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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벗지

역사상 가장 위대한 테니스 선수를 꼽으라면 누구를 들 수 있을까. 70년대에 테니스를 관심있게 보았던 사람이라면 지미 코너스나 비욘 보그, 존 메켄로를 말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80년대에 테니스를 즐겼던 사람이라면 이반 랜들, 보리스 베커 등을, 90년대 이후 테니스를 좋아하는 사람은 샘프라스나 애거시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이들도 이루지 못한 혁혁한 업적을 세운 전설적 테니스인들이 눈에 띈다. 그 중의 하나가 바로 테니스 역사상 최초로 4대메이저 타이틀을 한해에 모조리 달성한 그랜드슬래머(필자후기 참조)이자 30년대 불세출의 스타였던 돈 벗지(Don Budge)일 것이다.

돈 벗지(본명: John Donald Budge, 1915-2000). 

그는 1915년 6월 13일, 서구 유럽에선 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었던 시절 미국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에서 태어났다. 스코틀랜드 태생으로서 전직 축구선수였던 그의 아버지가 미국에 처음 정착한 곳이 바로 캘리포니아 시티였고 그는 어린 시절을 줄곳 이곳에서 보냈다. 그는 본격적으로 테니스를 시작하고부터 파워넘치는 서브와 강력한 백핸드(그는 원핸드 백핸드를 공격형으로 전환한 최초의 선수로 평가받고 있다.)를 주무기로 고속 성장하였으며 네트 플레이에 대한 감각을 살리려고 수많은 연습에 몰입한 결과 주위로부터 진정한 올라운드 플레이어라는 찬사를 받게 되었다. 그의 나이 19세 되던 해 비로소 데이비스컵 미국대표팀으로 발탁되기에 이르렀고 20세인 1935년 US오픈 복식 준우승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메이저 타이틀 사냥에 나서게 된다.

그에게 기회가 온 것은 바로 1936년 US 오픈 결승에서였다. 당시 상대선수는 당대 최고의 선수이자 랭킹 1위였던 영국의 프레드 페리(Fred Perry)였다. -페리는 34-36년 3년연속 윔블던 우승자였고 33,34,36년 US 오픈 챔피언, 34년 호주오픈, 35년 프랑스 오픈 등 서로 다른 해에 4대메이저 타이틀을 최초로 석권했던 선수였다.(필자후기 참조)- 결승은 4세트까지 2대2의 팽팽한 접전이었고 5세트만 따내면 자신의 첫 메이저 타이틀이 되는 기회였는데 아깝게도 5세트는 10-8로 내주게 되면서 타이틀 획득에 실패하고 만다. 그러나 그의 첫 메이저 타이틀은 다음해인 1937년 윔블던에서 이루어진다. 상대자는 34, 36년 프랑스 오픈 우승자인 독일의 폰 크람(G. von Cramm)이었고 벗지는 5세트 접전끝에 크람을 누르고 우승을 차지하였다. 이때부터 벗지의 우승행진은 계속된다. 당해에 US 오픈마저 석권하여 랭킹 1위에 오른 그는 대망의 38년 프랑스오픈, 윔블던, US오픈, 호주오픈(당시 호주오픈은 12월경에 열렸음)을 연달아 제패하여 역사상 최초의 한해 그랜드슬램 달성에 성공하게 된다. 물론 이전의 프레드 페리의 경우도 4대 메이저 타이틀을 모두 석권했지만 한 해에 달성하지 못했기 때문에 벗지의 <최초 그랜드슬램 한해 달성>은 후세에도 가장 훌륭한 업적으로 인정되고 있다.

