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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구력은 서로 닮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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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안양 군포 의왕 과천 지역단체전에 출전한 우리클럽 아저씨들 응원하러 갔다 만난 젊은 엄마가 쉬이 잊혀지지 않아 몇자 적어야겠다.

 

키도 제법 크고 젊은데다 성격도 활달해보이긴 해도 남편도 공 안치고 아직 레슨석달차밖에 안됐다하니그녀 앞에 놓인 갈 길이 멀고 험해 보이는 건 쪽집게도사 아니라도 훤히 내다보일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에게는 이미 테니스중독의 여러 증세와 행태가 두루 나타나기 시작했고 아직 회원가입도 안되어있는 처지에 쌀쌀한 날씨도 아랑곳하지 않고 누구보다 열심히 홈코트 선수를 응원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랬는지 회원들도 이 초보에게 열심히 하라는 따뜻한 빈말을 아끼지않는 눈치였다.(이 정도 구력이면 코트에서는 존재감이 전혀없어서 투명인간 취급당하기 십상일텐데)

 

그래 열심이면 하늘도 감동한다는데 고수도 사람인데 그들 마음 하나 못움직이겠나싶었다.

나이란 말대신 구력으로 살짝 바꿔 구력은 숫자에 불과하다고 강변할 때도 있지만
오랜 구력 앞에 맥없이 고개 떨궈야하는 일을 종종 겪으며 구력이 실체처럼 느껴질 때가 더 많다.


예민하고 난이도 높은 이 테니스란 스포츠에서 구력의 함의는 산전수전 다 겪은 노병이란 느낌 외에 샷이 안정적이고 공이 좀체 안빠지는 철통수비를 펼친다는 것일게다.

공 제법 친 사람들이 공유하는 것들은 무엇일까 떠올리며 두서없는 글을 시작할까하는데 먼저 날씨에 부쩍 관심이 늘면서 기상전문가인양 그날그날의 날씨 뿐 아니라 일주일단위 날씨 어느 달의 평균기온, 강수량, 강설량 ..... 풍속, 구름의 종류 등에 남들보기에 해박하면서 알고 보면 얄팍한 지식을 뽐내려한다....

둘째, 코트 표면에 대한 선호가 생긴다.  


관절친화적인데다 공자국이 딱딱 찍힌다고(이 때문에 무릎팍도사보다 더 신통한 공자국 판별도사도 생겨나고 이놈이라고 우기고 아니 무슨 소리냐 저놈이라고 버티는 라인시비의 원흉)클레이만 좋아하는 사람이 생긴다든지...


웬만한 비가 와도 공 못치는 날이 많고 시도때도없이 부러시하고 라인 그려야지 옷이랑 신발, 양말 더러워지는데다 불규칙바운드로 인한 의외성도 많고, 습한 날에는 공에 흙이 묻어 흙바닥과 동색인 공이 스틸스미사일보다 더 보이지 않는데다 스매시라도 한방때리고 나면 온 몸에 흙을 뒤집어 써서 푸아푸아하며 입속 콧속까지 들어온 흙먼지를 털어내야하고, 게다가 자신의 무기인 서브, 스트로크의 위력이 반감되어 끝없이 공이 되넘어오는 그런 느린 코트를 질색하는 안티도 만만찮다.


하드코트가 대세이고 신발 한 치수 더 큰 놈 사서 바닥에 실리콘 깔창 깔고 양말 한켤레 더 신어주고 스텝만 좀 더 부지런히 밟아주면 오히려 무릎, 발목에 부담이 훨씬 덜하다면서 클레이코트의 단점이 고스란히 산뜻한 하드코트의 장점이 되는지라 주로 젊은 층에서 하드코트예찬론자가 늘어간다.


인조잔디는 웬만한 비가 와도 그치면 거의 바로 공을 칠 수 있어서(이런 코트표면에서 노상 공치는 사람들은 임팩트 때마다 물보라를 일으키는 흠씬 젖은 공을 쳐대는 강력한 손목과 비만 그치면 당장 코트로 달려가는 기민성이랑 스폰지로 고인 물 찍어내는데 전문가적인 소양과 부지런함을 갖춘 사람들이다) 모래를 규사라는 전문용어로 부르며 이것만 쏟아붓듯이 많이 뿌려놓고 자주 부러시해주면 클레이에서처럼 슬라이딩도 할 수 있고 공자국도 찍힌다해서 규사 규사......!!!강조하며 모래를 자주 듬뿍 뿌려주는 코트관리를 요구하게된다.

