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주니어테니스대회 취재기

동대문 근처에서 태어나고 자란 기자는 초등학교때 동대문야구장에서 고등학교 야구를 처음 봤다. 꽉찬 관중에 가슴이 먹먹하고 머리가 멍멍했다. 그날밤 하도 놀래서 귀가해 잠을 잘 못잤다. 


동대문을 지나 장충리틀야구장을 버스타고 지나가면 방과후에 늘 야구하는 어린이가 보였다. 부러웠다. 일찌기 야구에 눈을 돌려 자식에게 야구를 시키는 부모를 내 부모와 비교하게 됐다. 삼형제의 막내로 태권도장도 한번 제대로 다녀보지 못한 기자는 방과후 체육 활동하는 어린이들이 부러웠다.


장충리틀야구장을 지나 국립극장쪽으로 가다 보면 오른쪽에 길게 자리잡은 테니스장이 있다. 장충테니스장. 어른들이 모여 있으면 뭔가 있겠지 하고 지나친 곳이다. 내가 감히 들어갈 곳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스포츠를 좋아하는 기자의 아버지나 형은 앞서 말한 동대문야구장, 장충리틀야구장, 장충테니스장을 틈만 나면 수시로 들락거렸다고 한다.아버지와 형은 장충테니스장에서 김두환, 최부길, 김문일, 김성배, 노갑택, 송동욱, 유진선 등 국가대표를 봤다고 한다. 


하얀옷 입고 테니스 잘하고 늘씬한 여자선수들을 숱하게 봤다고 한다. 경기를 보고 온 날에는 동대문 헌책방에 들러 월드테니스, 모던 테니스 등 테니스 중고 잡지를 사들여 집으로 왔다고 한다. 형은 지금도 아침마다 테니스를 하고 월요일 저녁마다 동네아이들 모아놓고 테니스를 가르친다. 


연로한 아버지는 밤새 테니스 그랜드슬램 중계 보는 일을 낙으로 삼고 있다. 테니스 중계가 나오면 아들에게 전화해 어디서 누구누구 경기하더라는 이야기를 꼭 전해준다. 야구중계보다가도 테니스 중계하면 채널을 돌린다.


기자는 야구부가 있는 고등학교를 다녀 친구의 실밥터진 야구공을 꿰매는 일을 도와주고 야구장을 다녔다. 기자가 되어 프로야구,아마야구를 취재하고 테니스도 형에게 배워 익혔다. 


그 사이 86년 아시안게임 유진선-김봉수 복식 결승전을 며칠전 코리아오픈때 처럼 관중들로 꽉찬 올림픽코트 꼭대기에서 봤다. 


일간지 스포츠 담당기자는 대개 7개 종목을 커버하는데 야구 외에 테니스도 하게 됐다. 프로야구 담당 기자는 프로야구가 밤에 하므로 낮에 시간이 남는다. 야구담당기자는 일의 형태가 올빼미형이다. 그래서 강남뱅뱅사거리 가는 길에 낮에 들르는 곳이 있다면 장충코트다.


늘 대회가 있기 마련이었고 없으면 테니스하는 것을 보는 것을 낙으로 삼았다. 그렇게 해서 장충코트에 발을 들여 놓았다. 해마다 가을에 하는 장호배때는 매일 출근하다시피하면서 고등학교 선수들 경기를 봤다.


  
대산초등학교 학생들이 15명 출전했다.  30일 마지막 경기를 한 선수에게 송병운 선생님이 지도를 하고 있다

테니스하는 사람들은 장충코트를 엄마같은 곳으로 여긴다고 한다. 주로 장충코트에서 게임을 하고 테니스 가방을 들고 왔다갔다했다고 한다. 테니스로 밥먹고 사는 사람중에 장충땅 안밟은 사람은 없다고들 한다.


이러한 배경속에 지난 9월 30일과 10월 1일에 주니어대회를 하나 여는데 거들었다.


제 1회서울주니어테니스대회 주말리그가 바로 그것이다. 8살부터 16세 중고등학생까지 99명이 출전했다. 


새싹부는 8게임, 10세부부터는 3세트(세트올일 경우 10점 매치타이브레이크)경기로 했다. 게임이 길어지고 코트 사용시간이 저녁 6시여서 낮 12시에 시작한 경기는 저녁 6시에 끝낼수가 없었다. 하루종일 기다리다 한경기도 못하고 간 선수도 발생했다. 


10월 1일에는 10시부터 시작했지만 1시 쯤 비가 내려 대회를 끝낼 수가 없었다. 비오면 다음에 하지 하는 생각을 했지만 선수들이 바빠 일정 잡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부모들은 새싹부는 6게임하고 10세부도 8게임해서 8강이전까지 끝내고 나머지는 정규 게임으로 했으면 벌써 끝낼 수도 있었다는 운영안도 내놓았다. 


대회는 참가하는 선수나 부모, 코치, 대회주관자가 함께 만들어가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대회를 하면서 대회참가신청서를 인쇄해 1회전 탈락하는 선수들에게 상장케이스에 넣어 전달했다. 


