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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선수중 4대 메이저 무대에서 가장 많은 승리와 역대 최고의 세계랭킹을 수립한 선수는 누구일까.

 

누구나 90년대에 활약한 한국의 대표적 여자선수 박성희를 떠올리겠지만 정답은 ‘아니오’이다. 왜 그럴까…

 

많은 사람들이 한국인의 메이저 대회 우승의 날을 염원하고 있지만 정작 한국테니스의 메이저 대회 출전 기록을 살피는데는 소홀했기 때문이다.

먼저 이 글을 쓰게 된 이유에 대해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아주 우연한 기회에 작년 이형택 선수가 US오픈에서 선전하고 있을 당시의 인터넷기사를 보게 되었습니다.

 

일간스포츠였는데 <(서울=연합뉴스)이승우 기자, 2000년 9월1일 14:23입력>의 글이었습니다. <한국테니스 메이저대회 도전사>라는 제목의 짤막한 기사에서 엄청나게 잘못된 정보가 게시되었더군요.

4대 메이저대회에 모두 출전한 경력이 있는 이덕희 여사님이 1981년 US오픈 한번만 출전한 것으로 되어 있고 88년 호주오픈에 출전했던 김봉수 선수도 89년으로 되어있을 뿐 아니라 박성희 선수의 출전내용도 뒤죽박죽이었습니다.

 

한겨레신문 레져스포츠부의 박원식기자도 2001년 5월 2일 이형택선수에 관한 기사에서 이덕희선수의 16강진출을 1982년이라고 잘못 표기했더군요.

한 두가지의 착오라면 모를까 한국테니스의 메이저대회 출전기록이 이렇게 엉성할지는 저도 몰랐습니다. 한국에서 나오는 다른 관련기사를 열심히 뒤졌지만 제대로 기록된 것을 찾는데 실패했습니다.

 

특히 한국테니스의 전설적 인물인 이덕희씨에 대해서는 테니스 코리아 2001. 5월호의 <이달에 만난 사람-이덕희>이외엔 거의 소개된 기사들이 없음을 알았습니다.

그렇지만 이덕희 선수가 한국최초이자 유일하게 WTA 투어에서 우승한 사실이 있다는 것과 그녀가 전세계랭킹 1위이자 메이저 타이틀 12회에 빛나는 빌리 진 킹(Billie Jean King)을 꺽은 사실이 있다는 것은 그 어디에도 찾을 수 없어 안타까웠습니다.

 

더구나 이덕희 선수의 14회에 이르는 메이저 무대 출전, 그중 24경기에서 10승(부전승 제외)을 올려 역대 한국선수중 메이저 대회 최다경기, 최다승을 이루었던 업적이 역사속에 묻혀져 더더욱 안타깝기만 합니다.

메이저 대회에서 한국선수들이 도약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과감한 투자, 재능있는 주니어의 양성, 테니스 인구의 저변확대, 인식의 변화, 제도적 장치의 마련 등 수많은 요소가 밑받침되어야 하겠지요.

 

이에 못지 않게 중요한 요소는 바로 잊혀졌던 한국테니스의 역사적 기록을 발굴하는 작업일 것입니다. 자라나는 주니어 선수들에게 선배들의 발자취를 거울삼아 세계로 도약할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우어 준다면 우리 한국테니스의 미래 또한 밝을 것입니다.

저는 이 작업이 누군가에 의해 꼭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가까운 일본만해도 자국인들의 메이저대회 출전사가 정확히 정리된 것을 보고 무척 부럽더군요.

 

언젠가 누군가에 의해 총체적인 <한국테니스의 역사>가 쓰여질 수 있는 날을 고대하면서 그 작은 발걸음을 시작하려 합니다.

 

<한국테니스의 4대 메이저 대회 출전의 역사(메이저대회 예선출전은 제외)>는 그 작은 발걸음 중 하나가 될 것입니다. 2002 호주오픈을 앞두고 수행되는 이 작업은 한국선수들이 출전했던 모든 메이저 경기의 상세기록들을 국내 최초로 망라하고 그동안 과소평가되었던 한국선수들의 업적들을 새로이 조명하는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기록들은 주로 국제 테니스연맹의 기록을 참고했음을 알려드립니다.)

1900년대초 한국에 테니스가 처음으로 소개되고 현대적 개념의 론 테니스(Lawn Tennis)가 시작된 것도 약 75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해방후 조선테니스협회가 설립되고 1948년 국제 테니스연맹에 공식 가입한 이후 1953년 조선테니스협회의 후신인 대한테니스협회가 발족되면서부터 비로소 한국테니스의 기틀이 마련되기 시작하였다. 한국테니스가 본격적으로 국제무대에 나서기 시작한 것은 1960년 국가대항전인 데이비스컵에 첫 출전하면서부터이다.

 

그러나 엄격한 의미에서 한국테니스의 해외원정은 30년전인 1970년대 초에 비로소 이루어지게 된다. ‘국제대회의 꽃’이라 할수 있는 4대 메이저대회에 한국테니스가 처음으로 진출한 때도 바로 70년대 초였다.

I. 70년대–한국 테니스의 전설 이덕희, 최초의 메이저 대회 도전


70년대 초에 메이저대회에 첫발을 내딘 인물은 한국여자테니스의 간판이었던 이덕희 선수이다.

 

테니스에 관계하는 많은 이들은 이덕희란 이름을 이미 알고 있겠지만 일반인들은 아마도 작년 이형택선수가 US오픈 16강을 달성했을 때 각종 매체에서 “이덕희 선수이후 두번째”라는 기사, 혹은 <이덕희배 국제 주니어 대회>를 통해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덕희 선수가 만 19살 5개월의 나이로 1972년 12월 26일부터 1973년 1월1일까지 개최된 호주오픈에 -자신의 첫 국제대회(이하 국제대회라 함은 투어급 이상/페드컵을 지칭한다)이자 메이저 대회- 에 출전했다는 사실을 아는 이들은 그리 많지가 않다.

 

한국테니스의 메이저대회 출전의 역사는 여기에서 처음으로 시작되는 것이다.

 

이덕희 선수는 또한 자신의 첫 메이저 대회에서 귀중한 1승을 올려 역사적인 <한국인의 메이저대회 첫승>을 이루게 된다.

 

64드로로 시작된 1회전에서 호주의 팸 휘트크로스(Pam Whytcross)를 6:4, 7:5로 제압하고 2회전에 진출하게 된 이덕희 선수는 2회전 상대 카렌 크란츠케(Karen Krantzcke)를 맞아 선전하지만 3:6, 5:7로 무릎을 꿇게된다.

