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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 라코스테

휴이트가 약관의 나이에 세계랭킹 1위로 시즌을 마감하고 그의 전성시대를 예고했다. 아직 은퇴를 발표하고 있지는 않지만 90년대를 호령해왔던 샘프라스, 애거시의 시대가 서서히 가고 20세 초반 신세대 선수들로 세대교체가 이루어지고 있는 지금, 130년 테니스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테니스 선수가 누구였던가를 돌이켜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라 생각하고 한 시대를 풍미했던 전설적인 테니스 선수들을 집중 조명하고자 한다. 제 1편은 1920년대를 풍미했던 프랑스의 전설적 테니스 선수 르네 라코스테를 소개하기로 한다.

르네 라코스테(Rene Lacoste). 그 이름을 듣는 순간부터 일반사람들은 그것이 악어상표의 의류업체라는 것을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라코스테(불어발음은 ‘라꼬스뜨’에 더 가깝다)가 골프의 아놀드 파머처럼 한때 유명한 스포츠 선수로서 자신의 이름을 걸고 굴지의 의류업체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아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또한 라코스테가 왜 ‘악어’와 관련이 있는지는 테니스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는 테니스 초창기 때인 1904년 7월 2일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났다. 나이 15세에 이르기까지 그는 테니스를 칠 줄 모르는 평범한 소년에 불과했다. 자동차회사를 운영하고 있었던 아버지 덕분에 그는 부유하게 자랄 수 있었고 테니스를 직업으로 삼아 성공해야겠다는 욕구 또한 없었다. 그저 열심히 공부해서 아버지의 자동차공장을 물려받아 성공적으로 경영하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뒤늦게 빠져드는 테니스의 묘미 때문에 테니스 선수로 진로를 바꿀 것을 결정하자 이젠 아버지의 허락이 필요했다. 그의 아버지는 테니스에 헌신적으로 임하는 아들에게 5년 내에 테니스 챔피언에 올라야 한다는 것을 허락의 조건으로 내놓았다. 테니스에 입문한지 5년만에 세계챔피언이 된다는 것. 요즘 같으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지만 그는 기어코 해내고 만다.

Jacques Brugnon, Henri Cochet, Pierre Gillou, Rene Lacoste(르네 라코스테), Jean Borotra

5년은 아니지만 테니스에 입문한지 꼭 6년만인 1925년, 그의나이 21세에 프랑스 오픈을 석권하게 된다. 그는 같은해 영국 테니스 선수권 대회(지금의 윔블던)에서도 발군의 기량으로 우승 트로피를 거머쥐었고 이듬해인 1926년과 1927년엔 외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전미 테니스 선수권 대회(지금의 US 오픈) 연속우승에 이르며 승승장구 하였다. 특히 1927년 US 오픈 결승은 상대자가 20-25년 US 오픈 6년 연속 우승자였던 윌리엄 틸든(William Tilden)이었고 스코어 또한 11-9 6-3 11-9 였기 때문에(당시는 타이브레이크가 적용되지 않았음) 라코스테로서는 가장 짜릿한 우승이었을 것이다. 1927년 프랑스오픈도 석권한 라코스테는 1928년 윔블던, 1929년 다시 프랑스 오픈에서 우승트로피를 안았다.

프랑스오픈 3회 우승, 윔블던과 US 오픈 각각 2회씩 도합 7회의 메이저 타이틀을 소유하게 된 것이다. 1924년 윔블던과 26, 28년 프랑스 오픈에서는 아깝게 준우승에 그치고 말았지만 당시 또 다른 프랑스의 스타 보로트라(Borotra)와 짝을 이뤄 1925년 윔블던 복식에서, 1924년, 1925년, 1929년에는 프랑스 오픈 복식에서 우승했다. 그가 메이저 대회중 호주오픈에만 우승하지 못했지만 당시의 비행기로 호주까지 날아가 경기에 참가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를 감안한다면 그가 따낸 11개의 메이저 타이틀(복식 포함)이 어느 정도의 성과였는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그는 복식을 포함하여 총 11개의 메이저 타이틀을 따냈지만 그를 빛내 준 또 하나의 사건은 바로 데이비스컵 우승이었다.

