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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Oct 10, 2020

꽃동네를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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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강남구 서초동 185-12번지에 30면 사설 테니스코트가 있었다. 전국체전, 각종 테니스대회가 열렸다. 코트 면수는 30면.  사장은 김석환.

 

테니스 붐이 일던 해 강남 땅에 테니스코트가  생기면서 직장 테니스 동호인들이 코트로 몰려들었다.  매월말 007가방 두개들고 서울 퇴계로 일대에 있는 회사 회계팀에 다니며 직장 테니스 월 코트 사용료를 수금하던 시절이었다. 

 

80년 제5공화국이 들어서면서 강남개발이 시작되었고 강북 부자들은 강남 미나리깡 밭을 사재기했다. 소위말해 강남열풍.  부지가 놀리고 개발이 안되자 정부에선 공한지세를 부과했다.  세를 피하기 위해 지주들은 테니스장을 만들었다. 

 

부산의 어망 제조회사에 연락해 고기잡는 그물로 펜스를 두르고 공사장 쇠파이프로 기둥을 세웠다. 바닥은 고운 황토를 깔고 고속도로 공사용 롤러 차로 반나절 밀어 코트를 다졌다. 

 

86년 서울 송파 올림픽코트가 생기기전 강남의 30면 꽃동네 코트는 신나게 사용됐다.

 

하지만 화무십일홍이 아니랄까봐 강남 테니스장 토지공개념 관련법률 시행을 앞두고 잇따라 문을 닫았다.  테니스장은 지목상 나대지로 그동안 공한지세 비과세대상이었으나 92년부터는 택지소유 상한제에 따른 초과 소유부담금을 물게돼 땅임자들이 서둘러 빌딩을 짓는 등 용도를 바꾸었다. 

 

서초동의 꽃동네·가든, 역삼동의 역삼테니스장 등 고지가 지역 이 일대 10여 곳이  90년 상반기 중 폐업했다.  서울시는 이들 업소에 대한 지원책으로 녹지·국유지에 이전을 유도하고 특별소비세를 면제해줄 것 등을 체육부와 협의, 관계당국에 건의했으나 녹지훼손 등에 따른 여론악화로 이마저 이뤄지지 못했다. 

 

정진화 기술위원은 "철 막대기로 심고 어망으로 펜스를 삼은 꽃동네 코트가 기억난다. 대학시절에 전한국선수권대회. 한국학생선수권대회. 서울 전국체전 대학부 경북대표로 출전했다"며 "당시에 빈터에 테니스코트를 많이 만들었다"고 말했다.  

 

기사=테니스피플 박원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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