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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를 꿈꾸다 - 넬슨만델라



에이즈 퇴치기금을 위해 런던에서 열린 콘서트의 이름은 46664콘서트이다. 이것은 만델라의 죄수번호이다. 이 죄수번호가 이제는 자유와 인간구원의 표상이 되었다.

 

성공적으로 대통령직을 역임한 후에도 영향력 있는 지도자로서 자유와 평화를 위해 헌신하고 있는 만델라를 만난다.

만델라는 두 개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 영국식 이름인 넬슨과 아버지가 지어준 아프리카 이름인 롤리흘라흘라이다. 우리는 보통 넬슨 만델라라고 부르지만, 그의 롤리흘라흘라라는 이름도 같이 불러야 한다. 이걸 부르지 않는다면 인종주의자 냄새가 날 것 같다. 만델라의 어머니는 어린 만델라에게 종종 아프리카 민담을 들려주었다. 늙고 병든 여인이 여행자에게 도움을 청했다.

 

여행자는 눈곱이 덕지덕지 낀 늙은 여인의 눈길을 피해 버렸다. 그러자 그 여인은 다른 여행자에게 자신의 눈곱을 닦아 달라고 부탁했다. 그 여행자는 내키지는 않았지만, 늙은 여인의 눈곱을 닦아주었다. 그 순간 여인은 젊고 아름답게 변신했고, 여행자는 그녀와 결혼해서 부자가 되어 잘 살았다는 이야기다. 어머니의 이 이야기는 어린 만델라의 가슴에 오래 동안 남았다.

 

바로 미덕과 너그러움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방식으로 보답해준다는 교훈이다. 그는 남아공 백인들의 더러운 눈곱을 손수 지극정성으로 닦아 준 지도자였다.

만델라는 자유를 위해 투쟁하는 용사이면서 용서와 화해의 정치인이다. 그는 언제부터 정치적인 투쟁에 관심을 갖게 되었을까?

 

그는 말한다. “내가 언제부터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또 언제부터 자유를 위한 투쟁에 일생을 바치겠다고 결심했는지 정확히 기억할 수는 없다. 남아프리카에서 흑인으로 산다는 것은 그들이 태어나는 순간부터 그들의 인식 여부에 상관없이 정치화될 수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남아프리카에서 태어난 흑인에게 자유를 위한 투쟁은 태어나는 순간부터라고 해야 한다. 거대한 정권과 투쟁하기 위해서는 조직이 필요하다.

 

만델라는 나중에 자신이 의장이 된 아프리카 민족회의(ANC)의 조직원으로 평생 활동했다.

만델라가 1912년에 조직된 아프리카 민족회의(ANC)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1942년 말 학사 학위를 취득하고 변호사의 꿈을 품고 있을 무렵이었다. 친구로 지내던 가우어가 그에게 말했다. ”아프리카 민족회의만이 아프리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이 말에 집회에 참가했던 만델라는 이후 백인 사회 속의 별종인 흑인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점차 백인 정부에 대항하는 투사로 성장한다.

 

남아프리카 정부는 일개 변호사가 바꾸어 놓을 수 있을 정도의 존재가 아니었다. 그는 근본적인 사회제도의 변혁을 꿈꾸었다. 그가 몸담은 아프리카 민족회의는 철저하게 무폭력 원칙을 고수하고자 했다. 만델라 역시 초기에는 간디의 무저항주의를 받아들이고 아프리카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손에 손잡는 민주주의를 표방했다. 하지만 저항의 정도는 압제의 정도에 따라 달라진다.

 

1948년 전 네덜란드 개혁교회의 목사이자 신문사 편집장인 다니엘 말란 박사가 이끄는 국민당은 스뫼츠 장군이 이끄는 통일당과의 선거에서 승리했다. 말란의 기본 강령은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 인종격리정책)’이다. 만델라는 아파르트헤이트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아파르트헤이트는 새로운 용어였지만 새로운 생각은 아니었다. 아파르트헤이트는 글자 그대로 분리를 뜻하며, 수세기에 걸쳐서 남아프리카 흑인들을 열등한 위치에 놓이게 한 모든 억압적 법규와 제도의 상징이었다. 그것은 지난 300년에 걸쳐 형성된 인종차별의 관습이 사회제도로 굳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악마적인 제도는 국민당이 나치를 지지하는 당에서도 잘 나타난다. 국민당은 더욱더 잔혹하게 인종차별을 하기 시작했다. 만델라는 국민적 저항이 더욱 거세어지는 정국 속에서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한다. 평화적으로 시위하던 시위대에 경찰이 무차별 총격을 가해 수많은 부상자와 18명의 목숨이 희생되었다.