1927년 그는 역대 최강의 프랑스팀에 합류, 장 보로트라(Jean Borotra, 28년 호주오픈, 26년 윔블던, 31년 프랑스오픈 단식우승), 앙리 코셰(Henry Coche, 28년 US오픈, 27,29 윔블던, 26,28,20,32 프랑스오픈 단식우승), 자크 브뤼뇽(Jacques Brugnon)과 함께 프랑스에 처음으로 데이비스컵 우승컵을 안기는데 기여하였고 프랑스는 이후 6년간이나 이 우승컵을 보유하기도 했다. 이러한 공로로 라코스테와 그의 동료들은 1976년 국제 테니스 명예의 전당에 오르게 된다.

컴퓨터 집계에 의한 랭킹 시스템이 없었던 그 당시 수작업에 의한 랭킹시스템으로 그는 1924년부터 6년간 톱텐을 유지했으며 특히 1926-27년엔 랭킹 1위에 오르기도 하였다. 꼼꼼한 성격의 라코스테는 시합 전에는 상대의 선수에 관한 모든 사항을 연구하는 선수로 유명했고, 시합중에는 상대선수가 지치기를 기다려 지구전에 의한 승리전략을 펼치는 선수로 알려져 있다. 또한 현대적 개념의 서브와 발리, 패싱샷과 로빙 기술들은 모두 라코스테가 선구자로서 그가 30년대 프랑스 데이비스컵 사령탑을 맡았을 당시 후배 선수들에게 전수되어 크게 효과를 보기도 하였다.

라코스테는 테니스 뿐만 아니라 테니스 용품 발명가로도 유명하다. 세계에서 처음으로 볼 로빙머신(ball lobbing machine)을 개발하였으며 메탈 테니스 라켓을 처음으로 선보여 후에 지미 코너스가 그의 메탈프레임 테니스 라켓(윌슨 T2000과 유사한 라켓)으로 세계 테니스를 평정하기도 한다. 또한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악어무늬의 로고가 새겨진 폴로(polo) 티셔츠는 전세계의 인기 스포츠 웨어가 되기에 이른다. 그의 별명이 ‘악어’가 된 것은 우연한 계기에 의해서 였다. 미국 보스턴에서 열리는 경기에 출전하게 된 라코스테는 경기가 있기 전날 한 전시장에서 악어가죽으로 만든 가방을 보게 된다. 이것을 무척 갖고싶어 했던 라코스테가 코치에게 자기가 만일 경기에서 승리하면 이 악어가죽 가방을 사달라고 졸랐던 것이다. 하지만 라코스테는 경기에서 패했고 결국 그 악어가죽 가방은 그의 손에 쥐어지지 않았다. 이때부터 동료들이 그를 놀릴 의도로 그를 ‘악어’라고 불렀다. 당시에는 악어라는 자신의 별명을 굉장히 싫어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별명을 로고로 내세워 후에 의류사업을 시작, 오늘날 전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의류업체 중 하나인 “라코스테”를 탄생시키기에 이른다.

그는 아내인 시몬느 디옹 숌므 ?그녀는 프랑스인으로는 처음으로 영국 오픈(골프)에서 우승했다-와의 사이에 3남 1녀를 두었는데 그의 딸 까뜨린느 라코스테가 어머니에 이어 1967년 US 오픈(골프)에 우승한 바 있다. 테니스 선수로도 성공을 거두어 명예의 전당에 올랐고 사업가로도 수완을 발휘하여 오늘날의 세계적 의류업체 라코스테를 탄생시킨 그는 5년전인 1996년 10월 12일 프랑스의 생장드뤼(St. Jean de Luz)에 고요히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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