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니스 십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언니 기분도 꿀꿀한데 소주 한잔 사주세요."라는 문자를 받으니 글쎄 좀 당황스러웠다.


꿀꿀해서 소주가 땡기는 상황에 어찌 나를 떠올렸을꼬?


영화관으로 또 시합관전한다고 바쁘게 쏘다니느라 정작 코트에는 뜸했더니 얼굴 좀 보여달라는 얘기같긴 한데.

연말 기분 더러운 것으로 따지자만 나이도 한참 아래인 그 사람이 아직도 몇 년은 더 사학년에서 버틸 수 있다고 나이셈을 미국식으로 바꾸는 등 바둥대는 나만 하랴싶다.

매년 이즈음이면 별 이룬 것없어 등 뒤가 허전하고 쥔 것없는 빈 손이 부끄럽기만한 한해를 돌아보며 숨 가쁘게 날 비껴가버린 세월 탓 하느라 뒤숭숭하고 그랬는데 올연말은 지난 십년을 반추하며 회한에 잠겨야하니 그 버거움이란 열배 스무배 아니 그 이상인 것같다.

전지구적 재앙에 대혼란이 예상됐던 Y2K에 대한 개인적 대응으로 사놓았던 부탄가스통이 아직도 집안 어느 귀퉁이에 고스란히 쌓여있을텐데 십년이 그렇게 훌쩍 가버렸다.

십년 전에는 테니스를 몰랐다. 두서너 해라도 당겨서 배웠더라면하는 아쉬움에 내가 십년 전에만 테니스를 알았어도 다죽었는데란 말을 자주했는데.

 

"다시 또 누군가를 만나서 사랑을 하게 될 수 있을까 그럴 수는 없을 것같아" 하는 양희은의 노랫말을 혼자 나즉이 읊조리다 문득 다음 십년 테니스와는 다른 무엇에 다시금 빠져들어 살 수 있을까하는 상상을 해본다.


그래도 아직은 그럴 수는 없을 것같다는 노랫말과 같은 결론을 잠정적으로 내리곤하지만.내 몸 여기저기 아픈데가 떼어도 떼어도 쩔꺽 남아 있는 흉한 껌자국처럼 좀체 가시지 않아서인지 계속 전처럼 사랑할 자신이 없어서일까?


내가 요즘 매달리고 있는 관전이 우회적인 사랑인지 출구로의 방편인지 종종 혼란스럽다.

그 이전 십년에는 머리로 할 수 있는 것에 대한 자신감을 철저히 잃었는데 이젠 몸으로 하는 것은 그보다 훨씬 더 늦었고 불가능하리만치 여의치 않았다는 걸 깨달았으니 과연 아직도 날 위해 남아있는 무언가가 있으랴싶기도 하고.

발로 차든 만지든 던지든 굴리든 아무튼 무슨 공이든 갖고 놀았던 적이 있는 대다수 아저씨들과는 달리 공치는 아줌마들 중에는 테니스치기 이전에는 숨쉬기 운동만 했다고 다른 운동경력이 전무한 자신의 순백한 스포츠이력을 밝히는 분이 많은데..


올 초 국선도 시작하면서 숨쉬는게 엄청 어렵고 집중을 요하는 일이라는 걸 조금이나마 알게되자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무척 조심스럽다.

 

배고픔도 사랑도 그리움도 외로움도 오줌 마려운 것도 단 몇 분은 참을 수 있지만 들숨과 날숨을 참을 순 없다.(다시 생각하니 아무래도 화장실 건은 빼야할 듯, 또 오래 수련하신 분은 호흡도 많이 길어진다고)

 

흔한 애정고백에서처럼 깨어있는 단 한 순간도 너 테니스를 잊은 적이 없다고 자신할 수 없듯이
숨쉬는 것만큼 못참게 테니스를 사랑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곰곰 뒤돌아보면 지난 십년의 어느 순간에는 꼭 그런 적이 있었던 것같기도 하다.

PS)
서두에 우울하신 분은 읽지 마시라고 해둘 껄..생일도 지나고 연말마저 맞으니 슬픈 넋두리로 흘러서 죄송합니다.





[테니스는 어떻게 완성 되는가?]



TA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