지고 나온 선수들의 표정이 하나같이 심각했다. 어려서 운동부에 들어가 운동한 경험이 없는 기자는 지고 나온 어린 선수들의 심경을 잘 헤아리지는 못한다. 하지만 어린 선수라도 아주 심각했다. 


주머니 없는 패션 바지 입고 경기에 나선 선수는 공 하나를 어찌할 줄 몰라 게임을 망쳤다고 한다. 경기 뒤 은박지에 싸인 김밥을 먹는데 경기에 져서 그런지 화가 많이 난 표정이었다.


아버지는 근처에 가지도 않고 엄마는 멀찌감치 그 모습을 지켜만 보고 있었다. 옆에서 물이라도 먹으라 건네면 자식에게 한소리 들을 상황이었다. 


어린이 게임이고 주말리그인데 참가하는 선수나 그 경기를 지켜보는 부모는 장난이 아니었다.


코트에서 선수들이 경기를 얼마나 하나 했더니 새싹부도 한시간을 넘기고 10세부 공좀 친다는 선수끼리는 두시간반이 넘은 경우도 있다. 대회 진행에 애로사항은 길어지 경기시간이었다.


그런데 선수들이 한세트를 내주고도 2세트에서 포기하지 않고 따내 매치타이브레이크 5대8로 뒤질 때 어차피 질바에는 아쉽지 않게 공격이라도 마음껏 해보자는 플레이를 해 11대 9로 대 역전극을 펼친 선수도 있었다. 


경기 뒤 두손을 높이 들어 나달이나 페더러의 그랜드슬램 우승 뒤 세레머니를 보였다. 아버지는 의자에 앉아 포인트 하나하나에 가슴을 졸이는 것 같았고 엄마는 가슴이 떨려 먼발치 구석에서 아이의 경기를 봤다. 두시간 반 인내를 시험하게 했다. 나중에 아이와 두고두고 얘기할 경기였다고 소감을 전해왔다. 


다행히 경기 동영상 촬영을 해 그 가족의 평생 추억거리로 남긴 것 같다.


대회에 출전한 선수들은 기자가 다 모르지만 저마다 사연이 있다. 어려서 자녀에게 라켓을 쥐어준 부모는 깨어있는 부모라고 생각된다. 


공부도 하고 운동도 해서 자기 앞 길 스스로 열어 가라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 8살짜리가, 10살짜리가 200평되는 코트에 들어가 한시간동안 자기 배운 것, 자기 기질 다 동원해 게임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귀한 기회인가.


이번 대회를 준비하면서 고집한 것이 몇개 있다. 우선 토너먼트 방식을 고집했다. 예선 리그전도 해서 경기 경험을 늘리는 것이 좋지 않냐는 의견도 있었지만 단판, 녹아웃 토너먼트를 택했다. 


일본의 스모 경기처럼 한판에 모든 것이 결정되는 것이다. 리그전의 장점도 있지만 테니스는 실수하면 안되고 실수를 극복해야 하는 경기다. 지금 실수하면 다음에는 기회가 없다는 것을 어려서 체득할 필요가 있다.


지금 져도 다음에 기회가 있겠지하는 마음보다는 지금 이순간 최선을 다하자, 라켓 가방에 넣을때 까지 승패는 누구도 알수없다는 생각을 심어주려고 했다. 코트는 인생의 축소판이라고 한다. 10세부 남자 한경기와 12세부 남자 두경기에서 대역전극이 일어났다. 이 경기는 두시간이 넘게 소요됐다.


이번 대회를 준비하면서 고집한 두번째는 장충장호코트다. 왜 장충장호코트인가.
장충장호코트는 영국의 윔블던, 프랑스오픈의 롤랑가로스다. 한국의 윔블던이고 한국의 롤랑가로스다. 선수들 꿈의 무대고 꿈을 심어준 곳이다. 


한때 이곳이 없어질 위기에 있었고 코트 바닥은 방치해 거북이 등처럼 갈라졌다. 지금은 서울시의 노력으로 보수됐다. 


장충장호코트에서 이덕희배도 열렸고 무궁화배도 열리고 회장배도 열렸다. 그전에 모든 대회는 장충코트에서 열렸다. 선수나 코치 감독, 가족들, 기자들이 다 몰려들었다. 다 만났다. 


주차장에 50여대를 대면 끝이다. 아수라장이다. 근처 국립극장이 있고 자유총연맹 유료 주차장이 있음에도 부득불 코트내 주차장에 대고 들어와 경기를 봤다. 


이번 주니어로컬대회는 12시부터 시작했는데 오전 레슨과 이벤트 행사 동호인들이 차를 못빼 난리였다. 그런데 30분이 안되어 다 원하는데로 차가 빠져 나갔다. 조금만 기다리면 다 풀리는 일이고 다들 양보와 양해를 했다. 주차장 넓은 곳에서 대회를 하자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좀 불편하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


너무 편리만 추구하지말자고 설득했다. 차 대고 조금 걸어가 경기를 하거나 관전하고 하는 것이 좋지만 주차장 좁아 차 서로 빼주고 양해하고 미안한 말 서로 주고받는 것도 다 세상살이 아닐까.


