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게 87년에 구입한 한일의 보급형 SIGMA-GLF라는 라켓이 있습니다.
초록색(or 청색) 계열의 도색과 투어급 프레임 두께(20mm정도)와 85정도의 헤드 사이즈, 그립 사이즈 4 3/8, 15게이지의 막줄, 스트링은 87년에 매어져 출시된 그대로, 320~330g 정도의 무게에 헤드라이트형 라켓입니다. 집사람이 대학 교양체육을 위해 구입한 것인데, 그동안 처치 곤란의 애물단지였다가, 최근들어 아들(테니스 중독의 아빠를 닮아 라켓이라면 뿅 갑니다)의 장난감 대용으로 활용되어 왔었네요.

며칠전(허리를 다친 주) 클럽 회원의 윌슨 투어90을 쳐본 뒤, 볼집중력을 키울 겸 해서, 빵이 작은 라켓을 쳐보고 싶었습니다. 그렇다고 새 것을 살 수도 없는 노릇이고 해서 집에 굴러다니는 한일 라켓을 가방에 넣고 코트로 향했습니다. 회원들에게 보였더니 웃더군요.
좋은 라켓을 5자루나 가지고 있는데, 오래된 한일 라켓을 들고 설치는 제 모습이 이상했나 봅니다. 오래되었어도 소재는 그라파이트임을 강조했습니다.

난타를 시작으로 라켓 시타에 들어갔습니다.
오우! 첫 느낌이 좋습니다.
작은 빵에도 불구하고, 스윗스팟이 넓어 안정적으로 맞출 수 있었습니다.
실력이 향상된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투어90을 시타할 때는 삑사리의 연속이었기에... 일주일 내내 한일과 투어90을 번갈아 가며 시타했기 때문에 확실합니다.
단순하게 넘길 수만 있었다면 이런 글을 쓰지 않았게죠. 드라이브 감도 좋습니다. 묵직하게 뻗어가며 걸리는 드라이브...현재 사용하는 volkl의 라켓에서 느끼는 묵직함과는 새삼 다릅니다.
헤드라이트형이라 그런지 조작성이 좋습니다. 다소 짧은 볼을 와이퍼 스윙으로 처리, 발밑 근처에 떨어지는 긴 볼도 어렵지 않게 처리할 수 있었습니다. 아울러 라켓의 무게가 있어서인지 상대의 강타에 밀리지도 않고, 타구감도 그다지 불쾌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라이트형의 특성상 헤드상단 쪽에 맞으면 약간의 진동이 손에 전달됩니다. 그래도 투어90보다는 덜 하네요.

슬라이스!
죽이네요. 안정적이면서 지속적으로 느껴지는 슬라이스감을 경험하기란 쉬운 일이 아닌데 가능하게 합니다. 이 라켓으로 슬라이스를 치면서 왠지 실력이 up된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합니다

몸풀기 20분!
게임에 들어갑니다. 순간 망설여집니다. 라켓을 바꿀 것인가.....
volkl로 바꾸지 않고, 바로 인사를 하고 서브를 넣었습니다. 서브에서 파워는 떨어지네요. 느낌이 푈클의 카타풀트10을 가지고 서브를 넣었을 때와 비슷합니다. 대신 첫서브 성공의 빈도수가 높군요. 강한 플랫을 시도하기 보다는 코스로 공략을 합니다. 제 게임을 서브 5개로 지킵니다.

상대의 서브, 강서브가 들어옵니다.
자세를 낮추고 하프 스윙으로 밀어서 리턴!
네트로 달려드는 공격자의 몸쪽으로 강하게 뻗어 갑니다.
역시 조작성이 좋아 리턴을 빠르게, 그리고 비교적 정확하게 컨트롤 할 수 있었습니다(제 실력 한도에서)

전위에 선 저는 무엇을 해야할 지 답답하기만 합니다.
항상 스스로도 느끼고, 주위 분들도 지적하는 부분인데 발리가 너무도 약합니다.
잘 못하는 발리기에 특히나 포발리...그 어떤 라켓을 사용하든 포발리는 황입니다.
그래도 백발리는 그런대로 깔끔하게 처리합니다.
발리만 보강하면 4.0이상의 실력으로 뛸 수 있을텐데...
발리에 있어서 우수성을 평가하기에 실력이 미천하기에 그냥 편하게 된다고만 말하겠습니다.

연속되는 두 게임을 6-3, 6-2로 마무리하면서 승부의 결과를 라켓의 공으로 돌리며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악수를 청하고 들어왔습니다.

저번 주 토요일!
중고시장에 이 라켓을 구한다는 게시물을 올렸습니다.
아무도 리플을 남기지 않더군요. 가지고 있는 사람이 없나 봅니다.
언젠가 옥션에서 천원 경매에 나왔었는데, 너무도 아쉽습니다.
테니스코리아의 벼룩시장을 뒤지다 한자루 발견하여 게시자에게 문자를 날렸지만 연락이 오질 않습니다.
혹시 한일라켓 본사에 물어보면 구할 수 있을까해서 인터넷 검색란에 '한일라켓' '한일스포츠'라 쳐 보았지만 회사(전화번호)에 대한  정보는 구할 수 없네요.
혹시 회사가 폐업했나요?

한일라켓!
제가 대학 다닐 때만 해도 한일라켓으로 많이 쳤었죠. 그리고 선수들도 많이 사용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동네의 작은 샵의 구석진 곳에 먼지에 쌓여 알뜰한 손님을 기다리고 있거나, 옥션에서 헐값으로 초보 동호인들의 선택을 기다리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약간은 씁쓸합니다.

일주일 동안 지속적으로 사용해 본 결과, 정말 좋은 라켓이었습니다.
우리의 기술로 만든, 우리 메이커 한일 라켓!
값비싼 외제 라켓에 자리를 내어 주었지만, 성능면에서 전혀 뒤떨어지지 않음을 알았습니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국산 라켓 만들기'에 열정을 기울이시는 임원규 사장님의 노고는 의미있는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직은 인지도 면에서 '필승'라켓이 떨어지지만, 멀지 않은 장래에 분명 국내 동호인들의 곁에 '필승'이 있을 것임을 확신합니다. 더 나아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라켓으로 세계시장에서도 이름을 떨칠 것을 확신합니다.
임원규 사장님 화이팅!

저는 당분간 아니 라켓의 수명이 다하는 날까지 이 한일 라켓을 사랑할까 합니다.
혹시 전태교 회원님들 중에서 가지고 계시는 분 있으시면 제게 넘겨주세요.
제가 대신 사랑해 주겠습니다.

이상은 구력 11개월의 초보
마음만 로딕의 허접한 시타기 였습니다.





[테니스는 어떻게 완성 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