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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욘 보그

동계 스포츠의 강국 스웨덴이 오늘날 테니스의 강국으로 우뚝 선 것은 불과 20여년 전이었다. 스웨덴은 현재 노만, 요한슨, 엔크비스트, 그리고 복식의 강자인 비요르크만과 신세대 기수인 빈시게라 등 호화군단을 자랑하고 있고 80년대엔 매츠 빌란더와 스테판 에드버그가 메이저 타이틀을 여러 번 석권하여 스웨덴의 위상을 드높인 바도 있다. 그러나 1970년대 초까지 스웨덴은 테니스의 불모지와도 같은 나라였다. 비록 스벤 다비드손(Sven Davidson)이 스웨덴 출신으로서 프랑스오픈(1957년)을 한차례 제패한 바 있지만 그때까지 스웨덴의 인기 스포츠는 전통적으로 스키를 중심으로 한 동계스포츠였고 테니스는 비인기종목으로서 관중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였다. 바로 이때 오랫동안 이어져 내려온 미국-호주의 구도에 식상함을 느낀 테니스 팬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던져준 이가 있었다. 미국의 지미 코너스가 호주에게 빼앗긴 자존심을 회복하려 했을 무렵인 70년대 초반, 스웨덴의 한 10대 소년이 이후의 세계 남자 테니스 판도를 바꾸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비욘 보그(Bjorn Borg, 1956- )
비욘 보그는 1956년 6월 6일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에서 멀지않은 한 작은 도시 쇠데르텔리에(Sodertaljie)에서 태어났다. 유년기의 그가 테니스에 현혹된 것은 아주 우연한 계기에 의해서 였다. 그가 9세 되던 해 어느 날 그의 아버지가 소규모 탁구대회에서 상품으로 받은 테니스 라켓을 집에서 우연히 보게 된 어린 비욘이 아버지로부터 라켓을 건네 받고서 테니스와의 첫 만남을 이룬 것이다. 당시 아이스하키에도 재능이 있었던 어린 비욘은 방과후 매일 3시간동안 훈련해야 하는 아이스 하키를 그만두고 하키에서 배운 기술을 테니스에 접목시키기 시작한다. 비욘보그의 투핸드 백핸드와 육중하고 날카로운 톱스핀 기술의 원천은 바로 여기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손목의 유연성을 확보하기위해 탁구선수들의 기술들을 눈여겨보기 시작한 것도 이때였다. 하지만 아버지는 어린 비욘이 테니스 선수로 성공하리라고 믿지 않았다. 당시 눈과 얼음의 나라 스웨덴에서는 비인기종목인 테니스보다는 스키나 아이스하키 등의 동계종목이나 축구와 같은 인기스포츠에서 성공할 확률을 더 높게 보았기 때문이다.

어느날 전직 스웨덴 데이비스컵팀 감독이였던 레나트 베렐린(Lenart Bergelin)은 우연히 한 초등학교에서 비욘 보그의 플레이를 눈여겨 보게 된다. 베렐린은 여태껏 주니어 선수들에게서 보지 못한, 양손 백핸드와 포핸드로 처리하는 엄청난 톱스핀을 비욘 보그에게서 발견하고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의 강력한 톱스핀에 타점을 찾지 못한 상대자들은 속수무책이었던 것이다.

비욘보그가 13세 되던 해, 전국 18세 이하 주니어 대회에서 자신보다 너댓살이나 많은 형들을 물리치고 주니어 챔피언에 오르면서 ‘테니스 신동’의 기적은 시작된다. 이미 스웨덴의 모든 주니어 대회를 석권하고 주니어 중에서 적수가 없다고 판단한 비욘 보그는 이듬해 국제 무대에 나서 미국 마이애미의 오렌지 보울 주니어 대회에서도 돌풍을 일으키며 국제 주니어 타이틀을 획득한다. 그의 나이 겨우 14세였다. 오렌지 보울에서의 우승이 우연이 아니라는 사실은 그가 1971년 윔블던 주니어 대회에서 또다시 우승하면서 여실히 증명된다. 이 때부터 세계 테니스계는 금발의 테니스 신동 비욘 보그를 주목하게 된다. 보그는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이들만을 상대하여 승리했으며 1977년 21세에 이르기까지 자신보다 나이가 어린 선수에게는 한번도 패한 적이 없었다. 그의 나이 16세인 1972년에는 비로소 스웨덴 데이비스컵 대표에 발탁, 스웨덴 역사상 가장 어린 나이에 국가대표가 되었다.

