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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티나 나브라틸로바(여)

1980년대를 대표하는 여자 테니스 선수를 꼽으라면 역시 크리스 에버트와 마르티나 나브라틸로바일 것이다. 80년대 비욘 보그의 은퇴 이후 존 메켄로, 매츠 빌란더와 이반 랜들, 스테판 에드버그와 보리스 베커가 혼전 양상을 보인 남자 테니스에 반해 여자 테니스는 에버트와 나브라틸로바의 2인 전성시대가 70년대 후반부터 10년동안이나 이어졌고 이는 80년대 후반 풋내기 소녀였던 슈테피 그라프가 등장할 때까지 계속된다. 오늘날에도 모든이들에게 ‘철의 여인’으로 각인되어 있는 나브라틸로바. 힝기스의 어머니도 그녀의 이름을 따서 딸의 이름을 마르티나 힝기스로 지었다는 사실에서 나타나듯 여자 테니스계의 위대한 인물이었던 나브라틸로바. 에버트와 함께 80년대 여자 테니스 무대를 평정하며 왼손으로 ‘힘의 테니스’를 구사했던 그녀를 소개하고자 한다.

마르티나 나브라틸로바(Martina Navratilova, 1956- )
나브라틸로바는 1956년 10월 18일 체코의 수도 프라하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모든 스포츠에 능했던 그녀는 여자로서는 드물게 아이스 하키를 배우기 시작했으며 스키에도 탁월한 감각을 지녔었다. 그녀가 어려서부터 쉽게 테니스를 접할 수 있었던 것은 부모님 덕택이었다. 부모님이 당시 체코슬로바키아의 테니스협회에서 일하고 있었고 그녀의 할머니 또한 1930년대 후반 체코의 국가대표였기 때문이다. 아버지(후에 자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의 지도로 테니스를 배우기 시작했을 때부터 그녀의 천성적인 운동신경은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을 경쟁상대로 만들지 못했다. 그녀는 주로 남자들, 성인들과 연습경기를 하면서 실력을 쌓아갔으며 8세 때 처음으로 국내 주니어 토너먼트에 참가, 준결승까지 진출하게 된다. 그녀의 탁월한 실력은 14세에 국제 토너먼트에서 우승하면서 빛을 발하며 급기야 16세에 이르러서는 성인들을 물리치고 체코 랭킹 1위에 오르게 된다.

그녀가 처음으로 국제적인 관심을 끈 것은 그녀의 나이 만17세를 앞둔 1973년, 오하이오주의 아크론(Akron)에서 였다. 그녀의 첫 해외원정이었던 이 대회에서 처음으로 크리스 에버트를 만나 패하긴 했으나(6:7, 3:6) 이 시점은 앞으로 에버트와의 경쟁시대를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이듬해인 1974년 호주오픈에서는 그랜드슬램의 위업을 달성한 바 있는 마거릿 스미스 코트를 준준결승에서 격침시켜 세계를 놀라게 하기도 하였다. 이 해에는 프랑스오픈 혼합복식에서 우승을 거두기도 한다. 그리고 이듬해인 1975년 호주오픈과 프랑스오픈에서 각각 굴라공과 에버트에게 패해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복식에서 우승(프랑스오픈)을 거두어 단식 메이저 타이틀 획득의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예고하였다. 이미 73년부터 세계랭킹 5위 안에 진입했던 그녀였지만 77년까지는 메이저 대회 단식 타이틀과는 인연이 없었고 처음으로 메이저 대회 단식 타이틀을 거둔 것은 1978년 윔블던 결승에서 였다. 크리스 에버트를 상대로 극적인 역전승(2:6, 6:4, 7:5)을 거두면서 첫 메이저 단식 타이틀을 획득, 이때부터 그녀의 기록적인 우승행진이 계속된다.

그녀가 4대 메이저 대회에서 거둔 업적은 글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대단한 것이기 때문에 다음과 같이 간략하게 소개하고자 한다..

-호주오픈: 단식 3회우승(81, 83, 85) / 복식 8회 우승(80, 82-85, 87-89)
-프랑스오픈: 단식 2회 우승(82, 84) / 복식 7회 우승(75, 82, 84-88) / 혼복 1회 우승(74)
-윔블던: 단식 9회 우승(78, 79, 82-87, 90) / 복식 7회 우승(76, 79, 81-84, 86) / 혼복 3회 우승 (85, 93, 95)
-US오픈: 단식 4회 우승(83-84, 86-87) / 복식 9회 우승(77-78, 80, 83-84, 86-87, 89-90) / 혼복 2회 우승(85, 87)

이처럼 그녀가 메이저 대회에서 거둔 총 18개의 단식 타이틀은 역대 4위에 해당하는 것이지만 윔블던 6연속 우승, 도합 9회 우승이라는 업적은 경이로운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리고 84년에 동료 팸 슈라이버(Pam Shriver)와 함께 거둔 복식 그랜드슬램(51년 프랑크 세그만과 켄 맥그리거에 이어 두번째)도 훌륭한 업적으로 손꼽히고 있다.

