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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여행 - 카피리음포시에서 루사카까지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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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시간만에 카피리음포시역에 도착했다. 신선한 바람이 제일먼저 인사했다. 기차에서 미쳐 비자를 발급받지 못한 분들은 줄을 서서 먼저 비자신청이 먼저였다.

비자신청비 50불,화장실을 가려고 찾으니 없다.


자물쇠로 굳게 닫혀진 화장실을 찾아 들어가보니 엄청 깔끔하기는 한데 제사를 지내는 제단처럼
높은곳에 설치해 놓고 계단을 올라가야만 볼일을 보게  만들어놓 았다.

가는곳마다 아무튼 화장실이 다채롭기 그지없었다.

아프리카의 교통수단은 대체적으로 미니봉고다. 두대의 봉고로 나눠타고 루사카로 출발했으나 두어 시간이면 도착한다는 루사카는 가도가도 끝이 없었다.

중간에 교통순경에게 걸려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했다. 봉고에 짐을 너무 많이 실었다는것,일행중 누군가 자신들의 사진을 찍었다는것. 코에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다.

일행들은 모두 봉고에서 내려 폴리스 오피스에 가서 여권을 보여주며 일일히 검문당하고 한분은 직접 왜 사진을 찍었는가 진술서까지 쓰고나서야 해방될 수가 있었다.

정작 사진을 찍은 사람은 따로 있었는데 마침 그 장본인은 천만다행으로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으나 엉뚱한 사람이 봉변을 당했다.

이런 저런 이유로 2박3일 지친 심신은 더욱 더 지치고 세명이 앉아야 할 의자를 네명이 앉도록 개조한 봉고의자가 너무나 불편해서 숨이 막힐 지경이고 온 몸이 뒤틀릴 지경...

그렇게 힘든 상황에도 티없이 맑고 푸른 하늘에 하얀 솜을 뜯어 붙인듯한 흰구름과 지평선 너머까지 푸르른 들판의  나무와 끝없이 펼쳐진 옥수수나무, 하얗게 꽃이 핀 감자꽃등 밖의 풍경이 아름다우니 그나마 위로가 되는 상황.

잠시 화장실을 가기위해 정차를 해서 보니 내 키보다 더 큰 옥수수 밭 사이에 만들어진 미니 화장실 옆에는 옹기종기 어린아이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우리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쫒았다.

오래된 펌프를 그곳에서 보았다.  우리가 품어대면 물이 안솟던 그 펌프에서 현지인이 손대자마자
물이 폭포처럼 쏟아져 내려왔다. 거리엔 나무와 나무사이 빨래줄같은것을 만들어 놓고 고기를 걸어놓고 팔고 있었다.

어디를 가나 옥수수찐것이나 과일등을 파는 아녀자들이 달려들어 금방 우리 주변에는  현지인들이 가득했고 잘 사면 마켓보다 더 훨씬 물건이 싸고 싱싱한것들도 많이 있었다.

일행중 모 사장님은 내릴때마다 아프리카 여인들의 인기를 독점했다. 왜냐면 무엇이든 사다가 일행들을 나눠주느라고 펑펑 돈을 썼으니 인기만점일 수밖에...

영원히 도착하지 않을 것 같은  루사카 숙소 '차차차'에 도착했다. 루사카는 마을의 추장이름에서 유래되었고 유럽에서 온  이주자에 의해서 루사카라는 지명이 붙게 되었다고한다.

게스트하우스 차차차는 상당히 세련된 도외지 풍이었다.

 

가운데 수영장까지 갖춰져 있었고 입구엔 술과 음식을 파는 레스토랑이  있었지만 가격이 비싸서 우리같은 배낭 여행객들이 이용하기엔 너무 부르조아틱하다.

우루루시내 중앙마켓을 구경하기 위해 짐을 놓자마자 걷기 시작했다. 거리엔 도외지풍의 세련되고 아름다운 여성들의 의상부터 헤어스타일까지 모두가 여직 보아온 아프리카식이 아니었다.

큰 거리의 울창한 나무들부터 쉴사이 없이 오가는 자동차의 행렬속에서는 더이상 박달나무를 들고 다니는 마사이족 같은 부족을 연상할 수가 없었다.

우리일행은 일단 보면 실망할 것이라는 박물관을 제쳐두고 중앙마켓까지 씩씩하게 행진을 했다.

