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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여행 - 킬리만자로를 오르다






새벽 네 시. 


모시의 숙소 YMCA는 더웠다.더 자보려고 뒤척이다 잠을 깨 그대로 포기하고 말았다. 드디어 킬리만자로를 가는 날이다.

아프리카 대륙의 최고봉인 킬리만자로는 스와힐리어로  '빛나는 산' 혹은 '위대한 산'이라는 뜻이다.

원래 킬리만자로는 케냐의 땅이었다.  그 당시 케냐는 아프리카 최고봉인 킬리만자로와 두 번째인 케냐 산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케냐는 영국 여왕이 다스리고 있었고,  탕카니카(지금의 탄자니아)는 그녀의 조카인 독일 황제가 지배를 하고 있었다.

산을 좋아하는 조카는 숙모에게 둘 중 하나만 달라고 졸랐다.  조카를 사랑하는  영국 여왕은 킬리만자로가 탕가니카로 들어가도록 지도에 자를 대고 국경을 그었다.
이로써 아프리카의 왕관 킬리만자로는 조카의 생일선물로 탕카니카에 넘어가 버렸고   케냐와 탄자니아의 국경도 이 일로 결정지어졌다는 책의 내용이 오버랩 되는 아침이었다.

아침 식사를 위해 아래층에 내려오니 환한 아침햇살에 만년설이 품안에 달려들듯 가까이 다가왔다. 좀처럼 킬리만자로의 봉우리를 보기 쉽지 않은데 운이 많다는
웅성거림 들이 있었다. 여기저기서 만년설을 카메라에 담느라고 분주했다.

우리 숙소 YMCA의 아침식사는 빵 두 쪽에 쨈과 버터 그리고 오믈렛이 전부다 뜨거운 우유한잔과 함께.

가볍기 그지없는 식사를 마치고 차에 올라 킬리만자로를 향했다. 모시 시내로부터 40여분 달리니 입구가 나오고 거리엔 차가 멈출 때마다 바나나와 작은 자두를 사라고 차카족들이 달려들었다.

해발 2천고지에서  출발해 2천7백의 만다라 산장에 이르는 산행에 앞서 입산 수속을 밟는 동안 나눠준 점심 도시락을 먹고 각자 우비를 챙겨 천천히 가이드들을 따라 오르기 시작했다.
 

가이드들의 대부분은 차카족(Cagga)인데 그들은 킬리만자로와 모시 부근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로 가이드 없이는 절대 산행을 허락하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는 킬리만자로 입산 비용을 총 100불씩을 냈다. 60불은 입산비 그 외 40불은 일부 가이드비와 점심과 차량대금이라고 한다. 입산비가 우리나라 돈으로 7만원을 훌쩍 넘는다고 생각하니 상당히  비싸다는 느낌이 들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아프리카 대륙 최고봉이며 세계 최대의 휴화산인 킬리만자로는 풍부한 물과 먹이로
수많은 동식물들을 키워온 사바나의 어머니로 아프리카 여행의 빼 놓을 수 없는 진수이기 때문이다.

여행 팀원들 중 일부는 5천8백고지 최정상에 도전하겠다고 미리부터 각오해 4박5일의 일정을 잡고 든든한 포터와 가이드들을 동반하고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신체적인 여건이 허락한 다해서 다 성공하는 것은 아니고 첫째 날씨가 받쳐 주어야 하고 둘째 고산병을 이겨내야만 한다는 설명을 들었다.

최정상에 오르고 나면 성공했다는 증명서를 발급해 준다하니 그만큼 어려운 도전임에 틀림없나 보다.

지나가는 포터,친구가 돈을 주니 너무나 좋아했다.

등반루트는 여러 개가 있지만 우리는 가장 일반적인 마랑구 루트, 즉 코카콜라 루트라고 하는  루트로 오르기로 했다."킬리만자로의 정상 부근에는 말라 얼어붙은 표범의 시체가 하나 있다.
 

그 높은 곳에서 표범은 무엇을 찾고 있었던 것일까…."

헤밍웨이의 소설 <킬리만자로의 눈>에 나오는 구절보다는 조용필이 불러 히트 쳤던 '킬리만자로의 표범'으로 우리에겐 아주 친숙한 산이다.

"짐승의 썩은 고기만을 찾아다니는 산기슭의 하이에나. 나는 하이에나가 아니라 표범이고 싶다. …눈 덮인 킬리만자로의 그 표범이고 싶다. 자고 나면 위대해지고 자고 나면 초라해지는 나는 지금…"

세상살이에 지친 사람들의 방황과 꿈, 희망을 대변하는 듯 한 긴 독백이 이어진
이 곡은 작가 양인자씨가 신춘문예에 낙방하고 자신의 작품이 언젠가 당선되는 날
당선소감으로 미리 쓴 것에 남편인 작곡가 김희갑씨가 곡을 붙여 만든 노래라고 한다.

썩은 고기같은 비교적 쉬운 먹잇감만 찾으려 하는 하이에나처럼 현실의 이익만을 쫓지 많고  삶의 목적과 자신의 꿈을 찾아가야겠다는 이야기로 설사 꿈을 이루지 못한다 해도  정상에서 죽은 표범처럼 끝까지 노력하겠다는 의지를 말한 것이라고 가져와 읽은 책에서는 표현하고 있었다.

이정도의 산행은 식은 죽 먹기라고 큰소리치던 친구의 말대로 편안한 마음으로 오르기 시작했으나 중간 지점부터 쏟아지는 폭우에 당황하여 일행 모두는 우비를 입고 재정비했다.

