball 클럽으로 하자는 제안을 해서 나를 포함한 다수가 옳다구나하고 재깍 동의를 했더니만 다른 누군가가 약자인 BB가 애들 갖고 노는 BB Gun이 연상되고 얼핏 들으면 빌빌거리는 클럽처럼 들리는데 이름이 그러면 밟히고 업신여김을 받는다고 반대를 하는 바람에 그말도 일리가 있는 것같아 끄덕이고 보니 도로 제자리.....뭐 이런 식이었다.


중구난방으로 갈피를 못잡고 온갖 이름을 올렸다 내렸다하는 걸 반복하고 있을 때 오랜 침묵 끝에 말문을 연 한 사람이 당시 우리가 공치던 코트가 녹색의 인조잔디고 우리같은 햇병아리를 상징하는 색이 Green이니 태권도 승단할 때 띠를 바꾸듯 우리도 몇 년 후 실력이 향상되면 빨강, 파랑 결국에는 검정(Black Belt 뭐야! 결국 또 BB네?) 클럽으로 이름을 바꿔나가자는 제법 설득력있고 의미심장한 제안을 했고 이 엄마 말빨이 먹혀 잠정적이긴 했지만 만장일치로 클럽명을 그린으로 정했다.


물론 승단해서 이름 바꿀 새도 없이 회원들이 레슨 그만두거나 다른 클럽 가입해 뿔뿔이 흩어지는 바람에 결성만큼이나 해체도 빨랐던 클럽이긴 했지만 풋풋한 초보시절이 담긴 이름이고 테니스로는 또래집단 사람들과의 첫만남이라서 아직도 내게는 좋은 추억으로 기억되는 이름이다.

어느 코트나 레슨받는 초보들은 비슷비슷한 이유와 목적에서 끼리끼리의 모임을 만들게 되는데
그린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결성되었고 나는 일년 쯤 후에 입회해서 지금은 회장으로 몸담고 있는 3040라는 클럽에도 이름과 얽힌 사연이 있어서 소개해볼까한다.

레슨 받고 막 테니스 시작해서 공에 대한 열정은 누구못지않게 충만했지만 곧 초보가 게임하는 게 여의치않다는 걸 깨닫고 여러 이웃 코트에서 흩어져 공치던 또래 공치는 아줌마들을 모아 범과천초보여성클럽을 만들게 되었는데..


자신이 초대회장을 맡자 회원들이 클럽이름은 회장님이 알아서 정하라고 위임을 해주는 통에
한주 넘도록 뭐가 좋을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고 한다.


그런데 문득 게임스코어가 게임포인트이거나 브레이크포인트가 되어 Deuce가냐 못/안가냐하는 30-40일 때가 가장 긴장감있는 스코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러고보니 회원들의 연령구성도 30대와 40대여서 30, 40대에 만나 70 넘게 쭉 같이 공치자는 취지로 3040라고 짓게 되었다고.


그런데 얼마 후 이웃인 안양에도 같은 이름의 3040클럽이 생겼다는 소문이 들려서 이름을 선점해놓았지만 어디 오소리 있는 기관에 등록을 안했기 때문에 3040란 이름의 독점적사용권을 놓쳤다느니하는 원망섞인 얘기가 회원들 사이에 오가는 가운데 안양이면 지척인데 친하게 지내자고 3040라는 동명클럽끼리 교류전을 갖기도 했다.


대부분의 회원들에게 첫클럽이었을 안양3040클럽은 그후 유감스럽게도 해체되었지만 회원들은 다른 클럽에 가입해서 시합 나가 좋은 성적도 내고 열심히 공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런 클럽이름도 있다.


레슨을 받고 있던 코치님 이름을 따서 X사랑이라고 지었더니 우리클럽이름이 부담스러우시다면서 한사코 개명하라고 종용 하시는 바람에 We Like Tennis에서 앞글자를 따서 위라테라고 지었더니 이번엔 다들 너무 어려운 이름이라고....

이 밖에 내가 기억하는 과천지역의 인상적인 클럽이름으로는 Cool Club이랑 Nice Club, 아테네(아침에 테니스치는 모임) 등이 있는데 갑자기 다른 지역에 있을 멋진 클럽이름들이 궁금해졌다.





[테니스는 어떻게 완성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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