엘지라는 우리나라 상표가걸린것만 보아도 기분 좋았고 특히 재잠비아 한인회 사무소라는 글자를 보았을때는  아무볼일도 없으면서 반가운 마음 하나도 불쑥 문을 열고 들어갔다.

조국을 떠나 머나먼 타지에서 한국인들이 정착하여 뿌리내리고 산다는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뜨거워진다

얼마나걸었을까?

중앙 마켓 가까이 다가가자 수많은 남자들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우리를 주시하기 시작했고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말대로 거의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기어코 센트럴마켓을 찾기는 했으나..

마켓 사이사이엔 각자 개성있는 음악들을 대단히 커다란 볼륨으로 틀어 놓아 온통 마켓은 소음덩어리였다. 협소한 상점들 가운데를 통과하는데 식은땀이 흐를만큼 긴장시키는 눈빛들 휘파람소리들...

겨우 끝까지 가서보니 거리엔 잡다한 야채와 과일들을 파는 사람들과 당구를 치는 젊은이들이 일시에 우리들에게 시선을 집중하고 금방 우리들을 둥그렇게 둘러싸 두려움에 떨며 되돌아 와야 했다.

눈빛이 몹시 거칠었다.

서둘러 아무것도 사지 못하고  이마트같은 큰 쇼핑몰에 갔다. 그동안 지나왔던 탄자니아에서는 상상도  할 수없는 풍경이었다. 흑인들이 카터를 끌고 유유히 쇼핑하는 모습은 조금전 거리에서 만난 부랑자같은 사람들과는 확연히 틀렸다. 세련된 여성들이 많았다. 

진열대에는 엄청나게 많은 물건이 쌓여있 었다. 우리는 쌀중에서 가장 비싼 일본의 스시쌀을 샀다.
일킬로에 우리돈 1만5천원정도. 그곳에서는 물건을 사면 반드시 영수증을 들고 나와야 
입구에서 지키는 경찰이 물품과 영수증을 대조하고서 밖으로 내 보내준다.

나는 그곳에서 어린아이 사진을 찍는다고 친구한테 된통 한방을 맞았다. 무지막지하게 성질을 내고 있었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아무나 카메라를 들이대면  화를 당한다는거다. 나는 그 아기의 엄마에게 이미 허락을 얻어낸 상태였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친구가  기기막혀서 말이 안나와 눈을 꼭 감고 입을 다물었다.
 

다른 일행들이 있어서 차마  내 성질을 다 피울수가 없었지만 갈수록 예민한 친구에 대해 언젠가
일침을 놓겠다는 생각을 했다.

숙소로 돌아오자 좋지않은 소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일행중 젊은이들중 하나가 교통사고가 나서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이다

가해자는 현지 병원의 닥터로 사고가 나자마자 일행들은 그자리에서 자동차넘버 사진을 찍고 운전자 사진을 찍어 꼼짝도 못하게 한 다음 경찰을 불러온 다음 병원으로 옮겨졌다한다.

그야말로 똑똑한 한국인이다.

 

외국에서 특히 후진국에서 사고가 나면 무조건 제나라 편을 들어 치료비도 받기가 힘들다는것이 일행들의 반응이다.

병문안을 다녀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어마어마하게 큰 병원, 병원안의 응급실만 찾는데 거의 이십여분 이상을 걸어야 할 정도라 하니 나의 상상력으로는 잘 그림이 안그려졌다. 이 후진 아프리카에도 그렇게 의료시설을  잘 해놓았다는것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불행중 다행으로 그녀는 바로 퇴원을 했고 우리들은 열명이서 한 방을 쓰는 도미토리에서 잠시잠깐 눈을 붙였다.

삶은 선택의 연속이다. 인간은 자신의 의지에 따라 선택을 하게되고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게 된다. 엘리자베스 퀴블로 로스 박사는 그의 자서전 '생의 수레바퀴'에서  “신이 우리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은 자유의지“라고 말한다. 

 

그 자유의지에 따라 인간들은 자기의 삶을 만들어 간다. 

 

http://www.parangse.kr/   송선순






아프리카 여행 - 루사카서 리빙스턴으로

감기 기운으로 일찍 잠자리에 든 탓인지 새벽 네시에 눈을 떴다
 

잠비아는 그동안 머물던 탄자니아보다 한시간 더 늦어 우리나라보다 일곱시간이 늦는 편이다.