 

그러나 이 사건은 앞으로 만델라가 겪게 될 엄청난 일들의 전주곡에 불과했다. 그는 이로 인해 무장투쟁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기 시작했다. 만델라는 투쟁을 하면서 공산주의를 비롯한 다른 사상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소수 지배로부터 행방과 자결권을 위한 아프리카 민족투쟁을 최우선으로 두고 있는 만델라에게 마르크스주의는 상당히 매력적인 사상이었다. 하지만 만델라는 공산주의자가 될 수는 없었다.

 

그는 아프리카 공산주의와 대화하기 위해 공산주의를 공부한다. 만델라가 투쟁을 하고 있는 모습은 일제 강점기 우리나라의 상황과 비슷함을 느낄 수 있다. 민족주의, 공산주의, 사회주의, 비폭력, 폭력, 조직 내에서의 내분과 분쟁 등 남아프리카에서 자유를 얻기 위해 투쟁하는 모습은 우리나라의 독립운동 모습처럼 보인다.

만델라는 어느 순간 비폭력으로는 자유를 쟁취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리고, 폭력 투쟁으로 노선을 돌리고 조직을 만들게 된다. 이제는 변호사가 아니라 지명수배를 받은 투사로서 지하에 숨어 지내는 민족운동가가 되었다. 국민당과 싸우기 위한 군대를 만드는 일에 책임자로 활동을 하게 된 만델라는 이 조직의 이름을 ‘움콘토 웨이즈웨’ 즉, ‘민족의 창’이라고 했다.

 

줄인 이름은 ‘MK’. 아프리카 민족회의에는 백인이 참가할 수 없었지만, MK는 백인을 비롯한 공산주의자까지 모두 받아들였다.

이 시기에 그는 피델 카스트로, 마오쩌둥, 체 게바라의 저서들을 읽고 무장투쟁에 대한 전략을 세운다. 이제는 책상에 앉아있는 시간보다 사격 연습하는 시간이 더 늘어났다. 그런데 만델라는 무장 투쟁을 준비하면서 자신이 ‘미묘한 충격’이라고 표현한 일을 겪게 된다.

 

올랜도의 한 농장에서 사격연습을 하기 위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종달새를 표적으로 삼았다. 주위 사람들은 만델라가 종달새를 절대로 맞히지 못할 거라고 했지만,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날아오르던 종달새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만델라는 의기양양해서 한 마디를 하려고 할 때, 농장에 살던 한 아이가 말했다. “왜 저 새를 죽였죠? 저 새 엄마가 슬퍼할 거에요.”

MK는 네 가지의 폭력 행위를 고려했다. 사보타주, 게릴라전, 테러, 공개적 혁명 등이었다. 군대를 운용할 자금을 모으기 위해 만델라는 아프리카 전 지역을 돌아다녔다.

 

그리고 영국 런던을 다녀오고, 본격적인 군사훈련도 받았지만 집요한 당국의 추적에 결국 체포되고 만다. 그리고 정치범으로 동료들과 함께 종신형을 선고 받는다. 사형을 기다리고 있던 만델라는 종신형을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종신형은 적어도 그의 투쟁을 멈추게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는 로벤 섬의 감옥에서 18년간 수감생활을 했는데, 466/64라는 수번을 부여 받았다(대통령이 된 후 이 감옥을 다시 찾은 그는 이 수번이 적힌 카드를 다시 보게 된다). 1964년에 로벤 섬에 수감된 466번째 죄수라는 뜻이다. 만델라는 46살에 종신형을 선고 받은 정치범으로 살게 되었다. 이제부터 진짜 만델라가 단련되는 순간이 온 것이다.

