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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김외출님의 「향기로운 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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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주 중앙일보에 게재된 수필가 김외출의 「향기로운 가정」가보기

 

[원문]

[문예마당] 향기로운 가정

 [LA중앙일보]
김외출 '수필과 비평' 등단
기사입력: 01.13.13 15:53

몇 년 전 미국 아들네에 머물 때 고향 후배가 저녁초대를 했다. 약속 시간에 그녀의 아파트에 도착하자 이게 웬일인가? 귀여운 네 따님이 사열식에 나온 병사들처럼 일렬횡대로 서서 우리를 맞이했다. 나는 남들처럼 떳떳하게 내놓을 명함도 없고 그들에게 도움 준 일도 없는데 이토록 환대하다니 가슴이 뭉클하였다.

요즘 부모들은 자식의 인성이나 윤리 도덕에 관한 가르침은 뒷전이고 학교 성적향상에만 심혈을 기울이고 조부모도 손자에게 기강을 세울 기회조차 잃어 세상이 혼탁해가고 있다. 그런 세태 속이라 후배의 가정교육이 더 돋보였다.

그날은 후배 부군 생신이었다. 정성껏 차린 음식이 입맛을 돋우었다. 식사 후에 딸들이 엄마의 피아노 반주에 맞추어 아버지를 위한 축하 노래를 부른다. 화음을 이룬 감미로운 선율이 집안 가득했다. 그들은 마냥 행복했다.

하지만 11평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6식구가 살기에는 턱없이 좁은 공간이었다. 애들의 침실은 물론 공부방도 없었다. 그런데도 큰 아이는 명문대학(UCLA)에 들어갔고 자매 모두가 중고등학교에서 수석을 놓치지 않는다고 했다. 이 부부의 자식 사랑과 남다른 가정교육 덕택인가 싶어 부러웠다.

저녁 식사 후 설거지를 다투어 서로 하겠다고 자매끼리 승강이를 벌이는 모습은 그들의 우애를 가늠하기에 충분했다. 자매들 몸에서 향기가 배어나는 것만 같았다. 고달픈 이민 생활에서 좌절하지 않고 온갖 고난을 다 이겨 낼 수 있었던 것도 사랑하는 가족의 울타리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어렵게 살아가는 처지에도 후배 내외 얼굴엔 그늘이 보이지 않고 아이들의 표정도 함박꽃과 같이 밝았다. 그들 앞길에 서광이 비치기를 기원했다.

나는 성공한 몇몇 교민댁에 초대받은 적이 있었다. 마치 공원처럼 넓은 정원에 수영장이 딸린 시가 300만 불이 넘는 저택을 가지고 호의호식하는 사람들도 후배 가족만큼 단란하고 행복해 보이지는 않았다. 행복이란 크고 화려한 것보다 작고 소박한 것에서 더 많이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지금 지구 위에서 가장 헐벗고 굶주리고 있는 방글라데시 국민의 행복지수가 뜻밖에도 높다고 한다. 세상이 아무리 물질 만능시대라 하지만 부유함만이 행복은 아닌 듯하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일체유심조(一體唯心造)라는 경구가 떠올랐다.

융숭한 대접을 받고 집으로 오던 중 불현듯 40여 년 전 나의 가난했던 삶이 뇌리를 스쳐 갔다. 70년대 초반 한국은 개발도상국으로 대부분 사람이 애옥살이했다.

그때 내가 분양받은 산 중턱에 있는 13평짜리 시영 아파트는 연료가 연탄이었다. 굴뚝으로 빠져나가야 할 일산화탄소가 역풍이 불면 집안으로 들어와 가스에 취해 머리가 아프고 어지러워 안개 속에서 헤매는 것 같았다. 그래도 내 퇴직금을 보태어 처음으로 마련한 집이라 그 소중함을 뭐라 표현할 수 없었다. 철없는 애들과 셋방살이를 면한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했다.

늦게 낳은 두 애가 잔병치레가 많아 병원 출입이 잦았다. 어느 해 겨울 아이들이 감기에 걸려 영하 16도를 오르내리는 살을 에는 듯한 날씨에 병원에 갔다. 귀가 시 택시를 탔는데 기사가 오는 길이 험하다고 도중에 내려놓고 요금도 받지 않고 그냥 도망가 버렸다. 돌 지난 아기는 업고 네 살짜리 아이는 걸려야만 했다. 조금 후 큰아이가 추위를 못 이겨 보채더니 기침이 심해지면서 콧물과 눈물이 범벅되어 길바닥에 주저앉아 버렸다.

"엄마 추워 업어줘."

생떼를 쓰는 애에게 집에 가서 맛있는 과자를 사준다고 달래어 얼음장이 된 고사리 같은 손을 잡고 눈물을 삼키며 걸었던 그때가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세월이 흘러 그렇게 환경이 열악했던 그 집이 종잣돈이 되어 사계절의 변화가 동양화를 이루는 K시로 이사하게 되었다.

지금 국민 생활이 풍요로워졌다고는 하나 이태 전부터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전세금이 너무 많이 올라 세입자들의 가슴을 아리게 한다. 집 없는 서민들의 설움을 생각하면 내가 이런 동네 사는 것이 때로는 미안하다. 하지만 행복은 반드시 물질로만 가늠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요즘 들어 그 후배 생각이 부쩍 난다. 11평 아파트에서도 만족하고 살아가는 그 화목하고 행복한 분위기가 경기 불황의 늪에 빠져 어려움을 겪는 우리 교민들 가정에도 스며들었으면 한다.

새해에는 세계와 미국 경제가 빠른 속도로 활성화되어 교민들이 고통에서 벗어나 마음이 활짝 개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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