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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테니스는 신사적인 운동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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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에서 테니스는 신사적인 운동일까

 

동호인들, 테니스 문화 변화 추구해야

축구, 야구에 이어 3번째로 많은 동호인을 보유하고 있는 테니스는 19세기 말 미국선교사들에 의해 처음으로 한국에 소개되었으며 1948년 국제테니스연맹에 정식으로 가입하여 데이비스컵 대회 등에 참가하기 시작했다. 국제무대에 나선 지 벌써 6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엘리트 체육에서 한국 테니스는 위상과 역할이 커지고 있으며 한솔 코리아오픈, 부산오픈 챌린저 등을 통해 발전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그렇다면 아마추어 동호인들의 테니스 문화는 어떨까?

원초적으로 신사적인 운동인 테니스

테니스를 신사(紳士, gentleman)들의 스포츠라고 말한다. “신사적이다“라는 말은 남을 배려할 줄 알고 의협심이 있으며, 예의 범절과 규칙(룰)이 있다는 말이다. 

13세기 영국, 이탈리아, 프랑스 등의 왕실에서  '주드폼'이라 불리며 시작된 테니스는 시대적 변화에 따라 그 룰이 약간 수정되었을 뿐 규범과 전통을 아직도 대부분 이어가고 있다. 

규칙 개정의 대표적인 예는 타이브레이크 시스템의 도입이다. 1969년 윔블던 대회에서 5시간에 걸쳐 113게임을 치른 기록이 있다. 당시에는 게임스코어가 24-22로 두 게임차가 되었을 때 승리하는 어드벤티지 룰이 적용되었었고 전무후무한 기록이 나오는 것이 가능했다. 1971년에 7포인트를 먼저 선취하면 승리하는 타이브레이크 시스템이 도입되기 전까지 3-4시간 정도의 경기가 종종 벌어지곤 하였다.

테니스는 많은 면에서 전통을 이어가고 있으며 상대선수에 대한 예절과 배려를 중요 덕목으로 계승해 나가고 있다. 규칙은 아니지만 선수들이 경기중 지녀야할 덕목을 "the code of tennis"라는 법규로 만들어 프로선수에게도 권장하는 수준에 이르고있다. 

특히 심판이 없이 진행되는 경기에서 이 법규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예를 들어 라인 콜이 미심쩍을 때 "상대방에게 호의적으로 콜"을 하는 항목, "상대방의 멋진 풀레이에 대한 칭찬을 하고 유니폼을 항상 단정하고 깔끔하게 하고 경기에 임해야 한다", "상대방에게 모욕적인 행동은 해서는 안된다"는 항목 등이다.  

이 법규에는  테니스를 직업으로 하는 선수나 테니스를 즐기는 동호인들이 스스로 지켜야야 하는 항목이 상세하고 구체적으로 명시되어있다. 규칙을 넘어 이 정도의 윤리의식을 권하는 테니스는 분명 신사적인 운동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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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니스는 기본적으로 아름답고 신사적인 스포츠다.한솔오픈에서 멋진 샷을 선보인 러시아의 키릴렌코ⓒ http://tenniseye.com 모기님

(법규를 볼 수 있는 인터넷 주소 http://tenniseye.com/xe/rule )

그렇다면 한국에서의 테니스 특히 동호인들에게 있어 테니스는 신사적인 운동일까?

많은 스포츠 동호인들이 초보시절에 테니스만큼 인격적으로 모욕을 느끼는 운동도 없다는 하소연을 한다. 테니스 전문사이트인 전테교(http://tenniseye.com)과 테니스코리아(http://tennis.co.kr)의 게시판에는 이런 하소연을 하는 글들을 쉽게 볼 수 있다.
가장 기본적인 규칙인 풋 폴트(서브시에 라인을 밟거나 넘는 것) 금지 규정을 지키지 않는것, 동호인 대회나 아침저녁으로 운동하는 코트에서는 인, 아웃에 대해 성난 사람처럼 싸울듯한 기세로 따지는 풍경도 낮설지 않다.

자신보다 상급자인 동호인과 경기를 할 때 파트너의 잔소리는 시합중이거나 후를 가리지 않고 들어주어야 하는 넓은 아량을 가져야만 한다. 오늘은 어떤 기술을 연마하고 어떤 파트너십으로 즐겁게 운동을 할까? 라는 생각을 가진 테니스 동호인을 찾아보기 힘든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아직까지 한국 동호인 테니스의 수준이 "신사적이다"라고 말하기 힘든 아쉬운 이유들이다.

 

 

 

 

 

위에 열거한 테니스 배우기의 잔혹성과 폐쇄성으로 테니스 입문을 포기하거나 중도에 다른 운동을 택하는 동호인의 수가 적지않다. 이는 테니스 용품 관련 국내 산업을 위축시키고 나아가 엘리트 선수들의 선택에서 테니스가 멀어지는 결과를 초래해 경제적, 사회적인 손실도 만만치 않다.

초보자들이 테니스를 운동으로 선택하면서 배우기 어려워하고 초보 탈출에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은 자연스럽고도 당연하다. 고차원의 운동이기 때문이다. 운동을 차원적으로 분류를 한다면 가장 높은 차원의 운동은 승마일 것이다. 

 

감정이 있는 생명체인 말을 타고 승부를 갈라야 하기 때문이다. 말과 기수가 한 몸이 되어야만 승리에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는 힘든 운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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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테니스 피플

테니스는 몇 차원 쯤 될까?


선수와 목표가 모두 정지되어 있거나 둘중 한쪽만 이동하는 운동과 달리 테니스는 기본적으로 상대가 훌륭한 샷으로 점수를 내지 못하도록 어렵게 공을 보내는 것이 승리의 조건이다.

100위권의 프로선수들도 상대선수에 따라 승부의 조건이 달라지다보니 낮은 랭킹의 선수가 높은 랭킹으로 올라가기는 하늘의 별따기와 같다. 기본적으로 한 단계 올라서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 운동이 테니스다.

테니스를 직업으로 하며 매일 수백에서 수천개의 서브와 포핸드, 백핸드 샷을 연습하는 프로선수들도 한 단계 올라서기 위해서는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데 하물며 아마추어 초보자는 어떠하겠는가? 더 많은 시간과 연습이 필요한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초보자를 여유있고 따뜻하게 대해주며 지켜보아야 할 이유인 것이다.  

세계적인 테니스 스타 보리스 베커는 “나는 승리하는게 좋다, 패배도 감당할 수 있다. 그러나 가장 좋아하는 일은 테니스 경기를 하는 그 자체이다”라고 말했다. 한국의 테니스 간판인 이형택 선수가 최근 한 인터뷰에서 말한 “이제는 테니스를 즐기고 있다. 즐기는 법을 배웠다”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명언중의 명언이다. 

왜 아마추어 동호인들은 즐기는 테니스를 못하고 신사적인 테니스를 비신사적으로 변형시켜가는데 동조 혹은 묵인하고 있는지 안타까운 마음이 앞선다. 나와 다른 남을 인정해주고 그 인정 속에서 기술의 전수도 이루어져야 하고 전략적 가르침도 있어야 한다.

내가 싫은 일은 남도 싫은 것이 인간사의 자연스러운 법칙이다. 테니스를 사랑하는 대한민국의 동호인이라면 이제는 "스스로가 신사적"인지 검증해 볼 시점이다.

 

 

* 이 기사는 오마이 뉴스,테니스 코리아에 함께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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