잠비아의 수도이며 남쪽 지방의 역사적인 식민도시 루사카에서 첫 밤을 보냈다.도미토리 차차차는 깔끔하고 뜨거운 물이 콸콜 잘 쏟아져 만족스러웠다.

 

설사 8인실이라 해도 불과 물이 풍부하면 이젠 그야말로 퍼펙트한 만족이라는것을 깨닫게 되었다
잔지바르와 능기비치의 전력난으로 시간제로 불이 켜졌던때를 생각하면 황송하기 그지없다.

 

물도 졸졸 나오다 말고 머리감으려면 비누칠해 놓고서 한삼분 이상  기다리다가 또다시 조금 나오면 마무리하기까지 열번은 기다려야 할 상황이었으니..어찌 감지덕지 하지 않을까..

루사카는 1930년대 까지만 해도 그저 농사나 짓는 촌락이었다.  1931년 리빙스톤에서 이 곳으로 수도를 옮긴 후 북 로디지아의 수도가 되었으며,  1964년 독립을 하면서 잠비아의 수도가 되었다 잠비아는 세계적인 구리의 생산국이다.

영국의 지배를 받아 현지인들은 채굴 노동자로 일했을 뿐이다.  게다가 독립 후 독재정치와 부정부패로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가 되었다

 

잠비아는 주민의 80%가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살아가는 세계에서 가난한 나라 중 한 나라다. 

수도인 루사카는 잠비아 최대의 도시이지만 역사가 오래되지 않고 볼 거리도 그다지 많지 않다.  그러나 많은 여행자들이 이 곳에 들르는 이유는 빅토리아 폭포가 있는  국경도시 리빙스톤으로 가기 위해서 중간 기착점이기 때문이다. 

루사카도 케냐의 나이로비처럼 고도 1300m에 자리 잡은 고원도시이기 때문에 선선하다.  도시 이름은 마을의 추장이었던 루사카에 유래되었고 시내 동쪽으로 자리잡은 신시가지는 미국에 온 듯한 느낌이 들 정도다.

별이 총총이 뜬 루사카의 새벽은 고요하고 맑은 바람이 기분좋게 했다.  공동으로 사용하는 화장실과 샤워실 키친등은 저녁내내 환하게 불을  켜 놓는지 전혀 무섭지 않았다.

 

이쪽 사람들도 흑인들을 두려워하는지 철처히 입구를 지키고 하루종일 문을 봉쇄해 놓고 있었다.

점심 도시락 쌀주먹밥 재료를 준비해 놓고 컴에 자료를 흟어보니 여행 칠일째 팔일째 썼던 모시서 다르에스살람으로 가는 길과 다르에스살람에서 잔지바르에서 보낸 첫밤의 여행기가 빠져 있음을 그때서야 깨닫게 되었다.

작업하다 불이 나가 완전히 확인을 다시 하지 못하고 유에스비를  김양재씨편에 보낸것이 문제였다.

큰일이었다. 능기비치것만 기사를 보내고 그 이전것이 없으니 어떻게 할 도리가 없어 편집장께 문자를 여러번 보내 다음달에 기사를 올리는것으로 마무리했다.

 

마음이 불편했다. 그냥 전기불탓만 할것이 아니고 조금 더 완벽하게 꾸렸어야 했는데...

동이트자 한사람 두사람 주방으로 몰려 들었다. 루사카로 7시간동안 버스를 타야 한다니 주먹밥을 만들고 일행들이 가져온 라면으로  현지에서 사온 라이스를 넣어 짬밥을 만들어 드렸더니 굉장히 만족한 아침이었다는 칭찬을 들었다.

상당히 세련된 도외지 풍의 루사카를 돌아보고  역사적인 콜로니얼 도시, 로디지아(잠비아의 옛 이름)의 수도였던 리빙스톤으로 다시 떠날 준비를 했다. 끊임없이 떠나는 것에 길들여진 우리들의 가슴속에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으로 가득했다.

아프리카 곳곳을 달리다 보면 이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자주 느낀다. 그만큼 광활하고 드넓다. 
순도 높은 청량감이 어떤 것인지를 확실히 깨닫게 하는 하늘을 보며 아프리카의 하늘을 꼭 한국으로 가지고 가고 싶을 만큼 유혹하고 있었다.

루사카인터시티 버스터미널은 인산인해 그야말로 국제적인 버스행렬탓인지  다양한 사람들이 즐비했고 대도시답게 여성들의 헤어스타일이 멋졌다.