1974년 그의 나이 만18세를 코앞에 두었을 무렵, 4대 메이저 대회를 제외하고 가장 규모가 컸던 이탈리아 대회에서 최연소의 나이로 우승하면서 본격적인 타이틀 장정이 시작된다. 그는 당해 프랑스 오픈에서 클레이코트의 전문가였던 스페인의 마누엘 오랑테스(Manuel Orantes, 75년 US오픈 우승자)와 결승에서 만나 두세트를 2:6, 6:7로 선취당해 패색이 짙었지만 특유의 톱스핀을 앞세워 나머지 세트를 6:0, 6:1, 6:1로 가볍게 제압, 자신의 첫 메이저 타이틀을 획득하였다. 이 역시 프랑스오픈 사상 최연소 타이틀이었다.(후에 매츠 빌란더와 마이클 창에 의해 갱신됨) 이듬해에도 아르헨티나의 길레르모 빌라스(Guillermo Vilas)를 세트 3:0으로 일축하면서 프랑스오픈 2연패에 성공하였고 1976년에는 전 세계랭킹 1위 루마니아의 일리 나스타세를 제압하고 처음으로 윔블던 왕자에 올랐다. 이후 77, 78, 79, 80년에 윔블던 연속 우승에 성공, 오픈시대 이후 최초로 윔블던 5연속 패권을 차지하였으며 78년부터 81년까지 프랑스 오픈에도 4연속 우승하면서 도합 6회의 프랑스오픈 타이틀이라는 유례없는 기록을 작성하게 된다. 특히 그의 강력한 라이벌로 떠오른 존 메켄로를 상대로 5세트(1:6, 7:5, 6:3, 6:7, 8:6)접전 끝에 승리한 80년 윔블던 결승은 4세트의 타이브레이크가 16:18로 끝났을 만큼 윔블던 사상 최고의 라이벌 대결이었다.

비욘 보그의 메이저 타이틀 기록은 총 11개 -당시까지 로이에머슨(12개), 로드 레이버(11개)에 이어 공동2위 기록- 이다. US오픈 결승에도 4번이나 올랐지만 그의 라이벌인 지미 코너스와 존 메켄로에게 각각 2차례씩 빼앗겨 US오픈의 타이틀은 없고 호주오픈도 1974년 단한차례만 출전하였기 때문에 호주오픈 타이틀도 없다. 단지 윔블던과 프랑스 오픈에만 우승했을 뿐인데도 많은 테니스 전문가들이 그를 역대 최고의 선수라고 꼽는 데는 몇가지 이유가 있다. 그는 먼저 미국이나 호주처럼 선진 테니스 환경에서 자란 선수가 아니었다. 눈덮인 환경이 대부분인 척박한 토양 스웨덴에서 테니스를 시작하였고 테니스 라켓 제조기술의 향상으로 남들이 점점 가볍고 견고한 메탈 프레임 라켓을 사용했을 때도 육중한 우드라켓(wood raquet) 하나만을 고집하여 세계를 평정했다는 사실은 높이 평가할 만 하다.

그는 또한 톱스핀이라는 기술을 후세의 세계적 선수들에게 일반화시킨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물론 이전에도 톱스핀을 사용한 선수들이 많았고 비욘보그도 이전의 로드 레이버의 톱스핀 기술을 모델로 삼았지만 우드라켓에 80파운드에 달하는 텐션으로 스트링을 매 톱스핀의 가공할 위력을 처음으로 선보인 인물이 바로 비욘 보그였던 것이다. 이뿐 아니라 3연속 패권을 누리기도 힘들다는 프랑스오픈에서 최초로 4연패(78-81)를 이루었고 윔블던 5연패(76-80) 또한 기록적인 것이었다. 클레이 코트에서 치러지는 프랑스 오픈과 잔디에서 치러지는 윔블던을 동시에 석권했다는 것은 간과할 일이 아니다.

<해설: 통설대로 베이스 라이너가 유리한 프랑스오픈과 서브 앤 발리형이 유리한 윔블던은 완전히 대조적인 경기 스타일로 게임을 운영해 나아가야 한다. 프랑스오픈과 윔블던의 한해 동시 석권(78, 79, 80)은 69년 로드 레이버 이후 지금까지 비욘 보그가 유일하다. 코너스, 메켄로, 랜들, 빌란더, 에드버그, 베커, 샘프라스도 이루지 못했으며 안드레 애거시가 유일하게 서로 다른해(92년 윔블던, 99년 프랑스오픈)에 성취한 바 있다.>

더욱 더 놀랄만한 것은 그가 1982년 26세의 나이로 은퇴하였다는 사실이다. 생애 총 11개의 메이저 타이틀(역대 3위)과 62회에 이르는 통산 타이틀(역대 5위), 그리고 총 109주의 랭킹 1위(역대 5위)라는 위업을 단지 26세 이전에 거두었다는 사실은 다른 인물들과 비교할 바가 못된다. 게다가 이러한 업적들은 초기에는 지미 코너스, 후기에는 존 메켄로라는 두 거물들의 협공 속에서 거둔 것이기 때문에 더욱 돋보인다고 할 수 있겠다.