 

이후 이덕희 선수는 74년 테헤란 아시안게임에서 양정순 선수와 함께 단체전 금메달을 획득하는 등 아시아의 강자로 군림했다.

 

하지만 그녀의 국제대회(투어급 이상)는 수년간 주로 국가대항전인 페드컵(Fed Cup)에 국한되었고 1979년 미국으로 건너가 프로선수로 등록(한국 최초의 프로선수)한 후에서야 비로소 활발한 국제경기를 갖게 된다.

II. 80년대;이덕희, 감격의 16강 달성 /김봉수, 한국남자 첫 메이저 대회 진출


1. 1980년


프로에 입문한 이덕희 선수는 1980년 초반부터 미국의 힐튼헤드(Hilton Head)와 이태리의 페루자(Perugia) 해외원정에 나서 연속 16강에 오르는 등 활약을 보이다가 1980년 5월 26일부터 6월 8일까지 열린 프랑스오픈에 참가하게 된다.

 

64드로로 시작된 프랑스오픈 1회전에서 독일의 클라우디아 코데-킬쉬(Claudia Kohde-Kilsch, 슈테피 그라프와 함께 88년 서울올림픽 복식 동메달을 획득한 선수)를 맞아 6:3, 7:5로 승리, 자신의 두번째 메이저 대회 승리를 기록한 이덕희 선수는 2회전에서 스위스의 페트라 델헤스-야우흐(Petra Delhees-Jauch)에게 완패(1:6, 2:6)하며 메이저대회의 높은 벽을 실감해야 했다.

이덕희 선수는 다음달 열리는 윔블던 대회에도 참가했다. 128드로로 시작된 80년 윔블던은 이덕희 선수에게 1회전 부전승의 행운을 주었으나 2회전에서 미국의 렐레 포루드(Lele Forood)를 넘지 못하고 4:6, 1:6으로 패하며 또다시 주저앉고 말았다.

 

계속해서 이덕희 선수는 약 두달 후 열리는 US오픈에 대비하기 위해서 곧 미국으로 원정을 떠난다. US오픈의 전초전 격인 7월 말 리치몬드(Richmond) 대회 1회전에서 그녀는 한 전설적인 인물을 만나게 된다.

 

이 인물은 메이저대회 18회 우승에 빛나는 철의 여인 나브라틸로바였다. 하지만 갓 프로에 입문한 이덕희 선수가 나브라틸로바를 꺽기엔 역부족이었다.

 

결과는 1:6, 1:6의 완패였다. 1980년 8월 26일 개막된 US오픈. 128드로로 시작된 1회전에서 이덕희 선수는 또 다시 부전승의 행운이 있었지만 2회전에서 미국의 캔디 레이놀즈(Candy Reynolds)에게 3:6, 4:6으로 패하게 된다. 얼마후 WTA 투어 푀닉스(Phoenix) 대회에서 그녀는 만족할만한 성과를 거둔다.

64드로로 시작된 비교적 규모가 큰 이 대회에서 3명의 미국 선수를 차례로 꺽고 준준결승에 오른 것이다. 이때부터 점차로 랭킹이 상승하여 10월 13일에 열린 일본 나고야 대회에서는 국제대회 최초로 시드를(7번시드) 받기도 한다. 1980년 11월 24일.

 

그녀는 또다시 호주오픈에 참가했지만 1회전에서 일본의 사토 나오코(Sato Naoko)를 맞아 2:6, 3:6으로 패하며 한해를 마감하게 된다. 1980년은 이덕희 선수에겐 의미있는 한해였다. 한국인 최초로 4대 메이저 대회에 모두 참가하였기 때문이다.

 

이덕희 선수가 이미 한국의 첫 프로 테니스 선수라는 기록과 72년 12월의 첫 메이저 대회 출전이라는 기록 외에도 80년에 4대 메이저 대회에 모두 진출하는 기록을 세운 것은 바야흐로 한국테니스가 세계무대에서 활약할 날이 머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2. 1981년


4월에 열린 미국의 힐튼헤드 대회. 이덕희 선수는 1회전을 통과하고 2회전에서 테니스의 여왕 크리스 에버트(Chris Evert, 테니스의 전설들 참조)를 만났다. 그러나 전성기의 에버트를 꺽기에는 역부족이었고 결과는 0:6, 0:6의 대패였다.


전년도에 모든 메이저 대회에 출전했던 이덕희 선수는 1981년에는 호주오픈을 제외한 3대메이저 대회에 출전하게 된다.

 

5월의 프랑스오픈 1회전에서는 체코의 마리아 핀테로바에게 1:6, 6:0, 1:6으로 패하게 되지만 2세트의 6:0 세트승은 한국인이 메이저 대회에서 거둔 유일한 퍼펙트 세트승이 되었다.

 

다음달 윔블던에서는 1회전 부전승을 거두고 2회전에서 미국의 로잘린 니드퍼(Rosalyn Nideffer)를 맞아 3:6, 1:6으로 패배, 이덕희 선수의 메이저대회 2회전 징크스가 계속되었다.

그러나 9월 1일 개막된 US오픈에서 이덕희 선수는 한국테니스사에 길이 남을 16강 신화를 창조해낸다. 1회전에서 호주의 수잔 레오(Susan Leo)선수를 6:3, 6:4로 가볍게 일축한 뒤 2회전에서 미국의 수잔 마스카린(Susan Mascarin)선수를 3세트 사투끝에 6:7, 6:4, 7:6으로 제압, 2회전 징크스를 처음으로 떨쳐내고 3회전에 진출하였다.

 

이덕희 선수는 3회전에서도 1978년 프랑스오픈 우승자이자 당시 세계적 선수로 이름날리던 루마니아의 버지니아 루치치(Virginia Ruzici,78년 프랑스오픈 우승자)를 6:1, 4:6, 7:5로 꺽고 대망의 메이저 대회 16강을 달성하며 한국테니스에 금자탑을 세우게 된다.

 

8강의 길목에서 메이저대회 4회우승, 세계랭킹 3위에 빛나는 체코(후에 호주로 국적변경)의 하나 만들리코바(Hana Mandlikova)를 맞아 1:6, 0:6으로 완패당하긴 했으나 그녀의 메이저 대회 16강 달성은 2000년 이형택 선수가 US 오픈 16강에 오를때까지 19년간 한국의 메이저대회 단독 기록으로 남게되었다.

 

이덕희 선수는 계속해서 10월의 토쿄대회와 11월의 홍콩대회에서도 연속 8강에 오르면서 역대 한국인이 작성한 최고의 세계랭킹인 34위를 마크하게 된다.