단순히 머리를 땋는 사람만 있는것이 아니라 파마머리와 생머리 멋장이들이 많았다.

아홉시반 리빙스톤행 국제버스에 짐을 싣고 버스에 올라탔으나 언제 왔는지 미리 타고 있던 수많은 현지인들이 좋은 자리를 다 차지하여 우리는 맨 뒷쪽 자리에 줄줄이 앉에 되었다.

7만콰차 우리나라 돈으로 2만원정도 되는 돈이다 .버스는 생각보다 편안했으나 타자마자 어느 선교사인지 목사인지 한동안 영어로 설교를 하고 기도를 하고 아멘할렐루야를 외치며 내려갔다.

의자가 안락해서 독서를 해 보려고 책을 폈으나 뜻하지 않은 복병으로 일곱시간 내내 골머리를 앓아야했다. 머리위에 달린 브라운관에서 시스터엑트에 나오는 합창단들이 춤과 노래를 하는데 주로 성경을 리메이크한곧들이었는데 어찌나 큰 볼륨으로 우리 귀를 괴롭히는지 환장하게 만들었다.

볼륨을 낮춰 달라는 요청을 해도 들은척도 안하고 창가엔 커튼도 없이 강렬한 아프리카 태양과 찢어질듯 귀를 괴롭히는 노래소리를 들으며 일곱시간을 달렸으니 상상해 보라.

비행기 안에서 준 귀마개와 휴지를 틀어막아도 그 소음으로 부터 완전히 해방될 수가 없었던 순간이다.

중간 휴게실에서 또한 잊지못할 해프닝이 있었다. 화장실을 가려면 1000콰차(우리돈 300원) 정도를 내야 한다해서  마침 친구에게 1000콰차를 달라해서 주고 들어가 볼일을 보고 나오니 내 손에 두툼한 지폐를 열장정도 쥐어주는것이었다.

의아해서 그 잔돈을 받아들고 친구에게 내미니 친구가 깔깔거리며 자기는 천콰차라고 생각하고 주었는데 아무래도 만콰차짜리를 준 모양이라며 낄낄거렸다.

그렇다면 화장실 한번 사용하는데 5천콰차를 낸것이다. 우리나라 돈 1500원. 어쩐지 화장실이 깔끔하더라 했더니 완전 바가지를 쓰고 말았다.

겨우겨우  일곱시간을 견디다 리빙스톤에 도착했다.

현지시간 오후 5시를 넘기고 있었다. 오자마자 들르려고 마음먹었던  리빙스턴 박물관은 이미 클로즈. 할수없이 다음날 아침 8시에 오픈한다고 하니 갈 수 밖에 없었다.

우리 리빙스톤의 숙소


졸리보이스
 

Jollysboys-졸리스는 프랑스어로 즐겁다는 뜻

기나긴 버스 여행의 피로를 한 방에 날릴 수 있는 평화로운 정취가 한눈에 들어왔다. 유유히 수영하고 있는 젊은 외국인들과 인도풍으로 꾸며놓은 리셉션장 너무나 마음이 놓였다.

 

우리일행 31명이 들어갈 방을 배정했다 우리여자들은 무려 16명이 쓰는 도미토리가 배정되었지만 그래도 행복했다.

서둘러 기차안에서 부터 입었던 옷을 빨아 널어놓고 수영장앞에서 글을 쓰는 나는 모처럼 여유롭고 행복한 웃음을  웃을 수 있었다.

여행이란 이런것이 아닐까.. 목이 아파서 맥주는 못마시지만 그래도 이아름다운 정원의 숙소에서
좋은 분들과 어울려 함께 식사를 할 수 있다는것 옆에 초은이 언니가 저녁을 준비하고 유선생은 열심히 서빙을 하고 있다.

아프리카에서 머물렀던 백펙커스중 가장 낭만적인 숙소였다. 졸리보이엔 수없이 많은 망고나무가 있었는데 한바퀴 그 나무밑을 돌고나면 한소쿠리씩 망고를 주어올 수 있어 질리도록 망고로 실컷 배를 채웠다.

*
리빙스턴여행까지 뒤돌아 보면 이번 아프리카 여행의 장점과 단점을 적어보자.

 

여행사-인도로 가는길

한달 아프리카 여행치고는 경비가 싸다는것,600만원. 싼 이유를 절실히 깨달았다.