다시 돌아와서. 왜 장충장호코트를 고집했나하면 이곳은 선배들의 땀과 정성이 새겨진 곳이다. 건물내 샤워장에 내려가다 보면 테니스협회 자립기금 기부자 명단이 있다. 우리나라 테니스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름들이다. 


어린이들이 이곳을 무심결 지날 것 같지만 눈에 새기고 머리속에 넣어둔다. 3번 코트 바깥에 시계탑이 있다. 이형택의 2003년 한국테니스사상 처음 투어 우승한 기념으로 장충코트에서 테니스를 즐겨 보시던 박상윤씨가 시계탑을 기증했다. 장충코트의 시계는 한번도 멈추지 않고 돌아가고 있다.


이 시계탑을 보면서 유래를 이해한 선수가 나중에 꿈 이루는 선수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센터코트에선 나중에 우리나라 국가대표가 된 선수들이 결승전을 한 곳이다. 대회 공식 사진 기자가 사진을 찍어보니 다들 잘 나왔다고 한다. 그러면서 좋은 분위기와 기운이 흐르는 것이 사진에 다 배어져 나온다고 했다. 그래서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고 종일 셔터를 눌렀다고 한다.


비가와서 대회를 끝내지 못하고 추석 연휴가 시작되어 대회는 잠시 멈췄다. 남은 경기는 40경기 이상이다. 대회를 해 우승자를 가리는 이들의 고충이 이해됐다. 


다음주에 다시해도 이 분위기가 이어질 것으로 기대했다. 좋은 테니스장은 어린 선수들에게 꿈을 심어준다. 그래서 언제하더라도 장충장호코트에서 하면 꿈을 심어준다고 본다.


 
▲ 선수들은 자기의 게임 순서를 기가막히게 잘 알고 있다. 몇번 코트 몇번째 경기인지 안다. 안보는 것 같아도 다 본다. 작은 머리에 세상을 다 담고 있다

 
▲ 코트에 들어간 선수들은 고독하다. 모든 문제를 스스로 풀어야 한다. 문제가 쉬우면 몰라도 문제는 어렵기 마련이고 시험은 힘들다. 벤치에 앉아 물을 마시려는 자세가 예사롭지 않다. 마치 링 위에 들어선 복서같다

 
▲ 운동기능이 뛰어난 어린 학생들이 아카데미나 학교에서 테니스를 잘 배우고 있다

 
▲ 출전 신고때 선수가 직접 하게 하고 선수 가슴에 이름표를 붙여 코트에 입장시켰다

 
▲ 코트에 들어선 아이를 보는 부모는 생각이 많다. 잘 할까. 헤쳐나갈까. 어려움은 없을까. 예외없이 눈은 자식에게 있다. 자식을 사랑하려면 테니스를 시키고 대회에 내보내야 한다. 이기든 지든 모든 모습이 부모의 눈에 들어와 머리에 각인된다. 때론 장하기도 하고 때론 아쉽기도 하고 아이의 모든 것을 단 한게임에서 다 볼 수 있다. 사랑도 깊어진다

 
▲ 장충장호코트 경기장 벤치에 앉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린 선수라 심판대 옆에 자기 의자가 있는데도 잘 몰라 같은 의자에 나란히 앉아있는 재미있는 풍경도 있다. 조금은 거리를 두고 앉아 상대에 대한 배려와 경계심을 갖고 있다. 어린 선수 세계도 자기들만의 룰이 엄연히 있다

 
▲ 이번 서울주니어대회에 출전한 선수들 가운데 프로 선수들 자세가 나오는 경우가 있다. 아카데미와 학교에서 연구하는 지도자 밑에서 잘 배우고 있다. 잘하는 선수는 카메라에 잘 잡히고 사진이 잘 나온다. 페더러와 나달을 그랜드슬램에서 취재하고 나면 버릴 사진이 없다.

 
▲ 진지

 ▲ 심각

   
▲ 시계탑

 
▲ 많이 뛰면 운동화 끈이 풀리기 마련이다. 진행하시는 신현국 아카데미 원장이 선수의 운동화끈을 매어 주고 있다

  

  

  

  

 

 

  

 

 대회를 하나 하기 어렵기 마련이다. 장소 잡고 참가자 모집하고 대회에 필요한 물품 준비하는 등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엄벙덤벙 다 한다. 하다가 빠진 것도 있고 모자란 것도 있기 마련이다. 신기하게도 사람이 일을 하지만 보이지 않는 손이 거들어 일이 진행된다.  사람은 그저 움직이기만 하고 보이지 않는 손이 일을 한다. 대회 한다고 물을 후원한 곳이 있었고 용품, 참가품을 후원한 곳도 있었다. 물론 대회 운영위원들도 십시일반 회비를 냈다.  신기하게도 100명가까이 원근각처에서 선수들이 출전했고 부모님과 지도자 선생님, 진행자 포함 200여명이 장충장호코트에서 북적였다. 마치지 못한 대회지만 기사꺼리는 차고 넘친다


기사=테니스피플 

박원식 기자  사진=황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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