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당이나 점쟁이는 자신을 찾아 온 사람을 한번 척 보기만 해도
살아온 세월들을 줄줄이 꿰어내고 찾아온 이유를 쪽집게처럼 집어낸다는데
이들은 대다수의 고객들이 현재의 고민과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을 가슴에 한아름 안고 와
자신같은 이 방면 전문가에게서 위로와 확신을 얻으려한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오랜 경험이나 빡센 연수?를 통해 들은 秘傳을 활용
외모며 표정, 차림새 등등에서 이런저런 단서를 포착한 다음
혹하는 말로 액댐하려면 굿판을 벌리거나 작은 부적이라도 사야한다며 결국 지갑을 열게 한다고.

지난 글에서 스치듯 한번 본 얼굴을 일년여만에 다시 보고도 기억할 수 있었노라 했지만
여기엔 우리 코트를 찾았다는 장소적 제한과 다시금 우리 코트를 찾았다는 재현성 내지 반복성
그리고 유모차를 끌고라도 낯선 코트를 기웃거리는 건
(늦둥이처럼 안뵈는 어린 아이가 있다는 건 가정을 이룬 지 얼마 안되는 아직 팔팔한 젊은 사람이란)
테니스를 엄청 좋아하는 사람이란 전제가 이미 깔려 있어서
처음 본 사람 알아맞춰야하는 점쟁이보다 내가 한 짐작이 훨씬 쉬운 노릇일게다.

테니스인을 만나리란 기대를 전혀 안하고 있던 의외의 장소에서 맞닥뜨리게 되면
위와는 정반대로 평소 아는 사람도 얼른 못알아보고 지나치거나
낯은 익은데 저분이 누구시더라하게 된다.

구력 일년이 채 되기 전 후배의 소개로 전국대회 파트너로 만나 시합에선 예탈만 거듭했지만
벌써 여러해째 테니스와 인생과 예술(테니스가 主지만)을 논하며
친하게 지내고 있는 판화작가가 전시회를 갖는다고 해서 한달만에 다시 인사동 나들이를 했다.
몇년 전 전시회 갔다가는 거의 납치수준으로 그 부부에게 붙잡혀 광주 영은미술관 입주작가 숙소에
머물면서 다음날 아침 빌린 옷이랑 빌린 테니스화를 양말 몇겹 덧신고 운동화 끈 조여매 신고
인근 코트에 가서 한참 테니스 치다 왔고
그녀가 장흥 토털미술관으로 옮기자 그쪽 미술관은 건성으로 돌아보고
인근 코트를 찾아 반나절에서 종일 사이 분량의 테니스를 쳤으니
민폐 운운하며 낯선 코트 가기를 꺼리게 된 건 극히 최근의 변화인가 보다.
지금 그녀의 남편은 지도자생활을 그만두었지만
가끔 나랑 옛제자인 내 후배를 불러 판화가인 부인과 함께 세워놓고 무료레슨을 해주시곤 했는데
나보고는 유독 내가 우승해서 국화부가 되면 자기 눈에 장을 지지겠다는 말을 공언해
한동안 식인습관같은 야만과 엽기 그리고 소름끼치는 섬뜻한 입맛이 도는 "눈알 장조림 맛보기"가
내 테니스 당면 목표로 설정된 적이 있었다.

그런데 나와 그 후배네 가족이 전시장을 다 둘러보고 나서
작가에게서 지난 전시 때와 작풍이 싹 바뀌게 된 연유를 듣고 있을 때
선물로 난을 들고 들어서는 어떤 여자분이 어디서 본 누구인지 꼭집어내지 못하고 맴맴 돌기만 했다.
한 때 사진한다고 카메라 들었을 때 여성미술계인사들과 제법 교류가 있어
십여년 전 이후 봉인이 풀린 적이 없는 기억을 들쑤시고 있다가 결국 누구냐고 물어보았다.
자기는 국화된 지 얼마안된 아무개인데 개나리 시합에서 봤을 거란다.
아! 테니스 치시는 분이세요?하고 보니 시합장에서 원피스를 자주 입어 눈에 띄던 분이었다.
옆에 선 남자분에겐 야구모자만 씌우면 금방 알아보겠고....

한때 자전거 동호회 사람들은 서로를 킁킁 후각에 의존해 알아보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자전거유니폼은 착붙는 기능성차도르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차림새가 너도나도 비슷비슷해서
(물론 자전거도 그리고 자전거에 부착하는 부품들도 엄청 다양하다고는 하지만)
얼른 못알아 볼 것같아서였는데

테니스동호인을 전혀 다른 상황에서 만나면서 얼른 못알아봤던 며칠 전 일로해서
잊었던 옛 일이 비오는 날 뭉게뭉게 떠올랐다.





[테니스는 어떻게 완성 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