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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Billie Weiss/USTA]


US오픈 1회전과 2회전 모두 풀세트 접전을 펼쳤던 로저 페더러(스위스, 3위)가 지난 3일(한국시간) 3회전에서는 달라졌다. 1981년생 동갑내기인 펠리시아노 로페즈(스페인, 35위)와 화끈한 공격 테니스 대결을 펼친 끝에 1시간 47분 만에 6-3, 6-3, 7-5의 승리를 거뒀다. 아래는 경기 뒤 일문일답.



- 지난 두 번의 경기에 비해 훨씬 수월했는지?

= 2세트를 먼저 리드하면서부터 이미 다른 느낌이었다(웃음). 경기 내내 좋은 에너지를 유지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사실 5세트 게임을 두 번이나 하고 나서 가장 큰 걱정은, 혹시나 시동이 늦게 걸리고 그걸 극복하려고 에너지를 쏟는 바람에 오히려 쉽게 지치면 어떡하나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걱정했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순조로운 출발이었다.


첫 번째 세트는 빨리 끝났다. 두 번째 세트는 접전이었는데, 리드를 유지하려 하다보니 서브가 좀 불안정하기도 했다. 세 번째 세트에서도 조금 흔들린 것을 극복하고 좋은 플레이를 했다. 다음 라운드로 진출하기에 필요한 수준의 경기력을 보여준 것 같다.


- 연습 부족과 타이밍이 안 맞는 것에 대해 얘기했었다. 오늘 경기 중에 그런 걱정에서 벗어나 안도할 수 있는 순간이나 스트로크가 있었다면 언제인가?

= 대회 시작 전에 충분한 연습이 필요한 것과 마찬가지로, 새로운 코트와 환경에 대해 쏟아야 하는 절대적 시간량이 있다. 1회전 1세트 전까지 이곳 코트에 적응하기 위한 몇 시간이 필요했고, 허리 문제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할 필요가 있었다. 2회전 때 연습 부족 여파가 드러나면서 동요가 있었다. 이제서야 움직임이 믿을만해졌고, 서브도 제대로 나오고, 지난 일에 신경쓰지 않고 경기에 집중할 수 있게 된것 같다. 마음이 현재에 머물면서 앞을 바라볼 수 있게 되고, 전술에 대해 생각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대회 첫 주를 준비 기간으로 삼고, 서두르지 않으며 접근했던 것이 옳은 판단이었다. 초반부터 너무 밀어붙였더라면 오히려 경기를 그르칠 수도 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누가 알겠는가. 어느정도 모험을 걸었다고 볼 수 있다.


4회전에 접어들면서 상황은 좋아지고 있다. 5세트 게임을 두 번이나 했지만 사실 그리 힘들지는 않았다. 6-1, 6-2 스코어가 많았기 때문에 빨리 진행됐고, 오히려 잘 끝냈다는 사실에 체력적으로 더 자신감을 갖게됐다. 오늘은 무실세트 승리라 기쁘기고 하고, 결정적인 샷들을 많이 만들어내 기분이 좋다.


- 4회전 상대선수인 필립 콜슈라이버 경기를 본 적 있나? 그에 대한 평가는?

= 이번 대회에서는 많이 못 봤다. 밀만과의 경기 중 네 포인트 정도, 그게 다다. 왠지 모르겠지만 내 문제 해결에 집중하다보니 기회를 놓친 것 같다. 하지만 그에 대해서는 잘 안다. 연습 상대로 수없이 함께 공을 쳐봤고, 대회에서도 많이 상대해봤다. 2년 전 이곳에서 1회전인가 2회전에서 맞붙었던 기억이 난다. 


공의 회전이 매우 좋고 탑스핀이 많은 선수다. 한손 백핸드라 특히 유심히 보게 됐다. 체력 훈련을 열심히 한 듯, 항상 좋은 컨디션을 보였다. 물론 1회전이 아닌 4회전에서 맞붙는 것은 다른 얘기가 될 것이다. 이전 경기들을 잘 싸우고 올라왔으니 자신감도 붙었을 테니까 말이다.


- 이변이 속출하면서 자연히 당신과 라파와의 준결승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는지?

= 그렇지는 않다. 하지만 시드 선수들이 많이 탈락한 지금, 자연스레 드는 생각은 내가 이변의 주인공이 되고 싶지는 않다는 것이다. 걱정은 덜 되지만 그럴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에 자꾸 의식은 하게 된다.