만델라의 자서전을 읽으면서 필자는 개인적으로 어서 감옥 이야기가 나오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대체 어떻게 27년 6개월을 견디고 한 인간이 그토록 위대한 업적을 남길 수 있단 말인가?

 

우선 그는 낙관론자였다. 그 자신이 그것이 타고난 것인지 교육받은 것인지 알 수 없다고 했지만 그는 항상 머리를 태양을 향해 똑바로 치켜들고 발을 내딛는다고 했다. 그것이 낙관론이라는 것이다. 그는 말한다. "인간성에 대한 나의 신념이 혹독한 시련을 겪는 어두운 순간도 많았다.

 

그러나 나는 절망에 굴복하지 않으려 했고 굴복할 수도 없었다. 그것은 곧 패배와 죽음의 길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종신형으로 감옥에서 죽는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준비만 잘 한다면 언젠가는 자유인으로 아프리카 대지를 두 발로 걸을 것이라는 낙관적인 사고를 했다.

 

처음엔 열악했던 감옥 생활이 여러 번에 걸친 감옥 투쟁으로 점점 개선되고, 교도관과도 친하게 지내게 되면서 로벤 섬은 마치 정치범들의 대학과 같은 느낌으로 읽히는 순간도 있었다. 만델라가 감옥 생활을 잘하고 오히려 투쟁의 노하우가 더 좋아지는 것을 우려해서인지, 정부에서 교묘한 술책을 부리기도 했다. 수 차례에 걸쳐 만델라에게 탈옥 제의를 하는 인물을 보낸 것이다. 만델라는 유혹을 느끼긴 했지만 거절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탈옥을 시킨 후 사살할 계획이었다.

만델라는 감옥에서 채소밭을 만들었다. 묘목을 구해 나무도 심었다. 어디서 많이 보던 풍경이 아닌가. 황대권 선생의 야생초 편지가 떠올랐다. 그는 밭을 가꾸면서 자신의 인생을 보았다.

 

지도자로서 역시 돌보아야 할 정원이 있는 것이다. 씨를 뿌리고 수확을 하고 거두는지 그는 감옥의 채소밭에서 배운다. 한번은 실수로 묘목이 죽었을 때 그는 그 묘목을 캐내어 물로 씻어 정원 한 구석에 묻어 주었다.

 

그리고 만델라는 생애에서 반드시 해야 할 것이 운동이라고 했다. 젊은 시절 그는 선수 수준의 복서였다. 감옥에서 그는 이전에 했던 일상적인 권투 연습과 유산소, 무산소 운동을 했다.

 

감방 안에서 제자리 달리기를 45분, 손가락 짚고 팔굽혀펴기 200회, 윗몸 일으키기 100회, 허리 굽히기 50회 이상. 감옥 생활은 사람을 무기력하고 나태하게 만든다. 다른 젊은 수감자들은 늙은이 만델라가 운동을 하는 모습을 보고 저 늙은이도 하는데 내가 못 하랴는 심경으로 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만델라는 자신이 있는 곳을 ‘변화’시키는 인물이었다. 결국 이러한 그의 행동들이 남아프리카에 인종차별정책의 철폐로 이어진다. 작은 변화가 큰 변화를 몰고 오는 법이다. 감옥에서 그는 젊음을 바쳐 노인이 되었다. 노인 만델라는 이제 큰 그릇이 되었다.

 

인간성을 죽이기 위해 가두어 놓은 감옥에서 그는 더욱 성숙한 인간이 되어 1990년 2월 11일 여름이 끝나가는 날 오후 4시가 되기 직전에 ‘개인적인’ 자유를 되찾았다. 이것은 남아프리카인들이 ‘자유’를 되찾는 것을 의미한다. 만델라는 그간 감옥에서의 소회를 이런 문장으로 남긴다. “비록 일흔 한 살이지만 나는 내 인생이 이제 막 새롭게 시작되는 것을 느꼈다. 나의 만 일 동안의 교도소 생활은 이제 끝이 났다.”