3. 1982년


전년도에 호주오픈을 제외한 3대 메이저 대회에 출전하고 US오픈 16강에 올랐던 이덕희 선수는 1982년에도 한국테니스의 숙원을 풀게 된다.

 

1982년 1월 미국의 포트 마이어(Fort Myer) 대회에서 4명의 선수를 연달아 꺽고 결승에 진출한 이덕희 선수는 남아공의 이본 베어마크(Yvonne Vermaak) 선수를 6:0, 6:3의 완벽에 가까운 스코어로 제치고 우승트로피를 안게 된다.

 

이는 역대 한국선수중 최초이자 유일한 국제대회(투어급 이상) 우승으로 기록되는 순간이었다.<

 

해설: 필자는 이덕희 선수의 WTA 포트마이어 대회 우승에 대한 기록을 한국의 테니스관련 기사에서 본 일이 없다.

 

다음의 테니스 전문 사이트로 이동하면 WTA 투어 1982년 우승자목록 첫줄에서 이덕희라는 자랑스런 한국인의 이름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 target=_blank>http://tenniscorner.net/archives.php>

이덕희 선수는 프랑스오픈이 시작되기 직전인 4월과 5월에 이르러 다시한번 엄청난 일을 해내고 말았다.

 

4월의 힐튼헤드 대회에서 메이저대회 3회(68 US오픈, 72 호주오픈, 77 윔블던) 우승자이자 전세계랭킹 2위에 빛나는 영국의 버지니아 웨이드(Virginia Wade)를 1회전에서 꺽고 2회전에서도 루마니아의 버지니아 루치치를 꺽으면서 16강에 진출하게 되었던 것이다.

 

메이저대회를 제외하고는 비교적 규모가 컸던 독일오픈 2회전에서도 전 세계랭킹 1위(컴퓨터 집계 이후에는 2위), 메이저대회 12회 우승에 빛나는 빌리 진 킹(Billie Jean King, ‘테니스의 전설들’12편 참조)을 2:6, 6:3, 6:2로 꺽는 파란을 일으켰다.

 

이때는 빌리 진 킹이 노쇠의 경향을 보일 시기였긴 했지만 이는 역대 한국인으로서는 유일하게 (전)세계랭킹 1위에 승리를 거두는 사건으로 남게 되었다. 독일오픈에서 이덕희 선수는 3회전 상대마저 제압하고 8강에 올랐다.

이덕희 선수의 1982년 메이저대회 출전은 프랑스오픈, 윔블던, US오픈에서 이루어진다. 프랑스오픈 1회전에서 부전승을 거둔 그녀는 2회전에서 헝가리의 안드레아 테메스바리(Andrea Temesvari)에게 0:6, 1:6이라는 참담한 패배를 당했다.

 

한달 후 열린 윔블던에서는 영국의 글리니스 콜레스(Glynis Coles)를 맞아 4:6, 6:4, 6:1로 신승을 거두고 2회전에 진출했지만 2회전에서 미국의 안드레아 예거(Andrea Jaeger)에게 6:4, 4:6, 5:7로 분패하였다. 그러나 US오픈에서는 전년도 16강달성에 이어 자신의 두번째 최고성적인 3회전까지 진출하게 된다.

 

1회전에서 호주의 안네 민터(Anne Minter)를 6:3, 4:6, 7:6으로 이기고 2회전에서는 미국의 캔디 레이놀즈(Candy Reynolds)를 6:3, 7:6으로 꺽었던 것이다. 3회전에 진출한 이덕희 선수는 그러나 아쉽게도 미국의 캐티 리날디-스툰켈(Kathy Rinaldi-Stunkel)을 넘지못하고 1:6, 2:6으로 주저앉고 말았다.

4. 1983년


이덕희 선수는 1983년에도 프랑스오픈, 윔블던, US오픈 등 3대 메이저 대회에 참가하였다. 그녀는 5월에 개막된 프랑스오픈 1회전에서 미국의 렐레 포루드(Lele Forood)를 맞아 6:2, 6:4로 가볍게 승리를 거두며 2회전에 진출하였지만 2회전에서 미국의 파울라 스미스(Paula Smith)에 3:6, 6:1, 5:7로 분패하고 말았다.

 

다음달 열린 윔블던에서도 1회전 상대인 체코의 마르첼라 스쿠어스카(Marcella Skuherska)에 6:1, 4:6, 6:4로 승리를 거두지만 2회전에서 미국의 캐티 조단(Kathy Jordan)에게 1:6, 1:6으로 완패하였다.

 

계속해서 이덕희 선수는 81년과 82년에 그녀에게 좋은 성적을 안겨주었던 US 오픈에 참가하게 되지만 이번에는 1회전도 통과하지 못하고(미국의 카트린 커밍스에게 1:6, 6:7 패) 결국 테니스 코트를 떠나게 된다.

 

이때는 그녀의 나이 만 30세였다.

이덕희 선수는 1980년부터 1983년까지 4년간 프로무대에서 활동했다. 좀더 일찍 프로무대에 뛰어들었다면 더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을 거라는 아쉬움이 남지만 당시는 한국테니스의 프로진출이 여의치 않았던 시대였다.

 

그럼에도 이덕희 선수가 한국 테니스의 첫 프로선수로서 한국 테니스계의 세계진출에 포문을 열어 훌륭한 성과를 거두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간과해서는 안된다. 메이저대회 14회 출전에 2회전 이상 진출한 횟수만도 11회에 이르는, 특히 US오픈의 16강달성(81년)과 3회전 진출(82년)이라는 그녀의 업적은 <한국테니스의 4대 메이저 대회 출전사>에 여러 번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스포츠가 그동안 축구와 야구, 농구 등 소위 인기종목 중심으로 활성화 되었던 상황에서 테니스의 이덕희라는 인물이 과소평가되어 왔지만 이젠 그녀의 업적이 반드시 재조명되어야 할 것 같다.

5. 1988년


이덕희 선수의 은퇴 이후 한국테니스의 메이저 대회 출전의 길은 열리지 않았다. 그러다가 1988년 김봉수 선수가 이덕희 이어 한국인으로서는 두번째, 한국 남자 선수로서는 첫번째로 메이저 대회 본선에 참가하는데 성공한다.

 

김봉수 선수는 유진선 선수와 함께 80년대 한국테니스를 주도해왔던 선수로서 한때 한국남자테니스 선수 중 최고랭킹인 세계랭킹 129위를 마크했던 인물이다.