다에르 살람서 기차를 타고 카피리 음포시역에 내리기까지 총 43시간. 그곳에서 다시 루카스까지 세시간 이상을 버스로 달렸고 다음날 루카스서 리빙스톤까지 일곱시간 이상을 달렸다.

그렇다면 빅토리아 폭포를 보기 위해 우리가 거리에서 보낸 시간을 총 합산해 보면 5박6일정도가 된다


다르에스 살람서 바로 리빙스톤까지 오는 버스나 비행기는 없었는가?

다르에스 살람서 카피리음포시까지 기차로는 43시간이지만 버스로는 24시간이면 되었다는데 버스를 선택했다면 시간 절약을 할 수 있었지 않았을까?

 

몹시 지루하고 불편한 미니봉고를 오래 타는것은 그야말로 지옥이다.

 

http://www.parangse.kr/ 송선순






아프리카 여행 - 세링게티 초원을 달리다.






셋째 날-1월 2일 세링게티로 투어 가는 날 2박3일.

너무 청명하고 맑고 고요한 아루샤의 아침. 아프리카에서의 세 번째 아침이 밝아온다. 이곳도 이슬람교가 많은지 새벽 다섯 시가 되니  어김없이 기도소리가 울려 퍼졌다.

2박3일의 사파리를 떠나는 날이다.

세렝게티 국립공원에서 사파리, 마지막 날 응고롱고로 분화구 속을 둘러보고 마사이 마을을 돌아오는 일정이다. 사파리의 가격은 천차만별이지만 우리들은 450불 미국 달러로 결제를 했다.  어마어마한 액수다.

'사파리'는 스와힐리어로 '여행'을 뜻하는 말이다.
 

길이 험해 자주 모래구덩이에 빠지기 때문에 사파리용으로 개조한  4륜 구동 지프, 랜드로바를 타야한다 그 자동차는 천장에 뚜껑이 달려 있어 사파리를 할 때에는 지붕을 열어  맹수들을 더 잘 볼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다.  


호텔에서 제공하는 아침을 먹고 세링게티로 사파리를 떠날 간단한 짐을 꾸렸다 . 큰 짐은 호텔에 맡기고 초원에서 머물 2박3일간의 간단한 짐만  배낭에 꾸려 총 다섯 대의 랜드로바에 나눠 타고 오전 10시 호텔을 출발했다.

우리 차에 오른 멤버들은 60대 가까운 여성들과 20대,40중반의 남자 선생님 한분이 함께 하여 보디가드 역할을 해 주셨다.

덜컹거리는 랜드로바는 굽이굽이 계곡을 넘어 응고롱고로 입구에서 멈췄다. 수도 없이 많은 원숭이 떼들이 우리를 기다렸다는 듯이 나타났다. 한 외국인 어린아이가 들고 있던 사탕봉지를 그대로 낚아채 나무위로 도망가는 그 원숭이의 이름은 사납기로 소문난 바분이었다.

아이까지 배에 안고 동료들에게 뺏기지 않으려고 사력을 다해 도망가면서도 기가 막힌 솜씨로 사탕껍질을 벗겨 껍질만 나무 밑으로 내려 보내는 것이 한두 번 강탈해 본 솜씨가 아니었다.

뺏고 빼앗기는 생존의 광경은 한동안 볼거리를 제공했고 응고롱고로 공원의 허가증을 받는데 걸리는 기다림의 지루함을 잊게 해 주었다

'지상 최고의 동물 왕국, 세렝게티'는 마사이 말로 '끝없는 평원'이라는 뜻이다. 300만~400만 년 전에 형성된 이 평원은 약 1만4천800㎢로  300만 마리의 동물과  독수리와 황새 등 350여종의 조류가 어울려 살고 있는 지상에서 가장 오래된 생태계중 하나다.

1951년 탄자니아 정부가 99년간 마사이족의 땅인 세렝게티를 빌리기로 하고 국립공원으로 지정한 이후 마사이족의 삶은 변화하기 시작했다. 동물보호 등의 이유로 더 이상의 사냥이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꿈틀대는 야성을 숨죽여 지켜보는 사파리 여행. 아프리카 여행의 백미는 역시 사파리리라고 한다. 대자연을 호흡하며 생명의 외경을 깨닫는 여행이 시작되었다.

세렝게티로 가는 길에는 창과 활을 멘 마사이족이 수백 마리의 양과 소떼들을 몰고 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그들은 주로 진한 색깔의 보자기를 두르고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치렁치렁 울긋불긋하게 치장했다.

