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한솔오픈 본선 1회전 스케치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낙엽이 물드는 올림픽 공원으로
아침을 먹고 가방을 챙겼다. 카메라와 사인 받을 공 두개와 선글라스를 가방에 담았다. 플라타너스 잎이 노란 물이 들기 시작하는 서울 거리를 설레는 가슴을 안고 차를 몰았다. 드디어 올림픽 공원 경기장이다. 남2문에서 주차비 3,500원을 내고 테니스장으로 향한다.
벼룩시장배 챌린저 테니스대회 시절부터 이 무렵이면 관람을 하러 오곤 했었지. 경기를 관전하고 있노라면 가을을 타서 비어있던 내 가슴에 샘물이 고이듯, 살아 있다는 것에 대한 감사와 기쁨이 스며들기도 하였었다.

--경기장 주변은 테니스 왕국
보도 블럭 위를 찬바람이 먼지를 쓸고 다니던 챌린저 대회에 비하면 투어대회인 한솔오픈은 용궁처럼 화려하다. 경기장을 둘러싸고 윌슨, 바볼라, 헤드, 요넥스, 등의 테니스 관련회사들의 선전 부스가 즐비하고, 호텔 롯데에서 낸 스낵코너도 있다. 그 곳의 2000원 짜리 생맥주는 참으로 시원하다. 부스들은 오로지 우리를 융숭히 대접하려고 꾸미고 치장하고 대기하고 있는데 막상 이를 누릴 손님들이 뜸하다.

--미녀들의 잔치
길을 가다가 이따금 단란주점 “미인촌”간판을 보노라면 눈길이 끌리곤 했었다. 어찌 WTA대회의 미녀 선수들을 싸구려 웃음으로 치장한 단란주점의 그녀들에게 비기랴! 동, 서반구의 건강 '미인촌'이 바로 오늘 이곳이다.

--뮤지컬보다 더 감동적인!
13번 코트에서 한성희가 예선 결승 시합을 하고 있다. 상대방은 호주 오픈 주니어 우승자다. 상대방은 생각보다는 공이 순하다. 공격보다는 컨트롤 위주의 플레이어인가 보다. 스트록으로 끈질기게 공을 넘겨 온다. 한성희의 에러가 늘어난다. 결국 2대0으로 졌다.
본선 1회전 경기인 센터코트에서 카스타노는 한 수 위의 스트로크 기량으로 안시치를 6 3, 6 2로 따돌렸다. 카스타노는 사이드로 완전히 빠진 볼을 따라가서 되받아쳐서 그 공이 코트 바깥 공간을 길게 날아와서는 바운스 되는 최종 순간에 코트 구석 한 뼘 언저리에 들어와 박히는 샷을 두 번 다 성공시켰다. 묘기라고 할 만 했다.
이 대회에 참가한 선수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어려서부터 테니스에 인생을 걸고 매진해 오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대여섯 살부터 인생을 걸고 연마해온 스트록, 서브, 발리 기술을 오늘 펼쳐 보이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들의 기술은 부럽기 그지없고 그들의 인생을 건 승부는 절실하고 짜릿하다.
아내와 최근에 본 내노라하는 뮤지컬도 이 테니스 경기의 박진감을 따르지 못한다. 뮤지컬은 아무리 잘해도 쇼일 뿐이지만, 테니스 투어 경기는 실전이고, 진검 승부이다.

--서민들의 천국, 실비 구내식당
예선 결승 구경을 마치니 어느덧 1시 반이 넘었다. 구내식당의 구수한 음식 냄새가 마술피리처럼 나를 유혹한다. 구내식당의 아줌마는 성품이 소박하고 음식도 소박하다. 잔재주를 부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북어 튀김, 싱싱한 배추김치, 김치콩나물국, 무채나물, 깻잎지, 오뎅 볶음을 마음대로 먹어도 4,000원이다. 카페테리아 식이라서 식사량이 많은 나에게 황금어장이다. 2.5인분 분량을 담아 구석자리에 가서 차근차근 음미하고 감사하며 먹었다. 그리고는 공짜 원두커피 한 잔을 손에 들고 다시 코트 순례에 나선다.

--공짜 천국
센터코트 입장티켓은 만원이다. 나머지 부속코트는 공짜이다. 그런데, 현장의 부스에서, 7천원짜리 잡지 “테니스코리아”를 사면 책갈피 안에 할인 티켓이 있고, 이 것으로 센터코트 표를 사면 오천 원이다. 그러면 잡지 ‘테니스코리아“를 단돈 2천원에 사는 셈이다. 경품 추첨도 있다. 공짜가 지천으로 널려 있다. 5년 전 쯤에는 30만 원짜리 삼성카메라를 탄 적도 있고, 원주 근처의 한솔리조트 오크벨리 숙박권을 받아서 아내와 남매를 데리고 가서 1박하고 온 적도 있다.
힝기스의 브로마이드 사진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어 주고 공짜로 현상, 인화까지 해 주는 부스도 있다. 나도 당근 찍었다.

--키릴렌코, 스기야마와 기념사진
여러 대 선수들이 연습을 위해 코트에 나왔다. 그들의 연습이 끝날 때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한 시간 가까이 기다렸다. 사인과 기념촬영을 부탁해 보려는 것이다. 연습이 끝난 때, 많지 않은 팬 속에서 이윽고 스타 선수들이 내 차지가 되었다. “익스큐즈미, 캔 유....”하고 허락을 받아서 키릴렌코와 먼저, 이어서 스기야마와 같이 사진을 찍었다. 세계랭킹 22위, 29위의 선수들과 사진을 같이 찍다니! 운수대통이다.
키릴렌코는 사람 대하는 태도가 딱딱하다. 웃는 모습이 안 보인다. 긴장한 것인지, 컨디션이 안 좋은지, 러시아인 기질인지, 아니면 어려서인지는 모르지만 스타는 그럴 권리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제 19살이니 몸무게가 늘고 이력이 붙으면 메이저 대회 우승도 가능하지 않겠는가. 그의 코치는 미국 사람인 듯 시종 영어로 얘기하였다.
스기야마는 미소가 따뜻해서 보는 사람의 마음까지 밝게 해 준다. 그는 포백 가리지 않고 한 박자 빠르게 라이징 볼을 쳐 댄다. 연습 상대인 한국 남자 대학생이 오히려 타이밍이 늦고 스트록 에러가 많다. 스기야마가 왜 20위 권인지 알겠다. 그는 현재 아시아 여성 테니스의 최강자가 아닌가 싶다.
밝은 빨간색 티셔츠를 입은 일본 선수 나까무라는 좌우샷을 모두 양손으로 처리하는데 어깨를 들이밀어 공을 밀어내니 공이 쭉쭉 밀려 나간다. 스트록 위너가 연신 나온다. 그 스트록을 카피하고 싶다. 눈이 서글서글하고 미소가 앳되어서 귀염성이 있다.

오후 4시다. 오늘 경기 일정은 남아 있지만, 발걸음을 돌린다. 지상이 아닌 어느 항성, 테니스별에서인듯 황홀하던 시간을 접고 일상으로 돌아 가려한다. 가을 한나절이 저물어 가지만 테니스와 우리 인생은 끝없이 이어지기를!





[테니스는 어떻게 완성 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