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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페더러와 연습을 한 샤포발로프(오른쪽 두번째). 사진출처:샤포발로프 페이스북


최근 막을 내린 로저스 마스터즈 대회의 핫 이슈였던 캐나다 리치몬드힐 출신의 데니스 샤포발로프가 14일 발표된 ATP투어 랭킹에서 76계단이나 상승하며 ‘movers of the Week’에 선정되었다.


올해 초 250위에서 시작해 시즌 초 목표를 랭킹 150위 진입에 둘만큼 신인이었던 그는 투어대회 통산 3승의 전적과 와일드 카드 출전권을 들고 로저스컵 본선 무대에 올랐다. 하지만 로저스컵 경기가 끝난 후에는 1990년 이후 1000 마스터즈 최연소 준결승 진출자, 세계 랭킹 67위, ATP 밀란행 레이스 랭킹 4위에 오르며 단숨에 신예 테니스 스타로의 탈바꿈에 성공한 것이다.


무엇보다 대회 3회전에서 2014년 7월 이후 처음으로 세계 랭킹 1위 탈환을 목전에 두었던 나달을 3-6, 6-4, 7-6 으로 물리치고 역전승한 주인공이 되면서 샤포발로프에 대한 이목이 집중될 수 밖에 없었다.


나달은 경기 후 자신에게 “시즌 최악의 패배” 를 안겨준 캐나다 틴에이저가 “위대한 선수가 될 요소를 두루 갖춘 엄청난 잠재력을 가진 선수” 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런데 샤포발로프와 나달의 만남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것이 발빠른 기자들에 의해 밝혀졌다. 때는 9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 2008 로저스컵이 열리던 토론토. 당시 9살이던 샤포발로프는 3회전 경기에 앞서 5분간 이벤트 매치를 하기 위해 초청된 어린이 선수였다.


  

불행히도 앞 경기가 지연되며 어린이 매치는 불발되었지만, 선수들의 마스코트로 등장한 샤포발로프는 러시아의 이고르 앤드리브, 라파엘 나달과 나란히 사진촬영 포즈를 취했다. 당시 세계 2위에 올랐던 나달이 그해 프랑스 오픈, 윔블던 우승, 올림픽 골드 메달에 이어 그 해 세 번째 마스타즈 우승 우승 트로피를 가져가던 한마디로 펄펄 날던 무대였다.


“그날 나달에게 내가 공 치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이벤트가 취소되는 바람에 어린 마음에 겸연쩍었던 기억이 있다. 사진촬영은 잊고 있었는데 이렇게 보여주니 기억이 되살아 난다.”


그로부터 9년 후, 샤포발로프는 왼손 스트로크를 주고 받으며 나달과 3세트 접전을 펼치는 것으로도 모자라 결국 그의 발목을 잡는 위협적인 상대선수로 나달과 다시 조우한 것이다. 요즘 유행어로 “이거 실화냐?” 를 연발할 만한 사건이었다.


  

 

이렇게 흐믓한 역사도 있지만 샤포발로프에겐 지우고 싶은 흑역사도 있다.
지난 2월 캐나다 오타와에서 열린 테이비스 컵 영국팀과의 경기 중이었다. 지고 있던 3세트에서 게임 포인트를 내준 후 화를 못이긴 그가 날려버린 공이 그만 아르나우스 가바스 체어 엄파이어의 왼쪽 눈을 가격해버린 것이다.


스스로도 놀라서 입을 막고 충격에 빠졌던 당시 17세 샤포발로프는 팀의 불명예스러운 패배, 7,000달러의 벌금 이라는 결과에 고스란히 책임져야했다.


“오늘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나의 행동에 너무나 부끄럽고 당황스럽다. 우리 팀과 나라까지 망신시켜 정말 끔찍하다. 이런 행동은 다시는 없을 거라고 약속하겠다. 큰 교훈을 얻고 더 성숙해질 수 있는 기회로 삼겠다.”



프랑스로 돌아간 아르나우스 가바스 엄파이어는 눈아래 뼈 골절 수술을 받아야 했지만 다행히 시력을 위협하는 심각한 손상 없이 회복돼 올 3월 다시 코트에 복귀했다. 샤포발로프는 사건 직후부터 오히려 자신을 위로하고 ‘쿨’ 하게 대해준 가바스에게 SNS축하 메세지를 보냈었다.


“만일 심판의 상태가 더 나빴더라면 나는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하고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저지른 행동을 지워버릴 수는 없다. 내 실수에 똑바로 직면하고 다시는 반복하는 일이 없도록 노력하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프로가 되기로 결심한 이후 가장 큰 성장을 했던 경험이었다. 나는 테니스를 너무나 사랑하기에 매일 코트에 나가 연습하는 것 밖에 없었다.”



5월 챌린저 크로니클에서 밝혔던 대로 이 사건은 이제 막 프로무대에 데뷔한 스포츠 선수에겐 견디기 뼈아픈 실수였지만, 동시에 결과에만 연연했던 조급한 마음에 경종을 울리는 값진 기회가 될 수 있었다.



로저스컵 준결승 우승 후 알렉산더 즈베레프는 “오늘의 경기는 앞으로 서로 상대하게 될 아주 아주 많은 경기들의 시작에 불과” 하다며 샤포발로프에게 미래를 이야기했다. 테니스의 새역사를 쓴다는 표현은 프로선수가 어느 큰 대회에 몇 승을 거두는가에만 국한될 필요는 없다. 라켓을 잡기 시작하는 순간 테니스 개인사는 시작되고 매일 새로 쓰여지는 것임을 기억해야 하겠다.


테니스 피플 이은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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