 

그는 88년 1월 11일 개막된 호주오픈에 한국남자 선수로는 처음으로 출전했다. 예선을 어렵게 통과한 김봉수 선수는 1회전에서 같은 아시아권 선수인 인도의 라메쉬 크리쉬난(Ramesh Krishnan)선수를 맞았다. 1세트를 3:6으로 내준 김선수는 2세트를 6:3으로 빼앗으며 역전의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하지만 메이저 첫 무대가 다소 긴장되었는지 3세트를 4:6으로 아깝게 내주고 만다. 세트 1:2로 뒤지던 김봉수 선수는 다시 힘을 발휘하기 시작하여 6:4로 4세트를 마무리지으면서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세트 스코어 2:2. 양선수 모두에게 물러설 수 없는 한판이었다.

 

하지만 마지막 5세트를 맞이한 김봉수 선수는 4세트에서 무리하게 체력을 소진한 탓에 자신의 서비스 게임을 브레이크 당하며 4:6으로 무릎을 꿇게 되었고 이로써 한국남자의 메이저무대 첫승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잘 싸웠으나 정말 아쉬웠던 한판이었다.

 

국제대회(투어급 이상)경력이라곤 주로 데이비스컵 지역예선과 서울 KAL 컵 출전이 전부인 김봉수 선수는 당해에 개최된 서울 올림픽 테니스 경기 2회전에서 프랑스의 세계적인 테니스 선수 앙리 르콩트(Henri Reconte, 88년 프랑스오픈 준우승자)를 꺽고 16강에 오를 정도로 훌륭한 실력을 갖춘 선수였다.

 

김봉수 선수는 93년과 94년 ATP투어 토쿄대회에서도 각각 패트릭 래프터(Patrick Rafter)와 리차드 크라이첵(Richard Krajicek)을 맞아 패하긴 했으나 한국선수들이 세계적 선수들을 상대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III. 90년대- 새바람을 일으킨 박성희/ 윤용일과 박성희의 메이저대회 동반 진출

88년 김봉수 선수가 호주오픈 본선에 출전한 이후 약 7년동안은 한국선수들의 메이저 무대 진출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박성희라는 재능있는 여자선수의 혜성과도 같은 등장으로 한국테니스의 메이저무대 진출에 청신호가 켜졌다.

 

<참고: 사실 80년대에 이미 미국국적의 한국인 그레이스 킴(Grace Kim)이 호주오픈을 제외한 3대 메이저 대회에서 10회의 출전을 기록하였고 US오픈에서 두번(83, 85)이나 3회전에 진출한 성과가 있었으나 그녀의 국적이 미국이므로 여기서는 제외하기로 한다.

 

현재 활동하고 있는 미국국적의 한국인 케빈 킴(Kevin Kim, US오픈 3회-96, 99, 00-진출)과 알렉스 킴(Alex Kim, US오픈 1회-00-진출)도 같은 이유로 제외하고자 한다.>

1. 1995년


1975년생인 박성희 선수는 그녀의 나이 만18세인 1994년 초 WTA투어 오사카대회에서 예선통과자로서 8강에 진출, 준준결승에서 97년 프랑스오픈 우승자인 크로아티아의 이바 마욜리(Iva Majoli)에게 잘싸우고도(5:7, 7:6, 2:6) 아쉽게 패하였다.

 

이때부터 그녀는 국제무대 가능성을 인정받게 되었으며 94년말 인도네시아의 수라바야(Surabaya)투어에서는 이태리의 리타 그란데(R. Grande), 대만의 왕시팅(Wang Shi Ting),독일의 페트라 베게로프(P. Begerow)를 차례로 꺽고 준결승에 진출-준결승에서 일본의 스기야마 선수에게 세트 2:1로 패함.-하는 등 메이저 무대에서 활약할 날이 머지 않았음을 예고하였다.

그녀는 다음해인 1995년 생애 처음으로 메이저무대에 도전하게 된다.

 

1월 16일 개최된 호주오픈에 자동출전하게 된 박성희 선수는 1회전에서 한때 세계랭킹 12위를 기록한 바 있는 조지아공화국의 레일라 메스키(Leila Meskhi)를 맞아 첫세트를 0:6으로 내주지만 2, 3세트를 연달아 7:6, 6:2로 꺽는 이변을 연출해낸다.

 

1983년 이덕희 선수가 윔블던 1회전에서 승리한 이후 12년만에 일구어낸 메이저 대회 승리였던 것이다.

 

그러나 2회전에 진출한 박성희 선수는 미국의 마리안느 베어델-비트마이어(Marianne Werdel-Witmeyer) 선수에게 5:7, 3:6으로 패하여 자신의 메이저 첫무대에서 2회전 진출에 만족해야 했다.

이후 박성희 선수는 프랑스오픈과 윔블던, US오픈에 연달아 출전하면서 80년 이덕희 선수 이후 한국선수로는 두번째로 한해에 모든 메이저 대회에 출전하게 된다.

 

5월의 프랑스오픈에 출전하게 된 박성희 선수는 ‘클레이 코트의 여우’라고 불리우는 스페인의 세계적 스타 아란차 산체스 비카리오(Arantxa Sanchez-Vicario)를 1회전에서 만나 1:6, 0:6으로 완패하며 1회전 탈락하고 말았다.

 

다음달 열린 윔블던에도 참가한 박성희 선수는 1회전에서 프랑스의 알렉산드라 퓌세(Alexandra Fusai)선수를 6:1, 6:4로 가볍게 꺽고 2회전에 진출하게 되지만 2회전에서 93년 프랑스오픈 준우승자인 미국의 마리조 페르난데스(Mary Joe Fernandez)에게 4:6, 0:6으로 패하며 메이저 대회 2회전의 높은 벽을 실감해야 했다.

 

8월의 US오픈 1회전에서는 이미 호주오픈 2회전에서 만나 패한 바 있는 미국의 마리안느 베어델-비트마이어(Marianne Werdel-Witmeyer)에게 또 다시 5:7, 6:7로 석패하고 다음해를 기약하게 된다.


US오픈 이후 벌어진 WTA 도쿄대회에서 박성희 선수는 역대 최고의 일본 선수인 다테 기미코를 세트 2:1로 꺽고 8강에 오르는 파란을 일으키기도 한다.

2. 1996년


박성희 선수는 1996년에도 4대 메이저 대회에 모두 출전하게 되어 한국인으로서는 유일하게 <2년간 연속 4대 메이저 대회 출전>이라는 기록을 세우게 된다.