오랫동안 US오픈에서 라파와 나의 매치는 성사되지 않았다. 아슬아슬하게 빗겨나간 적이 많았다. 하지만, 특별히 부담을 느낄 필요는 없다고 본다. 대진표의 아래쪽에서 새로운 그랜드슬램 결승 진출자가 나온다는 것 자체가 아주 흥미로운 일이다. 위쪽에는 상위 선수들이 많이 자리했었는데 그마저도 많이 사라졌다. 내가 아직 남아있다는 사실에 기쁘고 아주 흥미진진한 토너먼트가 될 것이라 본다. 라파는 오늘도 아주 잘 싸웠다. 우리가 준결승에서 맞붙게 될지, 사실 나도 매우 궁금하다.


- US오픈에서만 77경기 출전에 69승이라는 남자선수 최고기록을 가지고 있다. 90%에 가까운 승률이다. 아서 애쉬 스타디움에 남겨지는 당신의 족적이 선수 경력에 가지는 의미는 무엇인가?

= 내가 현역으로 뛰는 동안은 기록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하지 않는다. 기록이 언급되면서 자부심을 갖게되기는 하지만, 동시에 유지하기는 어렵겠다는 생각도 든다(웃음).


애쉬 스타디움에서 그렇게 자주 경기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는 데 의미를 더 두고싶다. 20주년을 맞았다고 알고 있는데, 내가 처음 이곳에 온 게 1998년이니 나와 함께 자라난 코트라고 해도 되겠다. 그러니 이곳에 나의 기록을 남긴다는 것은 정말 영광이 아닐 수 없다.


마르티나 힝기스나 윌리엄스 자매, 또 많은 훌륭한 선수들이 야간조명 아래 경기하는 것을 보면서 자랐다. 언젠가는 이곳에서 뛰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이렇게 많은 기회가 주어질 줄 생각도 못했다. 센터코트에 야간경기를 하러 걸어나올 때마다 얼마나 특별함을 느끼는지 모른다. 요새는 루이 암스트롱에서는 별로 기회가 없었는데, 그곳도 내가 즐겨 경기하던 코트다.


- 2년 전 인터뷰에서 공격 테니스의 부활에 대해 의견을 제시한 적이 있다. 2년이 흐른 오늘, 공격적 테니스가 선수들 사이에서 충분히 전개되고 있다고 평가하나?

= 톱플레이어들은 여전히 베이스라인 가까이에서 플레이하는 경우가 많다. 내가 생각하는 공격 테니스는 네트로 접근해 발리로 끝내는 것이다. 네트로 나오는 선수들이 많기는 하지만, 대부분 쉬운 포핸드 발리나 스매싱을 하기 위한 해치우기용이다. 네트 높이나 네트 아래에서 발리를 해야 하는데, 대부분 선수들이 자신감이 부족해서인지 많이 시도를 안 한다. 요새는 125마일(약 201km)이 넘는 서브도 흔해질 만큼 강력해지고 리턴도 그 어느 때보다 훌륭한 걸 보면, 많이 안타까운 부분이다.


다른 기술들과 잘 엮어내면 충분히 가능할 텐데 당분간은 변하기 어려울 것 같다. 주니어 레벨의 코치들이 특히 신경쓰면 좋을 부분이다. 1시간 훈련이라면 20~30분 정도는 발리에 할애해서 완성도를 높여야 한다. 완성되지 않은 발리는 별 효력이 없다. 차라리 베이스라인에 머물면서 지칠 때까지 때려대는게 낫다. 실수로 연결되는 경우가 많으니 좋지는 않지만 말이다.


- 3주 뒤에 프라하에서 열리는 레이버컵 대회에 출전할 계획이다. 라파와 같이 ‘팀 유럽’ 에 속하는데, 어떻게 함께 전략을 짤지 궁금하다.

= 수년 동안 라이벌 관계였는데, 마침내 좋은 변화가 왔다(웃음). 라파는 훌륭한 챔피언이자 좋은 투어 친구, 그리고 가장 강력한 라이벌이다.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그를 도와주기도 하고 그의 도움도 기꺼이 받을 것이다.


그와 더불어 비외른 보리와도 함께 시간을 보내게 되어 설레인다. 보리는 공식석상에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고 만나도 잠깐이기 때문에, 이번에 그와 함께하는 특권을 얻었다 할 수 있다. 그는 나에게 너무나 존경스러운 존재이다. 과거로 돌아가 경기를 하고 싶은 선수가 있다면 두말 할 것도 없이 보리다. 그가 경기하는 모습이나 전술은 가히 최고라 할 수 있다.


동시에 팀 내 젊은 선수들과도 협력해서 좋은 승리전략을 짜냈으면 좋겠다. 티켓이 완판됐다고 들었다. 몇 년 전 데이비스컵에서 경기해봤던 장소이고, 아주 성공적인 이벤트가 되리라 기대한다.


기사=테니스피플 이은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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