가도 가도 끝없이 펼쳐진 세링게티 초원이 펼쳐지고 있었다. 아프리카에서도 열대우림과 사막의 사이에 분포하는  사바나(아열대 초원)는 풍부한 먹이와 알맞은 기온 및 습도로  수만 종이 모여 사는 동물의 파라다이스다.

망망대해처럼 펼쳐진 거대한 초원을 종횡무진하며 때 묻지 않은 대자연을 체험한다는 것은 아주 특별한 경험이다. 제일 먼저 우리를 반기는 것은 귀엽기 그지없는 톰슨가젤이었다. 작은 사슴같이 생긴 톰슨가젤은 귀엽게 꼬리를 흔드는 것이 제일 인상적이다

주로 톰슨가젤은 얼룩말과 누와 함께 풀을 뜨고 있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되는데  같은 종이 아님에도 무리가 함께 어울릴 수 있는 것은 먹는 풀의 종류가 다를 뿐 아니라   색맹인 누와 후각이 안 좋은 얼룩말이 맹수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한 전략적 동거인 셈이라고 한다.

처음 본 못생긴 누는  소의 뿔과 염소의 수염, 말의 꼬리를 조합한 것 같은 외모 때문에 동물계의 프랑케슈타인으로 불린다.

끝없는 초록의 평원을 달리며 사자를 보았고 어슬렁거리며 나타난 표범을 보며 소리쳤고  키가 큰 기린이 풀을 뜯는 모습을 보며 그 긴 목을 어떻게 하고서 먹는지를 궁금해 하며 감탄에 감탄의 소리를 질러대며 초원위에 머물렀다.

이렇게 우리 삶은 마음에도 이따금 환기가 필요하다. 굳게 닫힌 일상의 창을 열고 새로운 공기를 마시기 위해 여행을 떠나야 하고 푸른 초원의 정기를  마셔야 한다.

아프리카는 사람만 검은 것이 아니라 세링게티에 흐르는 강물조차도 검고 누런 흙탕물이었다. 그 안에는 악어가 있고 거대한 하마가 푸푸 하며 숨을 쉴 때마다 분수처럼 원을 그리는 풍경을 보며 어린애처럼 좋아하는
모습들은 나이를 초월한 순수 그대로였다.

첫날 세링게티에서의 켐프는 불도 들어오지 않는 곳이었다. 캄캄한 곳에서 차려주는 저녁상을 기다리다 메인디쉬가 나오기도 전에 잠에 골아 떨어졌으나 스파게티 맛이 일품이었다는 소리를 그 다음날에서야 듣게 되었다.

이른 새벽에 일어나서  하늘의 별들이 바로 가슴까지 와 닿는 크고 반짝이는 별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게 첫 밤을 보내고 다시 초원을 향해 길을 나서던 우리 일행의 자동차가 수렁에  30여분 이상 차를 밀고 당기느라 출발이 늦어졌다.

자동차가 낡은 탓인지 펑크는 왜 그리 자주 나는지 세링게티 공원의 휴게실에서 다른 차가 오길 기다리느라 한 시간도 더 넘게 보낸 것을 시작으로 크고 작은 사고가 빈번히 일어나는 중고 랜드로바의 경험은 아프리카 여행의 필수라고 하는 말을 실감하게 했다.

질리도록 뛰어노는 동물들도 심드렁해 질 즈음 우리들은 마사이 마을로 갔다.

사파리에 대한 팁.

늘 세링게티에 동물들이 많은 것은 아니다. 건기가 시작되면 동물들은 케냐의 마시이마라 공원으로 대 이동을 하게 된다. 우리 인간에게는 국경을 넘는것이지만 동물에게는 먹이가 풍부한 우기를  찾아 이동을 하게 되는데 주로 12월부터는 세링게티,6월부터는 케냐의 마사이 마라에서 사파리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세링게티는 주로 가이드들이 야생동물을 찾아 정해진 길을 벗어나지 않아 자연을 훼손하지 않아 아직도 자연그대로 보존되어 있지만 마사이마라는 동물을 찾아 경계 없이..

 

글쓴이 송선순     

 http://www.parangse.kr/




  • profile
    全炫仲 03.18 17:48
    보기에는 저래도 아랬쪽 풀숲에 뱁이 많을것 같은 예감이...ㅎㅎ.
    글을 읽는 자체만으로도 아프리카에 대한 궁굼증이 많이 해소되네요.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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