 

1월의 호주오픈 1회전에서 베네주엘라의 마리아 알렉산드라 벤토 캅치(Maria Alejandra Vento-Kabchi)를 6:7, 6:4, 6:4로 어렵게 이긴 박성희 선수는 2회전에서 오스트리아의 바바라 쉐트(Babara Schett)에게 4:6, 3:6으로 패하였고 5월의 프랑스오픈 1회전에서는 일본의 엔도 마나(Endo Mana)선수를 맞아 5:7, 6:1, 6:3의 역전승을 거두고 2회전에 진출하였지만 2회전에서 미국의 거물급 선수인 린지 데이븐포트(Linsay Davenport)를 넘지 못하고 1:6, 2:6으로 주저앉고 말았다.

다음달의 윔블던에서도 1회전상대인 슬로바키아의 라드카 츠루바코바(Radka Zrubakova)를 6:2, 6:2로 가볍게 꺽으며 좋은 출발을 보였으나 2회전에서 아미 프라찌어(Amy Frazier) 선수에게 4:6, 1:6으로 패하고 말았다.

 

8월의 US오픈에서 박성희 선수는 미국의 린다 와일드(Linda Wild)선수를 넘지못하고 1회전에서 탈락(2:6, 3:6)하였지만 한해 4대 메이저대회 모두 출전, 그중 3대 메이저 대회에서 2회전 진출이라는 성과를 거두었다.

3. 1997년


박성희 선수는 97년에 두개의 메이저 대회에 출전하게 되었다. 호주오픈과 프랑스오픈에만 출전하게 된 박성희 선수는 전년도의 성과에 미치지 못하고 두개의 대회에서 모두 1회전 탈락하게 된다.

 

호주오픈 1회전에서는 네덜란드의 브렌다 슐츠-맥카티(Brenda Schulz-McCarthy)에게 2:6, 6:2, 2:6으로 패하였고 프랑스오픈 1회전에서는 프랑스의 산드린 테스투(Sandrin Testud)선수에게 0:6, 4:6으로 완패하였다. 비록 그녀가 출전한 2개의 메이저 대회에서 모두 1회전 탈락하였지만 박성희 선수는 점차 국제적 선수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하게 되었다.

4. 1998년


97년 두개의 메이저 대회에 출전했던 박성희 선수는 98년에는 95, 96년에 이어 세번째로 모든 메이저 대회에 출전하게 되었다. 그러나 호주오픈과 윔블던에서는 1회전 탈락이 계속되었고 프랑스 오픈과 US오픈에서만 각각 1승씩 거두어 그다지 큰 성과는 보여주지 못했다.

 

호주오픈 1회전에서는 카나다의 소냐 제야셀란(Sonyaseelan)에게 7:6, 1:6, 5:7로 분패하였고 프랑스오픈에서는 1회전 상대인 이태리의 프란체스카 루비아니(Franceska Lubiani)를 맞아 첫세트를 5:7로 내주었으나 2, 3세트를 내리 6:1, 6:2로 따내며 2회전에 진출하였다. 2회전에서는 아르헨티나의 마리아나 디아즈-올리바에게 2:6, 2:6으로 패하여 박성희의 2회전 징크스가 계속되었다.

 

이어서 6월의 윔블던 1회전에서는 프랑스의 줄리 알라-데뀌지(Julie Halard-Decugis)선수에게 2:6, 4:6의 패배를 당하였다.

8월의 US오픈에서는 한국테니스 사상 처음으로 두명의 한국인이 동반 출전하는 쾌거를 이루게 된다. 이미 자동으로 출전이 확정된 박성희 선수와 더불어 윤용일 선수가 예선을 통과하여 김봉수 선수 이후 10년만에 한국 남자선수의 두번째 본선진출을 달성하게 된 것이다.

 

윤용일 선수는 이형택 선수와 더불어 한국 남자테니스의 대들보였지만 데이비스컵 지역예선과 아시아권의 대회 이외에는 투어급 대회 경험이 거의 없었다.

 

윤용일 선수는 생애 처음 출전한 US오픈 1회전에서 미국의 조나단 스타크(Jonadan Stark)선수를 맞아 분전했으나 2:6, 4:6, 4:6으로 패하였고 박성희 선수는 1회전에서 체코의 렌카 네메치코바 선수에게 세트 2:1의 승리(1:6, 6:3, 6:4)를 거두고 2회전에 진출하였으나 프랑스의 나탈리 드시(Nathalie Dechy)에게 2:6, 4:6으로 발목을 잡혀 3회전 진출의 꿈을 접어야 했다.

 

98년 한국테니스의 메이저 대회 성과는 박성희 선수의 2승이었지만 처음으로 한국남녀 테니스 선수들이 메이저 대회에 동반으로 진출한 의미있는 해로 기록되기도 하였다.

5. 1999년


99년은 박성희 선수가 1월의 호주오픈에 진출한 것이 전부였다. 1회전에서 슬로바키아의 카리나 합수도바(Karina Habsudova)에게 0:6, 7:5, 1:6로 패하며 박성희 선수의 메이저 대회 출전은 막을 내렸다. 박성희 선수의 메이저 대회 성적을 종합하면 메이저 대회 15회 출전, 20전 6승 14패의 성적으로 이덕희 선수(24경기, 10승 14패)에 이어 한국선수중 역대 2위의 메이저대회 다승을 기록하였다.

 

박성희 선수는 최고 세계랭킹도 57위를 기록하여 이 역시 이덕희 선수(34위)에 이어 현재까지 역대 2위의 기록으로 남게 되었다

IV. 2000년대- 이형택의 16강 달성/ 윤용일, 조윤정의 선전

1. 2000년


2000년에 메이저 무대에 진출한 한국선수는 이형택 선수가 유일하였다. 한국 남자 선수로는 김봉수, 윤용일에 이어 세번째로 메이저 무대에 진출하게 된 이형택 선수는 생애 처음으로 US오픈 본선에 참가, 한국 테니스사에 커다란 획을 긋는 하나의 사건을 만들어 낸다.

 

지금껏 한국남자 선수들이 메이저 대회 본선에서 단 1승도 이루지 못했지만 이형택 선수는 예선전을 통해 피로한 몸을 이끌고도 3명의 세계적 선수들을 연파하며 메이저 대회 16강 달성, 한국 남자선수로서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운 것이다. 한국선수의 메이저대회 16강 달성은 이덕희 선수 이후 두번째이며 남자선수로는 처음이었다.

이형택 선수는 US오픈 본선 1회전에서 미국의 제프 타랑고(Jeff Tarango)와 맞붙었다. 경기 전부터 이형택 선수의 조심스러운 승리가 예상되었지만 상대는 당시의 이형택 선수보다 랭킹이 훨씬 앞선 80위권대였고 오랫동안 복식의 강자로 활약했던 선수였기 때문에 이형택 선수의 낙승을 점칠 수는 없었다.

