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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 에버트(여)

70년대 초 지미 코너스가 두각을 보일 무렵까지 여자 테니스 무대에서는 호주의 마거릿 스미스 코트와 미국의 빌리 진 킹이 주요 메이저 타이틀을 독식하다시피 하였다. 이어서 여자 테니스의 2인 지배체제에 도전장을 내밀고 새롭게 가세한 인물들은 호주의 이본 굴라공과 미국의 크리스 에버트였다. 그러나 이본 굴라공은 자국에서 열리는 호주오픈(74, 75, 76, 77 우승)을 제외하고는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하고 번번히 결승의 문턱에서 좌절해야했으며 스미스 코트에 이은 호주의 전성기를 구가하는데 실패하고 말았다. 이제 관중들의 시선은 빼앗긴 자존심을 회복한 미국의 빌리진 킹에 이어 70년대 초부터 80년대 말까지 여자테니스를 주도해온 새로운 인물에게 모아졌다. 그녀가 바로 역대 여자 테니스인들 중 미국인에게 가장 인기있었던 크리스 에버트였고 그녀는 70년대 말부터 등장한 체코출신의 마르티나 나브라틸로바(후에 국적을 미국으로 바꾸었다.)와 함께 역사상 최고의 라이벌관계를 이루며 여자 테니스의 역사를 다시 쓰게 된다.


크리스 에버트(Chris Evert, 1954- )
그녀는 1954년 12월 21일 미국 플로리다주 로우더데일(Lauderdale)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 지미 에버트(Jimmy Evert, 1947년 카나다 오픈 챔피언 출신)가 소유한 테니스 라켓을 장난감 삼아 놀기 좋아했고 이때부터 아버지는 딸아이의 성장 가능성을 믿고 어린 크리스를 지도하기 시작하였다. 아버지는 본격적으로 딸아이를 지도할 무렵부터 그녀가 원핸드 백핸드에 길들여지기를 바랬다. 하지만 체구가 작고 힘이 약했던 크리스는 투핸드 백핸드를 고집하게 되며 오랫동안 길들여진 그녀의 투핸드 백핸드로 각종 주니어 대회에서 성과를 보이자 아버지도 더 이상 반대할 수는 없었다.

크리스는 아버지의 지도하에 일취월장하여 1970년 노스케롤라이나의 한 토너먼트에서 여자 테니스의 역사적 사건을 만들어 낸다. 당해년도에 4대 메이저 대회를 모두 석권하고 그랜드슬램의 위업을 달성한 바 있는 세계 랭킹 1위 마거릿 스미스 코트의 난공불락에 가까운 아성을 만15세를 겨우 넘긴 크리스 에버트가 무너뜨렸던 것이다. 7:6, 7:6(1970년부터 Tie-Break 적용)으로 끝난 이 경기는 향후 여자 테니스의 지각변동을 예고하는 일대의 사건이었다. 그녀는 이 사건이 있은 3년 후 프랑스오픈과 윔블던에서 준우승하면서부터 메이저 타이틀의 발판을 마련하기 시작하였고 그 이듬해인 1974년 프랑스오픈과 윔블던을 연달아 제패, 크리스 에버트의 전성시대가 도래하였음을 알리게 되었다.

1974년부터 1986년까지 그녀가 거둔 메이저 타이틀은 18개(호주오픈 2회, 프랑스오픈 7회, 윔블던 3회, US오픈 6회)見?준우승만도 16회에 이른다. 이는 메이저 단식무대에서 자그마치 34번이나 결승에 올랐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특히 프랑스오픈 7회 우승(74, 75, 79, 80, 83, 85, 86)은 역대 최다 우승으로 기록되었고 74년부터 86년까지 13년간 매년 최소 한 개씩의 메이저 타이틀을 획득한 것도 그녀 이외엔 아직까지 아무도 이루지 못한 업적이다. 또한 71년부터 83년까지 13년간 모든 메이저 대회에서 4강이상의 성적을 거두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녀가 테니스의 전설적 인물로 남기에 충분하다 할 수 있겠다.