만델라는 1993년 드 클레르크 당시 남아공 대통령과 함께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남아프리카인으로 만델라는 2차 세계대전 후에 세 번째 노벨평화상 수상자이다. 만델라 이전에도 남아공의 자유를 위해 투쟁한 엘버트 루툴리 추장이 1960년에, 데스먼트 투투 주교가 1984년에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만델라는 무장투쟁을 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노벨평화상을 전혀 기대하기 않았다고 했다. 이후 그는 남아공의 대통령이 되었고 흑인들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투표를 하고 인종차별주의는 철폐되었다. 우리는 당연히 '흑인들이 핍박에 대한 보복을 생각하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만델라와 아프리카 민족회의는 달랐다. 진실과 화해 위원회를 구성해서 과거의 인권침해 범죄에 대한 진실을 밝히고 그들은 사면했다.

 

이러한 문장이 그들의 심장에서 튀어나왔다. “용서한다. 하지만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만약에 “용서 못한다. 너희들도 한번 죽어봐라” 가 되었더라면 남아공은 내전이 일어났을지도 모른다. 만델라는 진정한 자유를 원했고, 자신이 맡은 바 소임을 다했다.

 

과거의 인권유린에 대한 사면을 받은 백인들 역시 죄책감에 시달렸다. 사면을 받은 한 백인은 “흑인들이 나를 천만번 용서하고, 하나님이, 모든 사람들이 천만번 나를 용서한다 해도 나는 이 지옥을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문제는 나의 머리 속에 나의 양심에 있기 때문이다”라고 절규했다.

 

그는 자신의 머리를 폭파시켜 달라고 애원했다. ‘머릿속에 기억 속에 지옥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할 정도면 남아공의 아파르트헤이트가 얼마나 잔혹했는지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만델라 자서전>(넬슨 만델라 저, 김대중 옮김, 두레)

이 책은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김대중 전 대통령이 번역을 한 책이다. 당연히 자유를 위한 투사로서 만델라와 어떤 연대감을 느꼈을 것이다. ‘자유를 향한 머나먼 여정’이라는 부제는 언어가 얼마나 무기력한가를 잘 보여준다. 만델라를 읽으면 서로 다른 언어를 넘어선 인간의 진정한 모습이 그려진다.

 

역자는 이 책을 번역하면서 ‘인동초’라고 불렸던 자신의 생애를 되돌아보았다. 20세기는 만델라, 김대중과 같은 정치지도자들이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한 세기이다.

서로 다른 풍토에서 독재와 악법에 맞서 싸우고 쟁취한 자유. 그 소중한 인간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의 뒷모습은 아름다웠다. 이 책은 내가 읽은 어떤 소설보다도 더 드라마틱하고 감동적이었다. 그리고 자기개발서와 같은 역할도 할 것이다. 복수는 증오감에 불타 결국 자신을 망치는 일이다. 용서와 화해로서 미소 짓는 인간 공부를 이 책을 통해 할 수 있다.

<넬슨 만델라 평전>(자크 랑 저, 윤은주 옮김, 실천문학사)


저자 자크 랑은 2007년 프랑스의 문화 대통령이라고 불린 정치인이다. 주로 문화부와 교육부에서 일했는데, 미테랑 대통령 시절에 성공적인 문화정책을 운영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세계를 무대로 한 연극배우로 만델라를 출연시켰다. 저자는 말한다. “나는 5막으로 짜인 남아프리카의 비극을 설정하고, 각 막에서 만델라에게 주인공 무대의상을 입혀서 묘사하기로 마음먹었다. 제 1막에서 그는 안티고네의 아프리카인 형제이다.

 

제 2막에서 그는 스파르타쿠스가 된다. 제 3막에서 그는 인간에게 해방의 불을 가져다 준 죄로 바위에 사슬로 묶인 프로메테우스이다. (중략) 그리고 제 5막에서 그의 배역은 넬슨 왕이다. 어떤 역할이 이보다 더 적합하겠는가?” 이 두 권의 책과 더불어 청소년과 아이들을 위한 만델라의 책들도 꽤 많은 분량으로 출판되어 있다. 청소년들에게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의 소중함을 알려주기에 만델라보다 더 좋은 모델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글쓴이 송선순  http://www.parangs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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