 

또한 한국남자선수가 그동안 메이저 무대에서 한번도 승리를 거둔 바가 없었기 때문에 이형택 선수로서는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첫세트를 6:3으로 선취한 이형택 선수는 두번째 세트를 3:6으로 내주고 다시 3세트를 6:3으로 따내며 승리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이제 한세트만 따내면 한국남자로서는 메이저무대 첫승으로 기록되는 것이었다.

4세트에 들어선 두 선수는 6:6의 한치의 양보도 없는 공방을 펼치다가 타이브레이크에 돌입하였으나 타이브레이크 또한 6:6까지 계속되었다.

 

4세트를 내주게 되면 경험면에서 월등히 앞서있던 타랑고가 5세트를 마무리할 확률이 높았으므로 이형택 선수는 4세트 타이브레이크에서 승부수를 던졌다. 타이브레이크 결과는 8:6. 이형택 선수는 이로써 4세트를 7:6으로 마무리하며 한국남자테니스의 숙원이었던 메이저 무대 첫승을 달성하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이형택 선수의 반란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2회전 상대가 세계랭킹 11위의 강호이자 대회 시드 11번인 아르헨티나의 프랑코 스퀴야리(Franco Squillari)였기 때문에 한국팬들은 패하더라도 선전만 기대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예상밖으로 작용했다.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이형택의 7:6, 7:5, 6:2 승리였기 때문이다. 당시 US오픈을 취재하던 세계의 각국 기자들은 세트 3:0으로 끝난 이형택의 2회전 승리를 대회 최대의 이변으로 꼽았으며 이형택을 인터뷰하기 위해 하나둘씩 기자회견장으로 모여들기도 하였다.

이형택 선수의 3회전 상대는 독일의 라이너 쉬틀러(Rainer Schuettler)였다. 쉬틀러 또한 세계랭킹 50, 60위권 선수였기 때문에 이형택 선수의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운 상태였다.

 

그러나 이형택 선수는 다시한번 기적을 일구어 내며 6:2, 3:6, 6:4, 6:4로 경기를 이끌어 국내선수로는 이덕희 선수에 이어 두번째, 남자선수로는 처음으로 16강을 달성하게 된다.

 

이형택 선수의 네번째 상대는 설명이 필요없는 미국의 피트 샘프라스(Pete Sampras)였다. 국내 팬들은 계속된 기적을 바라기 보다는 13회의 메이저 타이틀 기록을 가지고 있는 샘프라스를 상대로 이형택 선수가 얼마나 선전할 수 있는가에 관심이 모아졌다.

더 이상의 기적은 없었지만 결과(6:7, 2:6, 4:6)에서 보듯이 첫세트를 대등하게 펼쳐 한국선수들이 톱랭커를 상대로도 해 볼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여주었다. 이형택 선수는 US오픈 이후 랭킹이 급상승하여 당시 김봉수 선수가 가지고 있었던 한국 남자테니스 선수의 최고랭킹(129위) 기록을 돌파하였고 이후에도 선전을 거듭하여 100위권 내로 진입, 세계적 선수로 부상하게 되었다.

2. 2001년


2001년은 한국테니스 선수들이 비록 한번의 승리도 기록하지 못한 해였지만 메이저 무대 동반 진출이 돋보였던 해였다. 6월의 윔블던에서 이형택 선수와 윤용일 선수가 나란히 본선에 진출하였고 US오픈에서는 이형택 선수와 조윤정 선수가 동반으로 출전하였다.

 

전년도 US오픈 16강 달성과 영국 브링턴의 삼성오픈에서 4강에 진출하며 랭킹이 급상승한 이형택 선수는 호주오픈에 자동출전하게 되었고 1회전에서 에콰도르의 니콜라스 라펜티(Nicolas Lapentti)와 마주쳤다. 라펜티는 한때 세계랭킹이 10위권 안에 들었을 정도의 상위랭커였고 이형택 선수가 2000년 홍콩대회에서 라펜티와 한차례 만나 패한 바 있었다.

 

이형택의 호주오픈 1회전 경기는 5세트까지 이어졌고 결과는 6:3, 4:6, 4:6, 6:3, 6:8의 분패, 결국 전년도 US오픈의 16강 신화를 재현하려는 이형택 선수의 1회전 탈락으로 끝났다.

호주오픈 이후 이형택 선수는 세계의 유명선수들과 여러 차례 만났다. 미국의 산호세(San Jose)에서 안드레 애거시와 경기(5:7, 6:3, 3:6 패배)를 가졌고 아틀란타 대회에서는 마이클 창을 꺽기도 하였다. 미국 휴스턴의 클레이코트 챔피언쉽에서는 한국남자선수로는 처음으로 투어대회 준우승이라는 성과를 거두기도 하였다.

 

5월의 프랑스오픈에 입성한 이형택 선수는 1회전 상대로 러시아의 전세계랭킹 1위 예프게니 카펠니코프(Yevgeny Kafelnikow)를 맞았으나 경기를 치르기도 전에 연습중 입은 부상이 악화되어 기권하였다. 이에 따라 이형택 선수의 프랑스오픈 출전은 공식기록되지 않았다.

 

다음달에는 98년 US오픈에 윤용일, 박성희 선수가 동반 진출한 이후 두번째로 두명의 한국선수가 윔블던 본선에 진출하였다. 예선을 거친 윤용일 선수와 자동출전한 이형택 선수는 각각 러시아의 예프게니 카펠니코프와 독일의 다비드 프리노질(David Prinosil)을 1회전에서 만났으나 윤용일 선수는 4:6, 2:6, 4:6으로 패하였고 이형택 선수도 7:6, 2:6, 4:6, 4:6으로 역전패 하였다.

 

두명의 한국선수가 패하기는 하였으나 비교적 선전한 경기로 평가되고 있다.

8월에 열린 US오픈에서도 윔블던에 이어 두명의 한국선수가 본선진출을 이루어 냈다. 이미 최고랭킹을 60위로 끌어올린 이형택 선수는 자동출전하였고 예선을 거친 조윤정 선수의 첫 본선진출이 돋보였다.

 

US오픈 1회전에서 프랑스의 니콜라 에스뀌드(Nicolas Escude)를 상대한 이형택 선수는 2:6, 1:6, 2:6으로 완패하였고 조윤정 선수는 러시아의 기대주 엘레나 데멘티에바(Elena Dementieva)를 상대로 3:6, 5:7로 패하긴 하였으나 상대적으로 적은 범실을 기록하는 등 선전한 경기로 평가되고 있다.