그가 따낸 메이저 타이틀은 38년 4대 그랜드슬램을 포함, 37년 2개를 합쳐 단식 6개와 복식 8개(37-38 윔블던, 36,38 US오픈/37-38 윔블던, US오픈 혼합복식) 등 총 14개에 이른다. 특히 38년의 42승 2패라는 전적과 국가 대항인 데이비스컵에서 이룬 19승 2패는 당시 최고의 승률로 기록되기도 하였다. 벗지는 이후에도 그랜드슬램 석권의 기회를 엿보고 있었으나 곧이은 2차세계대전 발발로 활동범위에 제약을 받았다. 메이저 대회 개최국 중 미국을 제외한 나머지 국가들에서는 세계대전의 영향으로 5-6년간 개최가 중단되었기 때문이다. 1차세계대전 중에 태어나 선수로서 왕성한 실력을 발휘할 시기에 또 2차대전이 발발, 그의 기록갱신은 더 이상 이루어지지 않았다. 전쟁이 아니었더라면 그가 더 많은 메이저 타이틀을 획득할 수 있었을 것임은 당시의 상황으로 볼 때 자명한 것이었다. 그는 특히 전쟁이 한창인 1942년에 미공군에 입대, 부대훈련중 입은 어깨부상의 후유증으로 고생하였으며 2차대전이 끝난 후 활동을 재개하였으나 그때는 이미 체력에 한계를 느낄 때였다. 1955년 그의 나이 40세에 미국 클레이코트 챔피언쉽에서 우승한 것을 끝으로 그의 테니스 인생은 막을 내린다.

벗지는 테니스 선수로는 드물게 현역시절에 집필활동을 시작, 테니스교본의 저자로도 유명하다. 특히 그가 왕성한 활동을 보였던 1937년 발간된 “론테니스 게임의 방법(How Lawn Tennis Is Played)”과 39년 발간된 “테니스에 관하여(On Tennis)”는 테니스 교본의 고전에 속하는 훌륭한 지침서로 인정받고 있다. 그는 1937년 38년 2년 연속으로 AP통신이 선정한 올해의 선수로 기록되었고 미국 테니스 매거진에 의해 ‘20세기 최고의 선수 20명’ 중 한명으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1964년엔 은퇴한 테니스 선수들의 꿈인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기에 이른다. 그러나 지금으로부터 2년전인 1999년 12월, 그는 운전 중 감각을 잃고 도로를 이탈, 뜻밖의 교통사고를 당해 갈비뼈가 부러져 팬실베니아주 스크랜턴 병원으로 이송된다. 노령에 심한 부상을 입게된 테니스의 영웅은 한달여 동안 산소호흡기로 연명하였으나 결국 2000년 1월 26일, 아내와 두 아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8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필자 후기>
1.<테니스의 전설들>을 애독하는 분들에게 잠시 그랜드슬램(Grand Slam)이라는 개념에 관하여 좀 더 명확히 밝혀두고자 합니다. ‘그랜드슬램’이라는 용어는 미국의 저널리스트 존 키어렌(John Kieran)이 1933년 당시 호주의 테니스 선수 잭 크로포드(Jack Crawford)가 4대 메이저 타이틀을 한해에 모두 달성하려고 하자 처음으로 붙인 용어입니다. 즉 ‘그랜드 슬램’이란 호주오픈, 프랑스오픈, 윔블던, US오픈을 한해에 모두 석권했을때만 얻게되는 칭호인 것이지요. 그러나 잭 크로포드는 1933년 유일하게 US오픈에서만 우승하는데 실패하여(준우승) 아깝게 그랜드슬래머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서로 다른 해에 4대 메이저 타이틀을 석권한 안드레 애거시(Andre Agassi)나 프레드 페리(Fred Perry) 또한 진정한 의미의 그래드슬래머가 되지 못했던 것이지요. 현재까지 공식으로 그랜드슬램 칭호를 얻은 선수는 남자의 경우 돈 벗지(1938년 달성), 로드 레이버(62, 69년 2회 달성) 두명뿐이고 여자의 경우는 모린 코넬리(53년), 마거릿 스미스 코트(70년), 슈테피 그라프(88년) 등 3명뿐입니다.


2. <테니스의 전설들> 시리즈는 번역기고문이 아님을 밝혀둡니다. 수많은 매체에서 얻은 정보지식과 자료를 바탕으로 재구성, 집필되는 것으로서 아래에서 밝힌대로 집필에 참고가 된 부분은 최종회에서 그 참고문헌을 게시할 예정입니다. 전문번역이 아니기 때문에 <출처>가 아닌 <참고문헌>으로 생각하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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