여자 테니스계에 남긴 그녀의 눈부신 업적은 메이저 대회 뿐만이 아니다. 70년대 초반부터 80년대 후반까지 거의 20년간 현역 선수생활을 했던 그녀는 메이저 타이틀을 포함, 총 157회의 우승을 기록(이후 167회를 기록한 나브라틸로바에 의해 갱신됨)하여 당시까지 최다 타이틀을 획득한 선수가 되었으며 총 1309승 146패(승률 89.9%)의 전적을 남겨 최고 승률을 기록한 선수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75년부터 81년까지 7년 연속 세계랭킹 1위에 올랐으며 특히 72년부터 89년까지 장장 18년간 4위를 벗어난 적이 없는, 최장의 상위랭커를 기록한 사실도 테니스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업적이라 할 수 있다.

(이건 보너스 ㅋㅋ)

70년대 후반부터 여자 테니스의 양상은 그녀와 나브라틸로바의 대립구도였다. 오랜기간동안 이루어진 그녀와 나브라틸로바의 라이벌간 매치는 세계 테니스 매니아들의 폭발적인 관심을 끌게 되어 여자 테니스 또한 같은 시기 남자 테니스의 지미 코너스-비욘 보그-존 메켄로의 라이벌 매치와 함께 최고의 라이벌 전성기를 구가하였다.

그녀는 자신이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었을 때인 1979년 동료 테니스 선수인 존 로이드(John Lloyd)와 결혼하여 이후 크리스 에버트 로이드라는 이름으로 대회에 출전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녀는 존 로이드와 8년간의 결혼생활 후 파경을 맞게 된다. 이혼의 아픔을 뒤로한채 1988년에는 선수로서 유일하게 찾아온 올림픽 메달의 꿈을 안고 서울올림픽에 출전하게 되지만 메달 획득에는 실패하고 말았다. 그녀는 곧이어 동계올림픽 스키 선수출신인 앤디 밀(Andy Mill)과 재혼, 90년 이후 세 아들을 낳고 현재 플로리다주 보카 레이턴(Boca Raton)에서 살고 있다.

1995년 명예의 전당에 오르게된 그녀는 현재 NBC-TV의 스포츠 해설가로도 맹활약하고 있으며 보카 레이턴에서 열리는 “크리스 에버트 테니스 클래식”에 매년 초청인사로 초대되고 있기도 하다. 또한 IMG그룹과 합작하여 그녀의 아버지와 남편, 그리고 자신이 공동 운영하는 <크리스 에버트 테니스 아카데미>를 설립, 유능한 주니어들을 양성하고 있다. 현재 빌리 진 킹, 팸 슈라이버, 나브라틸로바와 함께 선수 출신으로서 미국 여자 테니스를 움직이는 4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제9편 끝> 곧이어 제10편에서는 비욘 보그가 소개될 예정입니다.

    


  • Attila 07.18 13:46
    정말 잘 읽었습니다^^ 크리스 에버트란 선수는 정말 대단한 선수네요...
    동영상 자료실에도 크리스 에버트의 레슨이 있는데... 정말 작은 몸집에서 큰 파워가 느껴졌습니다...
    얼굴도 연예인 같이 이쁘구... 대단합니다^^ 그리고 정말 잘 읽었어요...
  • 문병진 09.03 13:31
    테니스 정말힘드네요
    기술
    체력
    그리고 ?
  • 비연 11.10 16:03
    테니스는 자신의 핸디캡을 극복할때마다 엄청난 쾌락(?) 기쁨을 맞 보실수 있습니다.
  • 빵균ª_ª; 01.11 19:10
    이쁩니다. 하하하 져는 무족건 서양사람이면 이뻐보입니다. -_-;
    살찐거 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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