2002 호주오픈에는 이미 조윤정 선수가 와일드카드를 부여받아 출전을 확보해놓은 상태여서 한국선수의 메이저 무대 활약은 95년이후 매년 1회 이상 지속되고 있다. 이제 한국테니스는 끊임없는 메이저 대회 진출로 그 위상이 드높아져가고 있으며 언젠가 메이저 무대에서 우승하는 그날까지 세계무대의 도전은 계속될 것이다. <끝>

<필자 후기>


2002년 호주오픈을 앞두고 한국테니스의 역사 발굴작업의 일환으로 국내최초로 시도된 <한국테니스 4대 메이저대회 출전사>를 드디어 마칩니다.

 

이는 한국테니스 관계기관의 요청에 의해서도 아니고 순수하게 개인적으로 수행한 작업입니다. 정보의 공유라는 차원에서 시작한 것이니만큼 위의 글이 상업적으로 이용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저자명과 출처를 밝히신다면 따로 필자의 동의 없이 전문을 게재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에서는 부록으로 한국테니스의 메이저대회 각종 기록들이 선보일 예정이며 미국국적 한국인들의 경기결과도 따로 수록하겠습니다. 아무쪼록 한국테니스사에 관심있는 분들에게 작으마나 도움이 되었기를 바라며 얼마 후 열리게 될 2002 호주오픈에서 한국선수이 선전하여 이글에 새로 추가되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부록>-한국테니스의 메이저 대회 각종 기록들(2002년 1월 1일 기준)

I. 종합기록


-출전횟수: 총37회(호주오픈 9회, 프랑스오픈 8회, 윔블던 9회, US오픈 11회)


-경기수: 총57경기(호주오픈 12경기, 프랑스오픈 12경기, 윔블던 13경기, US오픈 20경기)


-승리횟수: 총20승(호주오픈 3승, 프랑스오픈 4승, 윔블던 4승, US오픈 9승)


-승률: 35%(호주오픈 25%, 프랑스오픈 33%, 윔블던 31%, US오픈 45%)

II. 개인별 기록


-대회 출전횟수:


1. 박성희 15회 출전(호주오픈 5회, 프랑스 오픈 4회, 윔블던 3회, US오픈 3회)


2. 이덕희 14회 출전(호주오픈 2회, 프랑스 오픈 4회, 윔블던 4회, US오픈 4회)


3. 이형택 4회 출전(호주오픈 1회, 윔블던 1회, US오픈 2회)


4. 윤용일 2회 출전(윔블던 1회, US오픈 1회)


5. 김봉수 1회 출전(호주오픈 1회)


5. 조윤정 1회 출전(US오픈 1회)

-전적 순위
1. 이덕희 24전 10승 14패
2. 박성희 22전 7승 15패
3. 이형택 7전 3승 4패
4. 윤용일 2전 2패
5. 김봉수, 조윤정 각각 1전 1패

-경기수 대비 승률
1. 이형택 43%
2. 이덕희 42%
3. 박성희 32%
4. 윤용일, 김봉수, 조윤정 0%

-성적별 기록


*16강-이덕희(81 US 오픈), 이형택(2000 US오픈)


*3회전 진출-이덕희(82 US오픈)


*2회전 진출-이덕희 9회(72년 12월 호주오픈/80, 82, 83 프랑스오픈/80, 81, 82, 83 윔블던/80 US오픈), 박성희 7회(95, 96 호주오픈/ 96, 98 프랑스오픈/95, 96 윔블던/98 US오픈)


*1회전 탈락-김봉수, 윤용일, 조윤정

-한해 4대메이저 대회 전출장 기록


1. 박성희 3회(1995, 1996, 1998년)


2. 이덕희 1회(1980년)

III. 메이저대회 출전 한국선수의 역대 메이저대회 우승자 상대 전적 기록


(ATP/WTA 투어, Davis/Fed 컵 포함, 챌린저급이하 제외)

1. 이덕희(16전 7승 9패)


-1977년 6월 Fed Cup-상대 버지니아 웨이드(1:6, 0:6)패


-1980년 7월 WTA 리치몬드 대회-상대 나브라틸로바(1:6, 1:6)패


-1980년 8월 WTA US 클레이 코트-상대 버지니아 루치치(0:6, 7:5, 6:8)패


-1981년 4월 WTA 힐튼헤드 대회-상대 크리스 에버트(0:6, 0:6)패


-1981년 4월 WTA 아멜리아 아일랜드 대회-상대 나브라틸로바(0:6, 1:6)패


-1981년 8월 WTA 카나다 오픈-상대 버지니아 루치치(6:2, 2:6, 6:3)승


-1981년 8월 WTA 카나다 오픈-상대 나브라틸로바(3:6, 1:6)패


-1981년 9월 US오픈-상대 버지니아 루치치(6:1, 4:6, 7:5)승


-1981년 9월 US오픈-상대 하나 만들리코바(1:6, 0:6)패


-1981년 11월 Fed Cup-상대 크리스 에버트(1:6, 3:6)패


-1982년 4월 WTA 힐튼헤드 대회-버지니아 웨이드(4:6, 6:4, 6:2)승


-1982년 4월 WTA 힐튼헤드 대회-버지니아 루치치(7:5, 4:6, 6:4)승


-1982년 5월 WTA 독일오픈-상대 빌리진 킹(2:6, 6:3, 6:2)승


-1982년 5월 WTA 루가노 대회-상대 버지니아 웨이드(6:1, 7:6)승


-1982년 5월 WTA 루가노 대회-상대 버지니아 루치치(2:6, 4:6)승


-1982년 10월 WTA 템파 대회-상대 크리스 에버트(0:6, 0:6)패

2. 김봉수(2전 2패)


-1993년 10월 ATP 도쿄 대회-상대 패트릭 래프터(4:6, 4:6)패
-1994년 11월 ATP 도쿄 대회-상대 리차드 크라이첵(4:6, 2:6)패

3. 박성희(6전 6패)


-1992년 7월 Fed Cup-상대 야나 노보트나(6:4, 2:6, 3:6)패
-1994년 2월 WTA 오사카 대회-상대 이바 마욜리(5:7, 7:6, 2:6)패
-1994년 7월 Fed Cup-상대 마리 피에르스(3:6, 1:6)패
-1995년 5월 프랑스오픈-상대 아란차 산체스 비카리오(1:6, 0:6)패
-1996년 5월 프랑스오픈-상대 린지 데이븐포트(1:6, 2:6)패
-1996년 9월 WTA 토쿄 대회-상대 마리 피에르스(5:7, 2:6)패

4. 윤용일(2전 2패)


-1995년 4월 ATP 홍콩 대회-상대 짐 쿠리어(2:6, 4:6)패
-2001년 6월 윔블던-상대 예프게니 카펠니코프(4:6, 2:6, 4:6)패

