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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 레이버

매년 초 호주오픈이 열리는 맬버른 경기장. 그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여러 해동안 센터코트로 사용해 왔던 한 웅장한 경기장을 발견하게 된다. 그 경기장의 이름은 로드 레이버 아레나(Rod Laver Arena). 호주인들은 60년대 남자테니스계를 평정했던 자국의 전설적인 인물 로드 레이버를 기리기 위해 그의 이름을 딴 경기장을 만들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로드 레이버는 어떠한 전설을 남겼길래 로이 에머슨(“테니스의 전설들 제4편” 참조)과 함께 호주 테니스의 아버지로 추앙받고 있을까. 그것은 최초로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돈 벗지(제2편 참조) 이후 사상 두번째로 그랜드슬램의 자리에 오른 업적, 호주인으로서는 최초로 그랜드슬램을 차지했던 업적, 그리고 남녀선수 통틀어 사상 최초이자 현재까지 유일무이하게 두번이나 그랜드슬램의 자리에 오른 업적 때문일 것이다.

로드 레이버(본명: Rodney George Laver, 1938- ).
그는 1938년 8월 9일 호주 퀸스랜드의 록햄턴(Rockhamton)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잔병에 시달려 병원을 자주 드나들었었고 체구 또한 스포츠맨으로 성장할 정도가 아니었기 때문에 주위에서는 그가 후에 세계 테니스를 평정하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가 소년기 자신의 잔병치레를 극복하기 위하여 운동에 전념하기로 하였고 마침 테니스 코트를 소유하고 있었던 그의 부모님(부모 역시 론테니스 선수 출신이다.) 덕택에 테니스에서 천재적 재능을 발휘하기에 이른다. 이후 그의 부모님은 당시 호주 최고의 코치였던 해리 호프만(제4편 참조)에게 자기 아들의 천재성을 문의하게 되며 호프만의 눈에 든 레이버는 15세에 이르러 자신이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고 호프만의 제자로 들어와 본격적인 테니스 수업을 받게 된다.

호프만의 코치하에서 레이버는 고속성장을 이룬다. 특히 레이버의 연습장면을 꼼꼼히 체크해 온 호프만은 레이버가 왼손잡이 선수로서 당시 보기 드문 강서브를 선보이자 그를 두고 ‘록햄턴의 로켓(Rockhamton Rocket)’이라 불렀으며 이 닉네임 ‘로켓’은 이후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기도 하였다. 레이버는 17세에 이르러 호주의 국가대표에 발탁되며 해외 첫 원정경기에 나서(미국 주니어 챔피언쉽) 우승하는 등 앞으로의 ‘큰 일’에 대비하게 된다. 1959년 그의 나이 21세에 프랑스 오픈 준우승(혼합복식), 윔블던 준우승(단식, 혼합복식), 호주오픈 우승(복식)과 준우승(혼복)의 성적을 이뤄내면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으며 1960년에 대망의 첫 메이저 타이틀(1960년 호주오픈)을 따내면서 그는 호주 테니스계의 스타로 떠올랐다. 그는 이때부터 호주의 또다른 수퍼스타 로이 에머슨과 10년간 라이벌 관계가 된다.
61년 윔블던에서 자신의 두번째 메이저 타이틀을 따낸 그는 그 이듬해인 62년 호주테니스인들의 숙원이었던 그랜드슬램 달성에 성공, 역사상 두번째, 남녀 통틀어 세번째의 그랜드 슬래머가 된다.(38년 돈 벗지, 53년 모린 코놀리(여))

그의 그랜드스램 위업은 호주인으로서는 최초일뿐 아니라 테니스 라이벌 관계에 있는 미국에 대한 선전포고와도 같은 대 사건이었다. <설명: 이때부터 세계 남자테니스는 호주가 완전히 장악, 로드 레이버, 로이 에머슨, 켄 로스웰, 존 뉴컴으로 이어지며 최초의 흑인 메이저 우승자인 미국의 아더 아쉐(Arthur Ashe, 68년 US Open, 70년 호주오픈, 75년 윔블던 우승)를 넘어 지미 코너스(Jimmy Conners)가 나타날 때까지 계속된다.>

한참 전성기를 누릴 무렵 그는 라이벌 로이 에머슨에게 메이저 대회 챔피언 자리를 내놓게되면서 슬럼프에 빠진다. 63년부터 67년까지 5년간 단 한차례의 메이저 타이틀도 획득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68년, 30세의 나이에 달한 그는 윔블던에서 한차례 우승하면서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고 그의 나이 31세인 그 이듬해 1969년, 또 한번의 기적을 호주인들에게 선사하게 된다. 이 해에는 자신의 후배로서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었던 켄 로스웰, 존 뉴컴을 상대로 프랑스오픈과 윔블던을 연달아 제패하고, US 오픈, 호주오픈 마저 연속으로 제패함으로써 한 사람이 한번 하기도 힘든 그랜드슬램 위업을 62년에 이어 두번이나 이루고 만다. 한 사람이 이루어낸 두번의 그랜드 슬램은 현재에 이르기까지도 로드 레이버가 유일하게 세운 전무후무한 기록으로 남게 된다.

첫 그랜드슬램의 위업을 이루었던 62년까지는 아마추어로 활동하다가 63년에 프로로 전향했던 로드 레이버는 ‘로켓’으로 불리우는 가공할만한 서브 뿐 아니라 다양한 구질을 사용하여 테니스를 정복한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그는 특히 기본이 되는 포핸드, 백핸드 스트로크, 그리고 서브와 발리 뿐 아니라 전후 좌우의 모든 방향에서 톱스핀, 슬라이스, 로브 등을 구사하여 모든 테니스 기술에 탁월한 감각을 가졌던 인물이다. 후에 이름을 떨친 스웨덴의 전설 비욘 보그(Bjorn Borg)도 자신이 로드 레이버의 테니스 기술을 모델로 삼았다고 밝힌 바 있다.

그의 기록은 그랜드슬램 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1971년에 프로 테니스 선수로는 처음으로 100만 달러가 넘는 총상금(요즘은 메이저 대회 하나만 우승해도 100만달러가 넘으나 당시시세 등을 고려하면 기록적인 상금이었다.)을 기록했으며, 1978년 지미 코너스가 그 기록을 깰 때까지 테니스 선수로는 사상최고의 상금 수입을 올려 프로선수들의 상금수입 경쟁을 유도하기도 하였다. 그는 42세 되던 1980년, 당시 유명 테니스 선수들로서는 엄두를 내지 못하는 30만달러짜리 호화저택을 구입하면서 프로 테니스 선수들의 꿈인 부와 명예의 표본이 되기도 하였다.

그는 1976년 월드팀 챔피언쉽에서 샌디애고 팀으로 출전, 공로상을 받은 후 선수생활을 접어두고 은퇴, 그후 호주 테니스 선수들의 후진 양성에 힘썼다. 현재 그가 주요 대회의 결승 시상인으로 초청, 귀빈급 인사로 대접받는데서 테니스에서 차지하고 있는 그의 위상을 엿볼수 있으며 호주 테니스계에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는 호주 테니스 역사의 획을 긋는 훌륭한 업적으로 말미암아 1981년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필자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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