아직까지 아무도 그녀의 기록을 넘보지 못하고 있는 것은 바로 생애 통산 타이틀 수이다. 메이저 대회를 포함하여 단식 타이틀만 167개를 기록(2위 크리스 에버트 154개)하였을 뿐 아니라 복식까지 포함(329개)하면 2위인 크리스 에버트(189개)를 여유있게 따돌리고 있다. 이는 남여 통틀어 아직까지 깨어지지 않는 기록으로 남아 있다.
그녀의 위대한 업적은 국가 대항전인 페드컵에서도 잘 나타난다. 1975년 체코슬로바키아의 대표로서 우승을 이끌었고 이후 미국으로 망명(정식으로 미국시민이 된 것은 1981년이다.)하여 미국대표로서 일곱번이나 (76, 79, 81-84, 86) 우승할 때까지 페드컵에서 그녀가 거둔 전적은 단식 20승 무패, 복식 17승 무패였다. 1997년엔 미국대표팀 감독으로서도 페드컵 우승의 영예를 안았다.
그녀는 랭킹부문에서도 빼어난 성적을 기록하여 78-80년과 82-87년까지 연말랭킹 1위 고수, 총 223주 1위라는 대기록을 달성하였다.(후에 슈테피 그라프에 의해 갱신됨)

그녀는 그랜드슬램 달성의 논란에 휘말린 경우도 있었다. 그것은 호주오픈이 당시 12월 말에 열렸기 때문인데 83년 윔블던을 시작으로 US 오픈, 호주오픈, 그리고 다음해 84년 프랑스오픈을 제패하여 <1년 내에 그랜드슬램>을 이룩, 국제 테니스 연맹으로부터 100만 달러의 보너스를 받게 되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자면 83년 프랑스오픈과 84년 말 호주오픈에서는 크리스 에버트가 우승하였기 때문에 국제 테니스계는 나브라틸로바가 <한해 그랜드슬램 달성>에 실패한 것으로 보고 공식적으로 그녀의 그랜드슬램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비록 국제적으로 인정되지는 않았지만 그녀가 여자로서는 모린 코놀리(53년), 마거릿 스미스 코트(70년)에 이어 세번째로 그랜드 슬램을 달성할 뻔한 순간이었다.

총전적 1,428승 212패, 87퍼센트의 승률을 올린 그녀는 1994년 뉴욕에서 열린 WTA 챔피언쉽에서 아르헨티나의 가브리엘라 사바티니(Gabriela Sabatini)에게 패할 때까지 선수생활을 계속했으며 아직도 와일드 카드를 받고 간간히 메이저 무대(복식)에 출전하고 있다. 한때 지미 코너스와 성대결을 벌여 패하기도 하였다. 작년 2000년에 비로소 명예의 전당에 오르게 된 그녀는 그동안 벌어들인 상금수입만 해도 남자의 이반 랜들과 샘프라스를 뛰어 넘는 2천만불 이상을 기록, 스포츠 재벌이 되었으며 현재 미국 콜로라도주 아스펜(Aspen)에서 살면서 왕년의 라이벌 빌리 진 킹, 크리스 에버트와 함께 미국 여자테니스를 위해 헌신하고 있다.

<필자 후기>
-그동안 발표된 <테니스의 전설들>을 다시 한번 훑어보니 간간히 오류(띄어쓰기, 오타 등)들이 발견되고 있군요. 잘못된 기록이나 잘못된 정보가 있다면 새로 알려드리겠지만 저도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서 미세한 부분까지는 손을 대기 힘들다는 생각이 듭니다. 영문/한글 철자법, 띄어쓰기 오류는 발견하는대로 그때그때 수정하겠습니다.
-다음 13회엔 이반 랜들이 발표될 것이고 최종회인 슈테피 그라프를 끝으로 마치겠습니다.


  • T.P™ 2003.10.06 23:37
    여자지만 정말 대단하네요..
    저선수의 실력만 된다면 제 친구들쯤은..
  • KyuYoung Park 2016.03.01 13:10
    그라프도 어릴땐 이분한테 무참히 밀렸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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