제일 앞과 제일 뒤에 따라오는 현지인 가이드가 있었으나 많은사연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산개미들이 바지사이로 거침없이 공격하는 바람에  우리들은 갑자기 튀스트를 추듯 온 몸을 틀며 개미 소탕 작전을 하는가하면 습한 기온에 고소증세를 보이기도 했다.

만다라 산장에 오르기까지 중간 중간 완만한 비탈길이 있어여유 있게 등반할 수 있도록 길이 조성되어 있었다.

옆에 자라고 있는 열대 우림의 우거진 나무들의 줄기를 타고 올라가는 이끼들이 치렁치렁 매달려 있어 마치 인디아나 존스 영화 속의 한  장면을 보는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최정상을 향하는 등반 자들의 짐을 지고 올라가는 포터들의 무거운 발걸음을 뒤따라올라 가면서 측은한 생각이 들었던지 친구는 만나는 포터들마다 천 실링, 이천실링을 도네이션 하고 있었다.

막을 수 없는 기부다. 쏟아지는 비를 우비가 막고 있었지만 안에서 솟는 땀방울에
옷은 축축하게 젖어 들어가고 반드시 우비는 필수라고 하던  가이드 말을 듣지 않았다면 중간에서 포기하고 내려와야 할 만큼 빗줄기가 거셌다.

가이드들은 서둘러 오르는 우리들을 향해 뽈래뽈래(천천히)를 외치며 인도했다. 가이드들의 대부분은 차카족(Cagga)인데,  그들은 킬리만자로와 모시 부근에서 살며  킬리만자로의 눈이 녹은 물을 이용하여  이곳에서 커피 농사를 지으며 산 사람들이라고 했다.

정글을 벗어나니 비가 멈추고 환하게 전망이 트이면서 만다라 산장(해발 2700m)이 품안으로 들어왔다. 등반을 시작한 지 얼추 3시간 정도 오른 듯하다.
 

푸른 언덕에 A자형 통나무집들이 줄지어 있었고 새로운 건물을 짓느라어수선한 풍경이었다.

먼저 도착한 일행들은 비에 젖은 옷과 우비를 말리느라 여기저기 울긋불긋 빨래들을 널어놓고 있었다.

날이 흐린 탓인지 아침 일찍 숙소에서 보였던 만년설은 보이지 않았다. 킬리만자로의 만년설은 매년 그 크기가 줄어들어. 지난 80년간 82%가 사라졌다고 한다.
 

이산화탄소의 과다배출로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상이변에 인류의 미래가 위협받고 있다는 실증이다.

잠시 높은 산의 정기를 받으며 몸을 정화시키고 다시 하산을 하기 시작했다. 내려올 때 더욱 더 힘들다더니 종종 헛디뎌 미끄러지기 일쑤였으나 큰 사고 없이 2700고지를 다섯 시간 만에 성공적인 산행을 마쳤다는 것은 아주 보람된 일로 적고 싶다.

킬리만자로 커피가 유명해서 하산한 이후 두리번거렸으나 예약된 버스가 기다리는 바람에 커피를 살 수 있는 형편이 되지 않아 섭섭함으로 남는다. 할 수 없이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가서 더 훨씬 비싼 값으로 살 수밖에 없다.

산을 오르는 힘든 여정 속에서 만난 다양한 생태계의 모습들. 높이 오를수록 점점 큰 나무는 사라지고 가느다란 침엽수만이 앙상하게 서서 찬 기운을 견디며 묵묵히 수행하는 자의 표정으로 서 있던 나무들.

머리와 어깨에 무거운 짐을 지고 오르던 포터들의 뒤를 따르며 인생이란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고 잘 살아야겠다는 절실함이 가슴속 깊은 곳에서 뜨겁게
용솟음치는 것을 깨달았던 산행이었다.

새로운 출발, 새로운 영감이 절실한 사람일수록  좋은 여행의 실루엣이 꼭 필요하다고 하지 않던가. 이번 아프리카 30일 여행이 끝난 뒤 돌아갔을 때 정말 내 인생의 가장 중요한 터닝 포인트가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기도 했다.

킬리만자로에 대한 팁

킬리만자로는 1848년 독일 선교사 레프만(Rebmann)과 크라프(Krapf)에 의해 유럽에 알려졌다. 처음에 유럽 사람들은 적도가 있는 아프리카에 만년설이 있다는 것을 믿지 않았다.

그러나 1889년, 독일 지리학자 한스 마이어(Hans Meyer)와 스트리아 등산가 푸르트쉘러(Purtscheller)가 만년설이 있는 정상까지 등정함으로써 증명이 되었다.
 

마웬지봉은 1912년 독일 지리학자 클루테(Klute)에 의해 처음으로 등정되었다.
킬리만자로로 들어서는 마랑구게이트에는 그들에 대한 기록이 써있는 비석이 있다.

동남쪽으로 길고 넓게 타원형으로 자리 잡은 화산은 서쪽부터 시라봉(Shira, 3962m), 키보봉(Kibo, 5895m), 마웬지봉(Mawenzi, 5149m)의 세봉우리가 있다.
 

그 중 만년설로 덮여 있는 키보봉이 가장 높은데  그 정상을 우후루(Uhuru) 피크라 부른다.

세 개의 봉우리에는 전설이 있다. 옛날에 키보와 마웬지라는 형제가 있었다.  게으른 마웬지는 늘 형인 키보에게 와서 불씨를 빌려달라고 했다.  어느 날 마웬지가 하루에 세 번씩이나 불을 꺼뜨리고 불씨를 빌리러 왔다.
 

화가 난 키보가 마웬지의 머리를 후려쳤다.  그 이유로 지금처럼 마웬지의 정상이 찌그러졌다는 이야기다.

사진=만다라 산장에 있는 찻집

글쓴이 송선순      http://www.parangs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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