세번째로 라켓과 줄에 대한 분명한 호불호가 분명해진다.


경제력을 과시하기 위해 자주 라켓을 바꾸는 사람은 별로 없겠지만 자신의 테니스에 대한 사랑과 몰입의 정도를 대내외적으로 입증하려는 의도가 어느 정도 깔렸다는 것은 인정해야한다.


그립잡은 손으로 전해오는 그 짜릿하고 감칠 맛나는 손맛, 파워, 떨림..... 손 한번 잡지 못하고 헤어진 첫사랑에 대한 미련?


암이나 에이즈 등 불치병 치료에서의 매직블렛, 동화 속에 나오는 황금양털, 도시전체를 열 수 있는 만능키처럼 이 세상 어디엔가에는 자기에게 꼭 맞는 그런 마술적인 라켓이 존재하는 데 신이 점지한 그 단하나의 라켓을 찾아 끝없이 방황하는 라켓카사노바와 아직도 이십여년 전 만나 내 맘에 꼭 들고 내 손에 꼭 맞아 절대 떨어질 수도 다른 라켓을 바라볼 맘도 없게 만든 라켓만을 고집하는 라켓모노가모스와(인터넷으로 전지구를 샅샅이 뒤져 과거의 명품이었던 이 라켓을 사서 몇자루씩 비축해놓기도....)


새로 맨 거트라서 더 아깝고 자신이 끔찍이 아끼는 라켓을 빌려줘야하는 사람 속이
꼬이고 비틀리는 줄도 모르고 자긴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이 사람 라켓으로도 쳐봤다가 저 사람 라켓으로도 한두번 쳐보며 ....


이 판에서 굴러먹다보니 주워들은 게 있어 라켓 보면 어느 브랜드 어느 시리즈쯤인지 정도는 척보고 알지만 가는 줄에 지워질 듯 써있는 거트 상품명은 노안 온 눈 찡그리고 멀리두고 그래도 안보이면 주인에게 묻고 라켓 스팩만 따지던 사람 무색할 정도로 거트의 세계는 한층 더 복잡다단오묘해서 돈 쓰고 신경곤두세우며 실험할 일이 무궁하다.

네번째 요즘 많이 부드러워졌어라는 평판이 돈다.


성격은 DNA처럼 변하지 않는거라지만 둥근 공을 닮아가서일까?

 

사람과 어우러져하는 운동을 하다보니 정말 까칠했던 사람도, 말수가 적고 아예 입떼기 싫어했던 무뚝뚝한 사람도, 네트 앞에서 손밀어 악수하기도 머뭇거리던 수줍음이 많던 사람도, 파트너 갈구는 걸로 원성이 자자하던 사람도, 라인시비의 여왕이나 황제라는 별명이 자기인 줄은 꿈도 못꾸었을 사람도, 어느날 보면 우스개를 하고 있고, 한 턱 쏠 줄도 알고, 선선히 양보도 하고, 너그러워지고, 공도 따고, 라인도 긋고, 삽 들고 수레 밀면서 부지런히 눈 퍼나르고, 못친다고 괄시했던 사람 챙겨줄 줄도 알고, 오래살다보니 별일이다싶은 변화된 모습을 보인다.


긴긴 세월이 지났는데 전에도 절대다수가 상종하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은 여전하고
공도 되고 사람도 된(정말 아까운 사람이 세상을 뜨면)코트 사람들은 속으로 혀를 찬다.


귀신들은 뭐하고 있는 건지 아니다싶은 어떤 사람이나 데리고 가지 왜 애꿎게 ......

끝으로 구력이 수십년인 어르신들을 뵈면..


만나고 헤어짐이 속도전처럼 보이는 요즈음 팔장끼고 다정히 내 옆 지나치는 멋쟁이 노부부를 보면 사랑의 영속성을 보는듯해서 가던 길 멈춰 서서 그분들 뒷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게 된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죽고못살 것같았던 사랑은 이미 식어 담담하고 싫은 정 미운 정이 더 많아 자주 토닥거리시면서도 어쩌지 못하고 습관처럼 해로하고 계신 우리네 부모님의 모습인지도...


수십년 공만 쫓다보니 테니스말고는 별다른 취미도 아는 사람도 없어 좋고싫고 생각할 겨를도 없이 눈뜨면 라켓 챙겨 똑같은 코트로 나와서 늘 보는 똑같은 얼굴들과 똑같은 공을 치고 ....


그런데 이런 모습이 나의 미래일까?



[테니스 칼럼,취재,관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