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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날의 어색한 조우

아이를 처음으로 유치원에 보낸 봄
오전 시간을 오롯이 나를 위해 쓸 수 있게 되자
설레는 마음으로 대뜸 대공원 근처에 있는 가족농장에 2구좌를 빌렸다.
세식구가 괭이로 땅을 파고 물을 주고 벌레 잡고 풀을 뽑고 하다보면
도토리나무 밑에 자리깔고 땀을 식히면서 가져온 도시락에
텃밭의 푸성귀를 따먹으며
오손도손 행복할 것같은 한폭의 그림을 머리 속에 그리면서
주말농장을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군대가서 노가다 뛴 것도 억울해 죽겠는데
무슨 삽질을 또 시키려느냐고
자기는 가뜩이나 피곤해 죽겠는데
집에서 호강에 겨워 농사 운운한다면서
남편은 하려면 혼자나 하라고 발뺌을 했다.
아들은 어릴 때부터 동물을 좋아해서 자연주의자로 키우려했으나
별 자극을 주지않는 빈 땅과 그 속에 숨은 씨앗이나 비리비리한 모종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보였다.
혼자 열평 땅을 일구고 물주고 농약없이 풀뽑는 일이 어찌나 힘에 부치던지....
성적표가 교실 뒤에 공개된 것마냥
땅위에 자란 푸성귀의 푸르름이나 주렁주렁 달린 결실의 실함으로
텃밭의 성적표 또한 공개되는터라
욕심은 있어서 얼굴 그을리며 허리, 무릎, 어깨 삭신이 쑤셔도
아침저녁으로 시간만 나면 텃밭을 들락거렸다.
텃밭 옆 비닐하우스에 살던 주인아저씨는 나보고 혼자사냐고 은근히 물어왔고
소일거리로 농사지으신다는 옆밭 할아버지는
어제 우리 밭에 자신이 물을 줬다면서 다소 성가신 알은체를 해오고......
십여년전의 일이니 당시 내나이가 우리클럽의 제일 막내랑 같아서였나?
이런 일로 부아가 나서 남편을 텃밭에 대동하고 가려고 별 꾀를 다써보았지만
다음해에는 농사를 접었다.
텃밭뿐만이 아니다.
성당다닐 때도 외짝교우더니만 남편이 다른 운동으로 바쁘다보니 이번엔 외짝테니스를 하고 있다.  
요즘에는 부부가 같은 운동을 하는 사람이 제일 부럽지만
그렇다고 내가 재미없게 골프채를 휘두를 수는 없는 노릇이고
남편보고 이제와서 테니스하수노릇을 견디어보라고 하기에도 만시지탄이다.
커플테니스족도 나름대로 애환이 있고 불편함이 있겠지만
테니스로 해서 그들의 대화는 무궁무진할 것이고
함께 아는 테니스치는 사람을 씹어도 몇 밤을 세워야 하지 않을까?
목감기때문에 스코어 외치는 일도 에이는 아픔인 이때
마침 하루종일 비가 와서 오늘 하루 잘 쉬었다.
아침, 점심을 집에 있는 상하지 않은 음식으로 대충 때웠더니만
쇼핑 싫어하는 남편이 먼저 백화점 지하에서 저녁먹고 장도 봐오자는 말을 했다.
동네가 작아서인지 잠깐 부부동반 나들이하는 사이에 테니스로 알게 된 사람을 많이 만났다
아니 스쳐지나쳤다.
종일 비가 왔는데 어디서 무슨 운동을 했는지 운동복차림에 반바지를 입은 아저씨도 봤고
부인이랑 아이를 데리고 의젓하게 쇼핑카트를 끌고 있는 아저씨도 있었고,
두 아이가 훌쩍 아빠보다 크고 듬직해보여 일찍 결혼을 하셨나 싶은 아저씨도 있었고,
그런데 코트에서는 반갑게 웃던 얼굴들이 한결같이
남편과 나란히 선 나를 외면하거나 못본척 서둘러 지나치는 것 같았다.
하긴 비테니스계인 남편과 인사를 나누기도 멋적었으리라.
역시 비테니스계인 자신의 아내를 소개하기도 그랬을 것이다.
잠시나마 남편이 옛날에 테니스를 쳤으니까 조금만 하수설움을 참고 견디면서
부부테니스를 하게 되면 어떨까하는 부질없는 생각해보았다.





[테니스는 어떻게 완성 되는가?]




  • 풀내음 05.27 21:41
    재미있게 잘읽었습니다...

    저도 부부가 같이 운동하는게 너무 부럽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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