그가 스웨덴 테니스에 끼친 영향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비욘 보그를 필두로한 스웨덴 데이비스컵 팀이 1975년 대망의 첫 우승을 기록하고 그가 프랑스오픈과 윔블던을 연속으로 제패하자 스웨덴에서는 때아닌 테니스 붐이 일어났다. 스웨덴 테니스협회는 역사적 재정비 작업이 이루어지게 되며 유능한 선수들을 발굴하기 시작하였다.. 이후 매츠 빌란더와 슈테판 에드버그라는 걸출한 스타가 탄생한 배경 역시 전적으로 비욘보그의 영향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보그 덕분에 스웨덴 테니스는 바야흐로 황금기를 맞게 된 것이다.

1981년 윔블던 결승과 US오픈 결승에서 존 메켄로에게 연패당한 이듬해 은퇴를 선택한(공식 은퇴발표는 1983년) 비욘보그는 ?은퇴 이유는 자신의 이름을 딴 디자인 라벨 그룹(Design Label Group)의 사업에 매진하기 위함이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스웨덴 언론의 각종 루머에 시달려야했다. 이미 18세부터 스웨덴을 떠나 소득세가 없는 모나코의 몬테카를로에 정착했었던 보그는 그동안 벌어들인 소득에 대해 언론으로부터 집중추궁을 받기도 하였고 그가 이태리 밀라노에서 수면제를 먹고 자살을 기도했다는 허무맹랑한 신문보도 때문에 소송에 휘말리기도 하였다. 언론의 근거없는 추궁은 계속되어 나중에 그가 컴백할 당시(1991년 다시 자신의 우드라켓을 들고 컴백하였지만 성과는 거두지 못했다.)에도 재산을 탕진하고 재정상의 이유 때문에 테니스를 재개한다는 루머에 시달리기도 하였다. 그가 현재 스톡홀름 주변의 작은 섬 잉가로(Ingaroe)에 정착한 이유도 이러한 시달림에서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1980년 루마니아의 테니스 선수인 마리아나 시미오네스쿠(Mariana Simionescu)와 결혼 하여 화제였으나 2년 반의 결혼생활을 마감하고 이혼하게 되었다. 1983년엔 <지미 코너스-비욘보그의 라이벌 이벤트>에 따라 한국을 방문한 바 있으며 1987년엔 테니스 선수들의 꿈인 명예의 전당에 오르기도 하였다. 그는 현재 왕년의 라이벌 지미 코너스, 메켄로와 함께 각종 시니어 투어를 통해서 올드팬들에게 멋진 경기를 보여주고 있다. 잘생긴 외모, 금발의 긴머리에 헤어밴드를 착용하고 테니스 스타들의 패션에도 바람을 일으켰던 70년대의 비욘보그. 그는 아마도 테니스 팬들에게 오랫동안 전설중의 전설로 남을 것이다.

<필자 후기>
<테니스의 전설들>은 점점 종반으로 다가가고 있습니다. 존 메켄로와 이반 랜들, 마르티나 나브라틸로바와 슈테피 그라프가 남았습니다. 원래는 슈테판 에드버그와 매츠 빌란더, 보리스 베커도 포함시켰지만 <전설>에 포함시키기 미흡한 점이 있어 삭제하였습니다. 특히 보리스 베커는 은퇴후의 부도덕한 행위(혼외정사, 탈세 등)로 <테니스의 전설들>에 등장시키기 어렵다는 판단이 들었구요. 다음편에는 나브라틸로바, 혹은 메켄로로 이어집니다. <제6편>과 <제7편>에서 글을 남겨주신 기림님, <8편>의 이인수님, <9편>의 양승찬님, 그리고 졸작을 master piece라고 보아주신 이정우님께 감사드리며...

    


  • 유 화진 10.14 12:07
    "비욘 보그의 테니스 비법"이란 책을 학교 도서관에서 발견했을때 한권의 비급을 얻은듯 기뻣습니다.^^*
  • 여진아빠 04.25 17:47
    비욘보그.. 제가 어렸을때 보리라고 하는 테니스선수가 이선수 였군여. 랭킹 1위라고 몇번 본거 같습니다. 존경스럽군여.
  • KyuYoung Park 03.01 13:02
    뭐니뭐니해도...맥켄로와의 윔블던 결승 4세트 끝없는 타이브레이크 명승부가 제일 기억에 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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