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에 한번 모이는 연말 서클동창회에서 누가 제안을 했지요.
내년에는 각자 이만원 전후의 선물을 준비해서 선물교환을 하자고요.
만나는 때가 성탄즈음이라 다들 좋겠다고 찬성이었어요.
다음해 찰떡같이 약속을 해도 잊고 그냥 왔다가 황급히 나가 아무데서나 아무 걸 사들고 들어오는
무심한 친구가 있는 반면
도저히 이만원이 안되보이는 물건을 들고와서 평소의 쪼잔한 면모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자슥도 있었고,
겉 포장만 봐도 저걸 내가 뽑아야 할텐데하고 물욕이 동하게 하는 선물을 들고 오는 통 큰 녀석도 있었지요.

제가 무슨 직함을 맡게 되서
대회개최를 하게 됐는데
시합참가상품을 뭘로 하느냐로 요즘 밤낮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인 선물 같으면 친한 정도와 상황에 따라
돈 좀 더쓰고 덜쓰고를 제 맘대로 할 수 있지만
공적인 일로 품목을 정하는 일이라
무엇보다 다수를 만족시키면서 소수의 불만을 최소화해야하니까
별로 개성이 없는 무난한 것
받아도 그만이고 참가비보다 적게 돌려받으면 괜히 손해봤다 싶은
뭐 그런 것이겠지요.

과거 아이템들을 살펴봤더니

동부띠끄나 남부띠끄에서 대량구매하는 티셔츠,
이건 거의 모든 사람들이 받을 때 싸구려 티가 난다, 디자인이 촌스럽다,
색깔이나 사이즈가 안맞는다 등등 불평을 한다.
다수의 알뜰한 남자분들은 그래도 일년 열두달 꾸준히 입고 계시지만
여자들은 용도를 변경해 잠옷이나 속옷으로 입는지 코트에서 입은 모습은 한번도 못봤다.

체육용품 (양말 and/or 테니스공)
참가상품으로 공을 받게 되면  
테니스공으로 당장 국을 끓여먹을 것도 아니고
오래놓아둔다고
포도주처럼 빈티지가 되는 것도 아니고
김치처럼 묵은지가 되어 삼겹살이랑 같이 구워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라
김빠져셔 결국에는 못쓰게 되는 걸 뻔히 아는지라
아무리 지독한 코트의 얌체족이라도
생색내면서 모처럼 공을 따게 되서 좋다.
테니스 양말은 땀흡수와 충격흡수라는 두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다른 양말과 달리 바닥부분이 유난히 톡톡하다.
그런데 아직 구멍이 나지 않았다고 알뜰한 마음에 계속 신다보면
토끼 한마리 못잡는 무늬만 테니스 양말인 양말을 신게 된다.
양말따먹기 내기라도 하게되면
사소한 물건에 목숨건 사람마냥
평소보다 엄청난 기량을 발휘하기도 하지만
참가상품으로 주는 양말에 대해선 마다하지는 않지만
대부분은 받아들고 시큰둥해하는 것같다.

곡물류,
먹는 건 버리지 않으니까 다들 챙겨서 받아간다.
식구들 먹는데 유기농 먹거리만 고집하는 사람들은
꺼림직한 농약든 상품을 무겁고 운반이 번거롭다는 핑게를 대면서
선뜻 다른 사람에게 건네주고
받는 사람은 속으로 농약 그까이꺼하면서 기꺼이 받아든다.

주방용품, 세제
어떤 아줌마는 테니스 같이 치는 암웨이 아줌마한테 산 주방용품이
아직 집에 산더미같이 쌓여있는데하면서 주최측의 무성의를 성토하고,
어떤 아저씨는 어떡하면 이 부피 큰 참가상품을 우승상품으로 그럴듯하게
둔갑시켜 집에서 골 나있을 마나님한테 폼나게 진상할까하는 잔머리를 굴린다.

공산품 생필품
가격대가 만원 안팍이면
지하철에서 단돈 삼천원에 살 수 있는 물건이랑
티비 홈쇼핑에서 이만구천구백구십원에 살 수 있는 물건 사이
어딘가에 있는 어중간하고 불필요한 물건이기 십상이다.

그렇다면
뭐가 좋을까? 아니 뭐가 덜 싫을까?
뭘로 해야 욕을 제일 적게 얻어 먹을까?
시간은 자꾸 가는데
번뜩이는 좋은 영감이 떠오르지 않는다.
이제야 알겠다, 회사에 선물담당 부서가 따로 있거나 아예 전문 회사도 있다는 것을.

누가 저좀 도와주세요.





[테니스는 어떻게 완성 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