5. 이형택(4전 2승 2패)
-2000년 8월 US오픈-상대 피트 샘프라스(6:7, 2:6, 4:6)패
-2000년 11월 ATP 브라이턴(삼성오픈)대회-상대 고란 이바니세비치(7:5, 6:7, 3:1)기권승
-2001년 2월 ATP 산호세 대회-상대 안드레 애거시(5:7, 6:3, 3:6)패
-2001년 4월 ATP 아틀란타 대회-상대 마이클 창(6:4, 7:6)승

6. 조윤정(1전 1패)


-2001년 10월 WTA 일본오픈-상대 모니카 셀레스(2:6, 3:6)패

IV. 미국국적의 한국인 메이저대회 경기결과


1. 그레이스 킴(Grace Kim)-메이저 대회 10회 참가


-1983년 US오픈 3회전 상대 실비아 하니카(3:6, 0:6)-결과 3회전 진출


-1984년 윔블던 2회전 상대 바바라 포터(3:6, 0:6)-결과 2회전 진출


-1984년 US오픈 2회전 상대 웬디 턴불(4:6, 6:3, 2:6)-결과 2회전 진출


-1985년 프랑스오픈 2회전 상대 슈테피 그라프(0:6, 4:6)- 결과 2회전 진출


-1985년 윔블던 1회전 상대 안네 홉스(4:6, 2:6)-결과 1회전 탈락


-1985년 US오픈 3회전 상대 크리스 에버트(0:6, 2:6)-결과 3회전 진출


-1986년 프랑스오픈 1회전상대 카타리나 린크비스트(2:6, 1:6)-결과 1회전 탈락


-1987년 프랑스오픈 1회전상대 페트라 후버(5:7, 5:7)-결과 1회전 탈락


-1987년 윔블던 1회전상대 라우라 골라싸(4:6, 1:6)-결과 1회전 탈락


-1987년 US오픈 1회전상대 이본나 쿠치진스카(4:6, 1:6)-결과 1회전 탈락

2. 케빈 킴(Kevin Kim)-메이저 대회 3회 참가


-1996년 US오픈 1회전 상대 데이빗 휘튼(3:6, 2:6, 3:6)-결과 1회전 탈락


-1999년 US오픈 1회전 상대 페르난도 멜리게니(3:6, 5:7, 1:6)-결과 1회전 탈락


-2000년 US오픈 1회전 상대 세바스티앙 그로장(3:6, 2:6, 4:6)-결과 1회전 탈락

3. 알렉스 킴(Alex Kim)-메이저 대회 1회 참가
-2000년 US오픈 1회전 상대 안드레 애거시(4:6, 2:6, 0:6)-결과: 1회전 탈락

 

박일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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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비발디 스키장 / 박종희 작

    비발디 스키장 ~ 박종희 눈 덮인 하얀 비탈에 혼을 적시는 길을 낸다. 2010년의 달력을 떼어내고 2011년의 달력을 걸고 지칠 줄 모르는 활강의 짜릿함 사람들은 왜 모르나 가르치고, 타는 재미에 빠져 진종일 스키를 애무하지 곳곳에 도사린 위험 처참한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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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72세의 대보름

    72세의 대보름 ~ 박종희 (영상:꽃비세상) 산을 박차고 일어선 달빛 빛으로 내게 다가서네. 기다리지 않아도 약속이니까 매해 때맞춰 오시는 손님 내 소원은 가슴 깊이 숨었네 젊은이들 몸과 마음을 다해 달집을 태우며 소원을 빌지 내 행복 내 소망, 그리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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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골프남은 테니스여를 좋아 하는가!

    ‘골프남’은 ‘테니스여’를 좋아 하는가! '차세대 골프황제' 로리 매킬로이(22ㆍ북아일랜드)의 '로맨스'가 최근 지구촌 골프계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상대는 더욱이 여자프로테니스(WTA)투어 세계랭킹 1위 캐롤라인 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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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아름답던 단풍

    정동화 어느 날 문득 그대는 소리 없이 찾아 왔습니다. 바람이 고요를 몰고 왔고 어둠은 달빛 속으로 숨어 버렸습니다. 짙은 영혼에 환희의 생명을 피어나고 그리움은 먼 길을 재촉하고 있었습니다. 기쁨의 떨리는 순간을 조심스런 가슴으로 받아 들여야 했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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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섬진강

    정동화 처음 그대를 본 순간 나는 사랑의 떨림으로 그대 모습을 바라보았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서 진정한 사랑을 느껴본 감정 사랑은 강물이 되고 바다를 향한다. 싱그러운 연녹색의 녹음이 강물과 조화를 이루고 매화향기 그득했던 향긋함도 오래 전의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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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자신보다 강한 선수와 테니스 게임을 해야!

    테니스를 하는 사람들은 누구보다도 게임을 잘 하고 싶은 욕망은 끝이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초보자일 경우에는 고수들의 게임을 관전하면서 감탄을 하고 자신도 저런 고수와 같은 선수가 될 것을 다짐한다. 그러나 테니스를 하는 사람들은 고수가 그렇게 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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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테니스 코트에서 만나면 항상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

    정동화 테니스 코트에서 우리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만남이다. 독일의 문학자 한스 카롯사는 "인생은 너와 나의 만남이다."고 말했다. 인간은 만남의 존재이다. 인생에서 만남은 모든 것을 결정한다. 우연한 만남이든 섭리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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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이제, 테니스를 즐기고 싶다.

    정동화 세계적인 테니스 스타 보리스 베커는 “나는 승리하는 것이 좋다. 패배도 감당할 수 있다. 그러나 가장 좋아하는 일은 테니스 경기를 하는 그 자체이다.”라고 말했다. 한국의 테니스 간판이었던 이형택 선수가 한 인터뷰에서 말한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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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추석에도 테니스를 했다.

    정동화 추석 한가위, 우리의 고유의 명절이다. 아침에 차례를 지냈다. 언제나 그랬듯이 차례를 지내고 나면 별로 할 일이 없다. 올해 설날에는 조카와 조카며느리와 함께 부산대에 테니스하러 가서 열심히 치고 송도해수욕장 근처로 갔다. 그리고 맛있는 회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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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고흥만에서 낚시하던 시절

    정동화 언제나 찾아와도 반기는 그대 오늘은 비가 내리고 있다. 그래도 나는 그대를 찾는다. 그대를 만나지 못한 날들 속에서 그리움의 갈증이 목마르게 했다. 붕어와의 진실한 대화는 우리의 사랑에 한층 의미를 던져주고 있었다. 그대를 바라보면 가슴이 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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